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관현악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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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Bucheon Philharmonic Orchestra
1. 개요
경기도 부천시를 거점으로 하는 관현악단. 홈페이지2. 역사
1985년에 부천시립 현악합주단으로 시작되었으며, 1988년 '부천시립교향악단'으로 정식 창단하였다. 창단 당시 초대 상임지휘자는 서훈 이었으며, 이듬해인 1989년에 임헌정이 상임지휘자로 부임했다. 임헌정은 취임과 동시에 악단 규모를 보강하기 위해 역량있는 젊은 연주가들을 대대적으로 영입하기 시작했고, 1990년에는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매년 개최되는 교향악축제에 처음 참가해 여느 기성 악단 못지 않은 연주력을 보여주며 지속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이어 그 동안 한국 관현악단들이 좀처럼 다루지 못했던 쇤베르크와 베르크, 베베른 등 '신 빈 악파' 작곡가들의 작품이나 버르토크 등의 근현대 작품들을 과감히 무대에 올리면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1999년에는 한국 관현악단 사상 최초로 말러의 교향곡 1 ~ 10번 전곡을 연주한다고 발표해 충공깽을 몰고 왔다.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회는 임헌정의 와병 등으로 인해 일정이 다소 미뤄지기도 했지만, 2003년에 미완성인 10번의 1악장을 연주한 것을 끝으로 성공적으로 완료되었다. 그 전 해인 2002년에는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 관현악단들의 연속 연주회 시리즈인 '아시아 오케스트라 위크' 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곡 연주,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 등의 연이은 기획 연주회의 성공으로 부천시 측 뿐 아니라 몇몇 음악 애호가들이 자발적으로 악단 후원회를 조직해 기부금을 모으고 있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는 브루크너의 교향곡 1 ~ 9번 연속 연주회를 열었다. 다만 이 때도 임헌정의 건강 문제로 두 해 동안의 공백이 생겼고, 1번과 2번 공연은 각각 김영언과 구모영이 대신 지휘했다.
임헌정 취임 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실력과 명성을 계속 보유하고 있으며, 심지어 서울에 있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나 KBS 교향악단보다 더 잠재력을 갖추고 있는 악단으로 평하는 사람들도 있다.[1] 어쨌든 위의 두 악단과 함께 국내 3대 관현악단으로 인정받고 있다.[2] 모든 것, 특히 문화는 기형적일 정도로 서울 중심인 한국에서 평범한 어느 수도권 위성 도시의 시립 악단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는 건 기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다만 2000년대 들어 임헌정이 건강 악화로 인해 출연 취소를 하는 사례가 잦아지자 우려의 눈길로 지켜보는 이들도 있다. 임헌정이 키워내다시피 한 악단이라, 차기 상임지휘자가 물색이 안되면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 뻔하기 때문. 그리고 2013년 들어 임헌정 본인이 '2014년 12월 31일 까지만 상임지휘자로 활동한 뒤 퇴임하겠다' 고 밝혔기 때문에 후임 물색이 시급해졌는데, 2014년 1월 말부터 최희준의 뒤를 이어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이임이 확정되면서 예정보다 빨리 퇴임하게 되자 현재 원주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이자 추계예대 교수로 재직 중인 박영민을 2015년에 3년 계약으로 영입한다고 발표했다. 전임 임헌정 지휘자는 악단 설립과 발전에 대한 공로로 계관지휘자 칭호를 받았고, 퇴임 후에도 교향악축제 공연 등에 출연하고 있다. 2014년 8월 31부터 9월 4일까지 창단 이래 첫 유럽 순회 공연을 프라하와 뮌헨, 빈에서 개최했는데, 이 공연 역시 임헌정이 지휘했다.
이후 계속해서 박영민이 상임지휘자를 맡다가 2020년 단원들과의 갈등으로 사표를 냈고, 잠시 공백기를 가졌다가 2021년에 3대 상임지휘자로 장윤성이 취임하였다.[3] 그래서 잘 연주되지 않는 대곡도 편성에 넣고 하면서 나름 의욕적으로 연주에 임하고 있었고, 부천아트센터의 공사에도 자문역으로 관여하는 등 잘 이끌고 있던 와중에 갑자기 2023년 9월 2일 정기연주회 때 이날 연주가 고별연주회라는 사실이 현장에서 알려지며 충격과 공포에 빠져들게 하였다. 역시나 문제는 부천시의 만성적인 재정적자로 인한 비협조로, 장윤성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음반녹음, 해외연주, 단원충원, 대곡연주 등등의 사안들이 하나하나 다들 좌절되며 더이상 할게 없었던 상황에서 빡쳐서 임기 중 사표를 던진 것으로 보도되었다. 실제 연초에 공지된 연주 스케줄에서 갑작스레 곡이 변동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당장 그만두기 직전에만 해도 당초엔 광복절 기념+부천아트센터 개관 기념으로 본인이 유럽 초연했던 펜데레츠키의 교향곡 5번 한국을 연주한다고 되어 있었고, 23시즌에 가장 심혈을 기울여 준비중이라고 홍보까지 했었는데, 소리소문 없이 해설음악회 비슷하게 바뀐 사례가 있었다.
