이름 | 발레리오 바치갈루포 (Valerio Bacigalupo) |
생년월일 | 1924년 2월 12일 |
사망년월일 | 1949년 5월 4일 (향년 25세) |
국적 | 이탈리아 |
출신지 | 이탈리아 왕국 바도 리구레 |
포지션 | 골키퍼 |
신체조건 | 176cm | 75kg |
소속팀 | 사보나 FBC (1942-1944) 제노아 CFC (1944-1945) 토리노 FC (1945-1949) |
국가대표 | 5경기 (1947-19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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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바도 리구레에서 태어난 바치갈루포는 사보나 FBC, 제노아 CFC를 거쳐 1945년에 토리노 FC에 합류했다. 토리노의 회장이었던 페루초 노보가 리구리아와 피에몬테의 주 대표 시합에서 바치갈루포를 발견했고 노보는 바치갈루포의 영입을 위해 노력했다. 당시 바치갈루포는 토리노의 합류를 다소 망설였는데 이때 바치갈루포의 토리노 이적에 조언을 해준 사람이 그의 형 만리오 바치갈루포였다.바치갈루포는 1945년 10월 14일, 유벤투스 FC와의 데르비 델라 몰레에서 토리노 데뷔전을 치렀고 실비오 피올라에게 페널티 킥 골을 허용했지만 데뷔전은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후로 바치갈루포는 토리노의 주전 골키퍼로 도약했고 전쟁이 끝난 첫 시즌에 토리노는 스쿠데토의 주인공이 되었다.
바치갈루포는 1946-47 시즌에는 손목 염좌로 경기를 많이 뛰지 못했지만 토리노의 연속 우승에 문제가 되진 않았다. 1948-49 시즌까지 바치갈루포는 토리노의 골문을 든든히 지켰고 토리노는 이 시즌에도 스쿠데토 수성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바치갈루포는 수페르가의 비극에 휘말려 25세의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2.1.2. 국가대표
1947년 12월 14일, 바치갈루포는 바리에서 열렸던 체코슬로바키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에 데뷔했다. 결과는 이탈리아의 3:1 승리였다.1949년 3월 27일, 마드리드에서 이탈리아는 스페인에 3:1로 승리를 챙겼고 바치갈루포는 이 경기에서 페널티 킥을 막아내 이탈리아의 리드를 더욱 단단히 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바치갈루포는 탄탄한 체격과 반응, 뛰어난 위치 선정과 반사 신경을 이용한 다이빙 세이브로 유명했다. 바치갈루포는 페널티 킥을 포함한 뛰어난 슛 스토퍼일 뿐만 아니라 크로스를 차단하거나 상대 공격수를 막기 위해 페널티 박스를 벗어나는 현대적인 골키퍼이기도 했다.4. 뒷이야기
- 바치갈루포는 1946년, 사보나 인근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다. 바치갈루포는 이때 목숨을 건졌지만 같은 차에 탔던 그의 친구는 사망했다.
- 바치갈루포는 토리노 FC의 동료들 중 다닐로 마르텔리, 마리오 리가몬티와 특히 친했고 그들과 같이 한 집에서 살기도 했다.
5. 수상
5.1. 클럽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