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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7-06 13:00:01

벌초


1. 개요2. 기원3. 상세4. 기타5. 관련 문서

1. 개요

벌초()는 조상을 모신 에 자란 잡초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말한다. 금초라 부르기도 한다.

2. 기원

벌초의 기원은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으나 유교의 관혼상제에서 시제와 묘제를 언급하고 있고 성리학에서 묘제를 중시하는 부분이 있는 점을 고려하면 아마도 대한민국 사회에 유교가 보급되면서 벌초를 하는 관습도 같이 들어온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성리학이 보급된 조선시대에는 선산에 잡풀이 무성한 것도 불효이자 조상과 가문에 대한 모독으로 여겼다.

3. 상세

벌초를 하는 시기는 , 가을 2번하는 것이 보통으로 봄은 한식, 가을에는 추석 때 벌초를 한다. 허나 가을의 경우 딱히 추석 당일이 아니더라도 추석 몇 주 전에 미리 벌초를 하는 경우가 있다.[1] 벌초의 대상이 되는 묘는 가깝게는 선산에 모셔진 부모ㆍ조부모ㆍ웃대 조상들(증조ㆍ고조ㆍn대조)을 포함하게 된다. 이로 인해 오래 전부터 특정 성씨의 집성촌을 이루고 가문의 선산이 오래된 경우에는 많은 수의 묘지들을 벌초해야 된다. 그로 인해 보통 여러 가족들이 모여 직계 조상들의 묘만 분담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과거에는 상술했듯 특정 성씨 집단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고, 보통 3대 이상이 함께 사는 대가족인 경우가 많았으므로 벌초를 하는 것 자체는 크게 문제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가까운 친척이라 해도 멀리 떨어져 살고 있고, 핵가족화가 진행된 상태라 벌초 자체를 안 할 수는 없는데 또 그렇다고 적은 머릿수로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 보통은 도시로 떠나지 않고 여전히 해당 지역에 남아있던 문중의 사람들이 벌초를 책임지고, 일가 친척들은 이에 대한 감사를 뜻하는 의미에서 벌초비를 주는 형태가 많았다. 하지만 이것도 옛날 이야기이고, 이후로는 시골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대부분 늙거나 돌아가시는 일이 많아진 까닭에 직접 벌초를 못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 때문에 돈으로 아는 사람을 고용해서 벌초를 맡겨 수고비를 주는 쪽으로 넘어갔다.[2] 초창기에는 그냥 마을에서 그나마 좀 젊은 사람들한테 술값이나 밥값 좀 쥐어주고 맡기는 형태가 많았으나 전문적으로 하는 벌초를 대행해 주는 전문업체도 생겨났고, 코로나19 범유행 이후로는 벌초대행업체에 맡기는 쪽이 많이 늘어났다.

참고로 왕릉 같은 경우는 문화재로 분류되기 때문에 문중에서 벌초를 담당하지 않고 나라에서 일용인부와 공공근로자를 동원해 하고 있다.

과거에는 이나 원예용 가위같은 걸 써서 했지만 요즘에는 예초기란 아주 좋은 도구가 있다. 군대에서 웬만하면 한 번씩 돌리기에 군대를 갔다 온 남자에겐 익숙한 도구일 것이다. 다만 비석 주변과 같이 섬세한 동작이 필요한 경우도 있어서 낫과 가위도 여전히 보조 도구로서 역할은 하고 있다.

그 외에 벌초를 하면서 사고가 많이 나는 편이다. 가장 유명한 것이 추석을 앞둔 벌초 때 예초기 돌리다가 땅벌집 건드리는 바람에 땅벌들에게 공격을 받고 응급실 신세를 지거나 최악의 경우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고로 본인이 벌초를 간다면 벌레 기피제와 살충제는 필수다. 그 외에 우거진 풀 아래 숨어 있는 독사를 보지 못하고 물려서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한다. 매년마다 벌초 때 독충들과 독사들을 조심하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 방해꾼들의 발견이 어렵기 때문에 대비가 어려운 사고 유형이다. 특히 가을에는 더 주의해야 한다. 그 시기에 뱀독은 오르고 뱀들도 동면 준비를 해야 해서 더 포악해지기 때문이다.

