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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1 14:48:14

보합단

1. 개요2. 결성3. 활동4. 와해

1. 개요

普合團

1919년 3.1 운동 이후 평안북도 의주군 고령삭면 동암리(現 천마군 대하리) 동암산(東岩山)에서 창설된 항일 무장독립운동단체. 조선독립보합단(朝鮮獨立普合團), 대한독립보합단(大韓獨立普合團)이라고도 한다.

2. 결성

1919년 3.1 운동 이후 김시황(金時晃)을 비롯해 김도원(金道源)·김동식(金東植)·이광세(李光世)·조원세(趙元世)·한우종(韓禹宗)·박초식(朴楚植)-박중식(朴仲植)-박완식(朴完植) 3형제 등이 의주군 고령삭면 동암리(現 천마군 대하리) 동암산(東岩山)에서 보합단을 창설했다. 이때 김시황이 단장에, 김동식은 총무에 선임되었다. 이후 백낙주·한이경(韓利敬)·유한백(劉漢栢)·안효준(安孝俊) 등이 단원으로 입단했다.

3. 활동

단원들은 주로 의주군·용천군·선천군·철산군에 거주하던 2, 30대 청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을 모아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송금하는 한편, 여러 무기를 구입해 일제 관공서 등 주요 기관을 파괴했고, 밀정을 암살하고 친일파를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주로 했다. 이들이 모집한 군자금의 규모는 총 83건, 5,700원에 달했다고 한다.

1919년 9월 선천군 군산면 내산사(內山寺)에 주둔하던 중 일본 경찰과 내통한 승려의 밀고로 일본 경찰 30여 명의 기습을 받았으나 빠른 대처로 일본 경찰 2명을 사살하고 5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이후 중화민국 길림성·봉천성 방면으로 가던 도중 압록강 맞은편 해안인 삼도만(三道灣)[1]에서 중화민국 경찰 및 일본 경찰에 포위돼 교전 끝에 일본 경찰 2명과 중화민국 경찰 3명을 사살하고 봉천성 동변도(東邊道) 관전현(寬甸縣)[2]으로 들어가 대한독립단에 합류하였다.

그후 대한독립단의 명령으로 다시 국내에 특파되어 1920년 8월 23일(음력 7월 10일) 평안북도 철산군 서림면 광봉동(現 염주군 인광리)에서 정봉순(鄭鳳順)·정선병(鄭善柄)[3]·김내수(金乃秀)·박여준(朴汝俊) 등 여러 동지들을 모아 의주군 고관면 이화동(現 피현군 용운리)을 근거지로 하여 보합단을 재조직했다. 이전에 창단했던 보합단처럼 조선독립을 달성하기 위해 관료 및 친일파를 총살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것을 지침으로 삼는 한편, 화약과 쇠조각 등을 모아 폭탄 13개를 제조한 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명령을 기다렸다.

1920년 9월 28일 낮 12시 단원 김내찬(金迺贊)·심창숙(沈昌淑)·김형석(金亨碩) 등과 만나 의주군 피현면 정산동(現 피현군 정산리)에 거주하는 문치무(文致武)는 일대에서 이름난 친일 밀정으로서 일제 경찰서를 자주 출입하며 조선독립운동에 폐를 끼치고, 독립운동단체 조직원들의 행동을 몰래 조사해 일본 관청 및 경찰에 밀고하므로 하루라도 빨리 처치할 방법을 협의했다.

그리고 당일 밤 12시, 권총을 휴대하여 김내찬과 함께 문치무의 자택 뒤쪽 담장을 부순 뒤 집 안에 침입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정문에서 침입해 문치무에게 2만 원의 군자금을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문치무가 현재 돈이 없다고 답하자, 단장 김시황이 '너는 군자금 2만원을 낸다고 해도 우리들은 받지 않을 것이다. 너는 오늘 사형에 처한다.'고 말하고는 대문 앞에 사형선고장을 내걸었다. 그리고는 곧 김동식이 자신이 휴대하던 칼로 문치무를 2, 3번 찔렀고, 벽에 눌러 그 옆에 솔잎을 쌓은 뒤 불을 질렀다. 문치무가 이때 고통에 견디지 못하고 집 밖에 있던 뽕나무 밭으로 도주했고, 심창숙 등이 이를 뒤쫓아 마침내 목을 찔러 죽였다.[4] 이어 문치무의 첩 임씨(林氏)를 칼로 13군데를 찔러 넘어뜨린 뒤 문치무의 집에 불을 질렀다.1922년 2월 4일 동아일보

4. 와해

문치무 살해에 가담했던 김내찬, 심창숙, 김형석 등은 1922년 2월 2일 평양감옥에서 처형되었다.

보합단장 김시황은 만주로 다시 돌아가 대한독립단의 관서지방 총관으로 활동했다. 김동식은 또한 중화민국으로 망명해 황포군관학교, 낙양강무당에서 수학하고 우페이푸의 직속 참모로 직봉전쟁에 참전했다.


[1]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 단둥시 콴뎬만주족자치현(寬甸滿族自治縣) 싼다오완촌(三道灣村). 압록강의 지류인 아이허(愛河) 강변에 위치해있다.[2]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 단둥시 콴뎬만주족자치현(寬甸滿族自治縣).[3] 1921년 11월 14일 고등법원 형사부 판결문에는 鄭善으로 기재돼 있다.[4] 1921년 11월 14일 고등법원 형사부 판결문(김흥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