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00만 명의 병력을 갖춘 군대
병력 수가 진짜 100만 명 이상인 군대를 의미한다.물론, 병력 수가 많다고 해서 국방력이 강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아무리 백만대군이어도 전투 방식이 반자이 돌격이라면 갈대 넘어가듯 쓰러진다.[1]
- 러시아 연방군: 약 150만 명.[2] 소련 붕괴 이후 대규모 군축을 겪었지만 여전히 백만대군을 유지 중이다.
- 우크라이나군: 약 100만 명.
- 중국 인민해방군: 약 260만 명.[3]
- 인도군: 약 145만 5,550명.[4]
- 미군: 약 132만 8,300명.
- 조선인민군: 약 100만 명.[5][6]
1.1. 역사 속의 백만대군
- 러시아 제국군 / 소련군
- 독일 제국군 / 독일 국방군
- 미군
- 영국군
- 프랑스군
- 이탈리아 왕국군
- 수나라군: 최소 약 113만명 이상[9]
- 국민혁명군 / 중국 인민해방군
- 일본군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 제1차 세계 대전 시기: 약 780만 명.
- 오스만 제국군
- 제1차 세계 대전 시기: 약 300만 명.
- 인도 제국군
-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약 250만 명.
- 캐나다군
-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약 110만 명.
- 호주군
-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약 100만 명.
- 폴란드군
- 폴란드 침공 시기: 약 200만 명.
- 대한민국 국군
- 6.25 전쟁 시기: 약 130만 명.
- 유고슬라비아군
-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약 150만 명.
- 루마니아군
- 베트남 인민군
- 이라크군
1.2. 백만대군이 동원된 전투 사례
몰락 작전: 미군 한정으로만 봐도 107만 4,600명의 초 대규모 부대가 참여할 예정이었다. 이건 호왈백만이 아니라 진짜 미군이 제대로 계획하고 실행 준비까지 들어갔다.[15] 이전에 일본이 항복하면서 계획으로만 끝나게 되었지만... 대신 소련군이 일본의 일부를 공격했다.
- 독소전쟁: 양쪽 모두 수천만 명의 병력을 동원한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전쟁이다. 그야말로 두 국가의 모든 걸 쏟아부은 총력전으로서 전투 목록에 포함된 유사 이래 모든 전투들의 규모를 매기면 상위 10개 중 7개, 1~5위는 전부 아래의 독소전쟁에서 벌어진 전투였다.
- 바르바로사 작전: 역사상 가장 많은 규모의 병력을 투입한 전투. 양측의 규모만 소련군 290만 명, 독일군은 380만 명으로 그야말로 최대급이다.
- 모스크바 공방전: 양측의 동원된 병력 규모만 독일군 192만 명, 소련군 125만 명이 동원되었다. 참고로 독일이 이 병력을 투입할 정도면 국력 전체를 갈아넣은 것이나 다름없다.
- 스탈린그라드 전투: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사상자를 낸 전투. 방어전에 소련군만 170만 명이 동원되었는데, 이 전투는 소련 측 사상자만 해도 백만을 넘겼다. 추축국 측의 사상자까지 포함하면 200만명에 육박한다.
- 쿠르스크 전투: 규모적으로 세계 최대의 전투로서, 소련군만 191만 명, 양측의 병력을 포함시 200만이 넘는 대규모 병력과 6,000대의 전차, 4,000대의 항공기가 동원되었다.
- 베를린 공방전: 베를린 공방전에 동원된 소련군의 규모만 250만 명에 달한다.
2. 호왈백만
그냥 병력이 많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 부르는 호칭이다. 전근대의 백만대군은 실제로는 이런 경우들이다. 이런 전근대의 수많은 대규모 전쟁들의 과장과 달리 실제 백만대군은 20세기 들어서나 가능했다. 호왈백만 항목 참조.[1] 실제로 이런 군대를 상대하라고 만든 게 바로 기관총이다.[2] 러시아 국가근위대를 포함한 병력이다.[3] 무장경찰 포함 455만 명. 그래도 인구수 대비 0.5%도 안 된다는 게 함정. 사실 시기에 따라 군대 규모가 오락가락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지금보다 훨씬 많은 군대를 유지했는데(물론 당시에 군대가 얼마 없는 좋은 직장이다 보니 징병제를 시행 안 해도 인원 모집은 되었다.) 6.25 전쟁과 티베트 전쟁이 발발하였던 1950년 중반에는 513만 명이나 되었으며 중국-베트남 전쟁 당시에 수백만이 넘는 대군을 동원하고도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덩샤오핑을 위시한 상층부에서 군인 수를 대폭 줄이고 그 대신 남는 예산을 기계화에 집중하는 식으로 전략을 변경하면서 병력수가 줄기 시작했고 걸프 전쟁의 충격까지 겹쳐 지속적으로 기계화를 통한 전력향상에 집중하다 보니 시진핑 집권 시기까지도 지속적으로 감군한 것이다. 물론 근본적으로 워낙 인구가 많다 보니 모병제를 시행해도 여전히 수백만이긴 하지만.[4] 모병제 국가인데 이 정도 병력을 만들 정도로 인구가 넘쳐난다.[5] 사실상 징병 한계점에 도달한 병력 숫자이다. 국민 숫자가 25,887,045명인 상황에서 백만대군이기 때문에 사실상 노약자와 어린이 이외에는 대부분 군복무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수치상으로는 백만대군이라 상당히 위협적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가용 가능한 병력수는 적다. 과반수가 청년돌격대인데 이건 그냥 건설 노동자로 군대를 만든 것이다. 하는 일은 공병 건설 노동뿐이다.[6] 주성하 기자에 의하면 128만은 과장이고 실제로는 70~80만 정도이며 이중 전투에 동원할 수 있는건 30~40만 이라고 한다.[7] 다만 이 수치는 독일군에 입대했던 병력의 총수로 전역하거나 전사 또는 새로 입대하는 등의 변수가 있어 병력 수는 유동적이었다. 그래서 대전 직후 소련의 천만대군처럼 동시기에 1,800만 대군을 운용한 것은 아니다.[8] 베트남 전쟁 시기 미군 복무병력 약 870만 명. (1964~1973)[9] 고구려-수 전쟁 당시 기록으로 나온 병력 수. 물론 중세 이전 기록이므로 완전 정확한건 아니다.[10] 휘하 군벌 소속 병력 포함. 국민당 직속 병력은 30만 명 선이었다. 물론 당시에도 인구는 세계 1위였다.[11] 국민당 소속 약 430만 명, 공산당 소속 약 380만 명.[12] 태평양 전선, 중국 전선, 인도차이나 전선 포함.[13] 현재는 480,000명의 병력을 유지 중이다.[14] 현재는 193,000명의 병력을 유지 중이다.[15] 작전에 참여한 사상자에게 지급하는 훈장인 퍼플하트도 수십만 개를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