예초기와 관련된 사고도 많은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잡아서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고, 바닥의 돌 같은 게 튀어서 맞아 다치는 경우도 발생한다.[3] 그래서 벌초할 때는 선 캡이나 헬멧, 고글 같은 걸로 얼굴 및 눈을 보호하는 게 좋고, 일자형 날보다는 힘은 떨어지지만 안전한 원형톱날이나 나일론 커터 또는 예초기 롤러를 쓰는 게 좋다. 간혹 친척들 모인 김에 겸사겸사 막걸리와 같은 약주 한 잔 하고 벌초하러 가서 예초기 돌리다가 사고 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또한 야생의 들판은 유행성 출혈열이나 중증 열성 혈소판 감소 증후군(SFTS)을 유발하는 작은소참진드기 등 온갖 종류의 치명적인 병원균, 바이러스를 보유한 전염병 매개체들이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벌초를 하다 절대로 맨 땅이나 풀밭에 드러누워서는 안된다.

이외에도 묘의 위치가 접근하기 힘들 정도로 험한 산 깊숙이 있거나 무덤으로 가는 길 자체가 어지간한 등산로보다 위험하다면 이동하는 도중에 사고가 날 수 있는지라 매우 조심해서 움직일 것이다. 특히 벌초를 하러 갈 때는 낫, 호미, 예초기, 갈고리 같은 위험한 도구도 함께 지참하기 때문에 넘어지거나 부딪치고 다치는 사고가 나는 순간 소지하고 있던 도구에 신체를 심하게 베이거나 찔리는 2차 사고가 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데다 묘지 특성상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외곽 지역의 언덕이나 산중에 위치한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구조대원이나 전문 의료인의 처치를 받기 어렵기 때문에 더더욱 주의해야 한다. 거기에 여러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조상들의 무덤으로 이동하는 벌초 특성상 평일보다는 다 같이 모이기 쉬운 주말에 하는 많기 때문에 사고를 당했다면 대응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병ㆍ의원은 아무리 잘해도 토요일 오전 진료를 끝으로 휴무에 돌입하는지라 믿을 구석은 종합병원의 응급실 밖에 없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벌초를 하러 간 다른 구성원들도 이동과 노동으로 소모된 체력 + 대부분 험한 지역에 위치한 묘지의 특성상 오고 가는 것 자체가 난이도가 높은 상황으로 인해 제 한 몸 건사하기 힘든 만큼 부상자에게 제대로 된 도움을 주기 힘들다.

4. 기타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매장이 치러지고 있으나 과거처럼 선산에 묘를 만들기보다는 가까운 공동묘지에 만드는 경우도 많아졌는데, 이 경우엔 공동묘지 쪽에서 벌초와 같은 관리를 해주기 때문에 굳이 벌초를 갈 필요가 없다. 아예 화장 후 납골당을 이용하면 당연히 벌초고 뭐고 없다. 그 외에 각종 다양한 장례 방법이 늘고 있어 벌초란 문화 자체가 서서히 축소되고 있다. 사실 벌초를 좋아서 가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4]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 장차 벌초 문화가 아예 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제주특별자치도에는 2000년대까지 매해 음력 8월 1일임시공휴일로 정해 학생들이 벌초에 참여해 조상을 모시고 효를 배우도록 권장한 '벌초방학'이 있었다. 그러나 2010년 이후부터는 거의 행해지지 않고 있다. 저출산·고령화가 심각해지고 핵가족화가 보편화 되고 또한 효 문화가 사라지면서 제주도의 주요 행사였던 벌초문화도 점차 간소화된 것. 이 때문에 같은 제주도민인데 벌초방학을 모르는 세대가 생겼다. #

