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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8 01:16:56

볼차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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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탈리아 트렌티노알토아디제의 도시
1.1. 개요1.2. 지리1.3. 역사1.4. 관광1.5. 출신인물1.6. 여담
2. 이탈리아 왕립 해군의 볼차노급 중순양함
2.1. 전함소녀의 캐릭터2.2. 벽람항로의 캐릭터

1. 이탈리아 트렌티노알토아디제의 도시

파일:볼차노 깃발.svg.png
볼차노
이탈리아어 : Bolzano
독일어 : Bozen
국가 이탈리아
지역 트렌티노알토아디제
면적 52.3km2
인구 107,436명[1]
시장 렌조 카라마스키
시간대 UTC+1 (서머타임: UTC+2)

1.1. 개요

이탈리아 트렌티노알토아디제 북부에 위치한 도시. 쥐트티롤의 중심 도시다. 독일어 이름은 보첸(Bozen)이다. 쥐트티롤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티롤지방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이다. 볼차노는 이탈리아와 독일-오스트리아 문화의 융합으로 인해 중부유럽과 남유럽을 잇는 가교로 여겨진다.

1.2. 지리

알프스산맥에 안겨 있고,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다. 가장 높은 지점은 해발 1616m이고 가장 낮은 지점은 해발 232m다. 볼차노는 탈베라강과 이자르코강이 합류한 지점에 위치한다. 북쪽으로 오스트리아와 가깝고 서쪽으로는 스위스와 국경을 이룬다. 브레네르 고개를 넘으면 티롤주의 주도인 인스브루크로 갈 수 있다.

1.3. 역사

갈리아인의 침공을 피해 에트루리아인 난민들이 정착한 곳으로 원래 이곳은 습지대였다. 기원전 15년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 게르마니쿠스장군이 이 일대를 정복한 뒤 정착지를 건설하였다. 로마 제국이 몰락 후 바이에른사람이 이 일대에 정착하였으며 중세 시대 이탈리아에서 게르만인들이 가장 많이 정착한 도시 중 하나였다. 독일인이 쥐트티롤 일대로 많이 이주오자 이탈리아인은 경계하기 시작했고 이는 티롤 백작과 트렌토 주교 간의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1363년 결국 이 일대는 오스트리아 공국을 통치하는 합스부르크 가문에게 넘어갔고 1381년 오스트리아 공작 레오폴트 3세는 볼차노에 상업적 특권을 부여하였다. 볼차노는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를 잇는 교역도시로 발전하였다.

이후 14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합스부르크 가문이 티롤 백작위를 움켜쥐었기 때문에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다가 제1차 세계 대전이탈리아 왕국동맹국을 배신하며 협상국 측에 붙은 공로로 오스트리아의 쥐트티롤은 이탈리아의 영토가 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1910년까지만 해도 주민 중 2만 9천명은 스스로를 독일인으로 여겼고 오직 1500명만 이탈리아인으로 인식하였다. 이후 파시스트 정권에서 쥐트티롤 지역의 이탈리아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이탈리아계를 이 지역으로 이주시켰고 그 결과 이탈리아계가 도시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볼차노에는 이탈리아 북부의 유대인, 집시를 잡아 놓았던 수용소가 위치하였다.

전쟁 후 1946년 9월 파리에서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이 체결한 그루버-드 가스페리 협정에 따라 볼차노를 포함한 남티롤 지역에 있는 독일어 사용 인구에 대한 완전한 권리 평등과 자율적 입법 및 행정 권한을 보장하였다. 그러나 이탈리아계와 게르만계 사이의 분쟁은 여전히 남아있었고 1960년대까지 분리주의 운동이 활발했다. 결국 1971년 이탈리아 정부가 독일어를 사용하는 트렌티노알토아디제에 대한 새로운 자치법을 제정하면서 해결되었다. 또한 부과된 모든 세금의 거의 90%를 남티롤에 쓸 수 있는 상당한 수준의 자치가 이루어졌다.

1.4. 관광

1.5. 출신인물

1.6. 여담

2. 이탈리아 왕립 해군의 볼차노급 중순양함

트렌토급 중순양함 참조.

2.1. 전함소녀의 캐릭터

트렌토급 3번 볼차노를 의인화했다. 볼차노(전함소녀) 참조.

2.2. 벽람항로의 캐릭터

트렌토급 3번 볼차노를 의인화했다. 볼차노(벽람항로) 참조.

[1] 2018년 1월 1일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