현대에 와서는 제사 문화만큼은 아니지만 사실상 악습 취급을 받고 있다. 조상을 기리는 마음보다 굳이 후손들의 육체적 노동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사라지고 또 명절이라고 시골로 내려가지 않는 집도 많아지면서, 과거만큼 젊은 세대에게 달가운 문화는 아니다. 애당초 망자를 땅에 묻는 것은 자연으로 돌아가 땅, 풀, 나무 등과 다시 하나가 되라는 의미인데, 그 위에 자라는 자연물을 잡초라 간주하고 굳이 인위적으로 손을 대는 것 자체가 다소 모순적이다. 거기다 벌초를 하게 되면 제초작업 도중이나 전후에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사건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만큼 위험성만큼은 제사보다도 더하기도 하다.[5] 더군다나 벌초에 동원되는 성별은 주로 남성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가족이나 친척과의 관계 때문에 강제로 끌려가게 되는 젊은 남성들에게는[6] 이미지가 최악일 수 밖에 없다.[7]

남성들의 경우 이발을 농담삼아 벌초로 부르기도 한다. 머리가 둥그스름한 게 봉분같다는데서 유래됐다.

5. 관련 문서


[1] 대체로 추석을 앞두고 몇 주 동안 주말을 할애해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는 1년 동안 일반 잡초 외에도 넝쿨이나, 환삼덩굴, 아까시나무 같은 것들도 자라나는 경우가 있어서 벌초를 하기 전에 제초제를 뿌리는 경우도 있다.[2] 농촌 지역 산림조합이나 단위농협에서 이런 대행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3] 이는 대체로 일자형 날을 쓰다가 많이 발생하는 사고다. 일자형 날은 파워가 좋아서(웬만한 나뭇가지도 다 자른다.) 많이 쓰이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풀 속에 있는 돌이 많이 튀어서 사고를 당하는데, 대체로 눈을 다치는 사고가 많다.[4] '조상님 보러 간다'라며 기꺼이 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묘지가 있으니 마냥 방치할 수는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가는 경우가 많다.[5] 물론 제사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사건사고가 적은 것은 아니며, 그로 인한 피해 역시 상황에 따라서는 무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제수용 과일을 깎다가 칼에 베이거나, 뜨거운 탕이나 국이 피부 위로 쏟아지거나, 상이나 병풍 같은 것을 나르다가 허리에 손상이 가거나 신체 부위 중 일부가 강하게 찍히는 등의 사례가 있다. 다만 제사 전후로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미리 예방 가능한 것도 있는 데다(예를 들어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전문 업체에서 파는 제사 음식을 올리는 방법으로 대체하는 것을 통해 당사자들이 직접 조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건사고를 최소화하거나 아예 막을 수 있다.) 적어도 주택가처럼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구역에서 지내는 만큼 위기상황에서 부를 수 있는 119 구급대의 빠른 후송이나 (상태가 심각하지 않다면) 빠른 통원치료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벌초를 하는 장소는 인간의 손을 덜 탄 자연, 그것도 외진 산중인 만큼 인간이 미리 통제할 수 있는 변수가 적은 데다(예를 들어 작년에는 무덤 근처에 벌집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당해에는 생겼을 수도 있다. 벌초하러 온 사람들 입장에서는 예초기의 칼날과 같은 도구의 끝부분이 벌집을 안 건드리는 걸 바라는 것 밖에는 답이 없다.) 사고가 발생한다면 대처하기 어려운지라 경상으로 끝날 사고도 중상이나 사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6] 특히 군필 남성이라면, 그중에서도 대한민국 육군에 속한 야전부대 소속 징집병이나 모집병으로 복무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다수의 병역의무자는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하며, 이들 대부분은 도심지에 있는 부대에서 일하지 않는 이상 어지간해서는 일반인의 출입이 극도로 어려운 것도 모자라 산이 가까운 외곽처럼 사람이 살기 힘든 지리적인 여건을 가진 곳에서 근무하는 만큼 군복무를 하는 기간에는 제초가 필수인 상황인 만큼 전역일까지 제초작업을 피할 수 없기 때문. 거기다 대한민국 국토는 70%가 산지인 데다 북한군의 침공을 방어하는 것은 물론 경우에 따라 북진까지 해야만 하는 전방지역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다수의 국군 부대가 배치된 경기 북부와 강원도는 산지가 많다. 또한 이들 대부분은 군대에서 서열이 낮은 병 계층이나 초급간부(하사~중사 및 위관급 장교)로만 복무하고 전역하는 만큼 상부에서 제초작업을 하라고 명령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참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복무기간 내내 반복되는 만큼 더욱 그렇다. 물론 육군과는 상관없는 공군 출신들도 풀이라고는 없을 것만 같은 비행단 등에 배치된 장병들조차 제초를 해야하는 경우가 많으며, 해군 역시 함정의 승조원이 아니라 육상 부대 근무자라면 제초를 못 피하는 만큼 더더욱 인식이 안 좋을 수 밖에 없다. 심지어는 전의경(의무해경 포함), 경비교도대, 의무소방과 같은 전환복무자도 제초를 하는 경우가 있으며, 몸이 안 좋아서 가는 사회복무요원조차 경우에 따라서는 제초를 못 피한다.(예를 들어 농장이 딸린 사설 복지기관이라면 농사일의 일환으로 제초를 해야만 한다. 제초를 포함한 농사일은 사회복무요원 관리규정 위반사항임에도 사설 복지기관들은 당사자나 내부 직원들의 내부고발이 아니면 나라에서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7] 젊은 여성의 경우, 기성 세대들의 성별관은 차지하고서라도 현장까지 억지로 끌고 가봤자 약한 체력과 육체 노동 경험이 거의 없다는 이유로 짐덩어리만 된다는 이유로 벌초 참석이 면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더군다나 여성은 상대적으로 무르게 키우는 인간 사회의 특성상 육체노동 경험이 없는 데다 겪기도, 배우기도 싫어하는 여성들이 반발하면 기성 세대들이 일단 자기 의견을 무르는 것도 한 몫 한다.) 자기 일로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만 기혼 여성의 경우, 기성 세대에 속한 시가 구성원이 남편이나 아들이 남성만 부르는 선에서 끝나지 않고 당사자도 벌초 당일날 함께 부르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런 경우에도 당사자를 남자들과 함께 벌초 현장에 투입시켜서 일하게 만드는 경우는 드물지만, 벌초 끝나고 친척들끼리 가지는 점심이나 저녁식사를(가을에 하는 벌초는 그 특성상 새벽~아침의 경계 시간대에 시작해서 오전 중에 끝내며, 봄에 하는 벌초는 기온이 어느 정도 올라간 오전에 시작해서 해질녘 쯤에는 끝나는 만큼 본가와의 거리가 멀거나 급하게 가야만 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한 끼 정도는 친지들이 함께 먹을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할 때 만큼은 동참시킨다. 물론 당사자 입장에서는 황금같은 휴일에 기성 세대에 속하는 시댁 식구들과 자기 가족, 연배가 비슷하거나 어린 시댁 식구들 눈치나 비위까지 맞춰줘야 하기 때문에 좋을 것 없는 데다 배달시키거나 식당에서 사먹는 것이 아니라(물론 이 경우에도 상당한 금액이 나가는 만큼 좋을 건 없다.) 시댁에서 요리를 만들어서 식구들을 먹이는 경우에는 부엌일을 도와야만 하는 만큼 좋을 건 없다. 그리고 미혼 여성들 역시 황금같은 휴일에 노동을 마치고 돌아온 친척들과의 식사에 강제로 참여하거나 아예 부엌일까지(혹은 아예 벌초하는 곳에서 노동을) 하게 된다면 벌초가 싫은 것은 마찬가지이다. 설령 당사자의 집안이 벌초를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연인의 집안이 벌초를 하게 되는 상황에서 거기에 이성이 따라간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고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본인과 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도 모자라 결혼까지 생각하는 경우, 앞서 서술한 고충이 당사자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만큼 벌초를 좋아할 이유가 없다.(벌초로 인하여 그날만큼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을 원하는 방식으로 보낼 수 없다는 것은 기혼 여성에게도 똑같이 적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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