부천시 측도 만성적인 예산 부족에 허덕이고 있어서 제대로 재정 지원을 하기가 빠듯한 상황이다. 그리고 창단 이래 2023년 초까지 메인 공연장으로 쓰고 있었던 부천시민회관도 1988년 개관 이후 시설이 노후되어 있는데다, 애초에 관현악 전용으로 설립된 곳이 아니라서 음향 문제 때문에도 계속 디스당하고 있었다. 이 때문인지, 굵직한 연주회들은 음향 조건이 좀 더 좋고 더 많은 청중들을 수용할 수 있는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개최하는 경우가 많다.[4] 수도권에 여러 좋은 콘서트홀이 건립된 이후에는, 롯데콘서트홀이나 고양아람누리, 아트센터 인천 등에서도 연주를 하고 있다. 심지어 악단의 명성에 비해 단원들의 보수나 처우 같은 면도 다른 시립 악단들과 비교하면 크게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열악한 수준이어서, 2000년대 중반 이후 연주자들의 이직이 잦아지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2013년에 부천시의회 의원들이 부천필과 합창단에 배정된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기존 연주 계획의 대폭적인 축소가 불가피해지는 등, 악단의 활동에 먹구름이 끼기도 했다. 실제로 배당된 예산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인지 2월 연주회의 예산상 일부 취소 공지가 떴고, 다른 공연들도 예정대로 개최될 지 미지수일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다. 다만 봄이 되고 나서는 시의회와 시립예술단 간의 대립 상황이 다소 진정된 모습을 보여주였고, 공연 일정도 다소 축소되기는 했지만 굵직한 연주회 시리즈를 중심으로는 대체로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부천시청 측은 계속 지지부진했던 악단 전용 콘서트홀 건립에 대해[5] 2016년 6월부터 다시 기본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고, 2017년 1월에 시청사의 테니스장과 농구장 부지에 콘서트홀을 건립해 악단 상주 공연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사업 타당성 검토와 투자 심사, 실시 설계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착공이 미뤄져서 2019년에서야 실제로 첫 삽을 떴고, 최종적으로 1445석의 콘서트홀과 304석의 블랙박스형 소공연장까지 갖춰 부천아트센터라는 이름으로 2022년 10월에 준공식을 개최했으며, 테스트 공연 등을 거친 뒤 2023년 5월에 이사를 가서 19일에 개관 공연을 시작으로 상주하게 되었다. 준공과 개관 사이에 반년 이상 차이가 나는 이유는, 음향 점검 같은 것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그 사이에 무려 파이프오르간을 지자체 건립 공연장 최초로[6] 설치하기 때문. 그래서 준공식때는 빔프로젝터를 쏘기 위한 대형 스크린을 내려 무대 뒤 벽면을 가려 놓았고, 이 자리에 오르간이 설치될 예정임을 설명했다.
예술의 전당을 자주 대관해 공연하며 명성을 얻은 악단이라 그런지 해당 공연장의 자체 기획 공연 시리즈에서도 자주 초청받아 연주하고 있는데, 2011년에는 '더 그레이트 3B 시리즈(The Great 3B Series)' 중 브람스를 주제로 한 4회의 연속 연주회에서 교향곡 전곡(1~4번)과 협주곡 네 곡(피아노 협주곡 1~2번, 바이올린 협주곡,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2중 협주곡)을 모두 공연하였으며, 2013년에 개관 25주년을 맞아 준비한 특별 연주회에서는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장영주 협연)과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무대에 올렸다. 또 원래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위대한 작곡가 시리즈(The Great Composer Series)'의 일환으로 두 번째 브루크너 교향곡 1~9번 연속 연주회를 임헌정의 지휘로 개최할 계획이었으나, 이 시리즈는 임헌정이 부천 필 퇴임 후 이임한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합창이 붙는 작품은 같은 시립예술단 소속인 부천시립합창단[7]과 협연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 관현악 연주회 외에도 단원들의 실내악 그룹 음악회나 해설 음악회, 발렌타인 데이 등의 이벤트 콘서트 등 다양한 컨셉으로 공연을 기획하고 있기도 하다.
1990년대 중반에는 애니메이션 영화 《돌아온 영웅 홍길동》의 OST 연주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원작 영화가 대차게 까이는 바람에 흑역사가 되고 말았다. 여타 음반으로는 2002년 아시아 오케스트라 위크 실황 음반 같은 물건들이 있지만, 대부분 악단 정기 회원들을 위한 특전이나 공연장 현매 혹은 비매품으로 나가서 유통 경로는 한정되어 있다. 2009년에는 유니버설 뮤직 한국 지사에서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을 첫 상업용 음반으로 출반하기도 했다.[8] 악단 홈페이지에서도 저 음반의 음원을 비롯해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말러 교향곡, 기타 관현악 소품 등의 음원들을 들을 수 있다.
박영민 지휘자 부임 후에는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한국 지사에서 음반을 내고 있다. 2016년 4월에 고양아람누리에서 스튜디오 녹음한 말러의 교향곡 제6번이, 2017년 4월에 역시 고양아람누리에서 스튜디오 녹음한 말러의 교향곡 제1번이 발매되었다.
[1] 심지어 저 양대 악단이 각각 세종문화회관과 한국방송공사 사이의 알력으로 신나게 현피뜨면서 이미지를 구겼을 때는 '너희들 부천필 보고 좀 배워야겠네효' 라고 노골적으로 까는 기사가 신문들에 실리기도 했다.[2] 이에 대한 단적인 사례로 2002년에 열린 교향악축제를 들 수 있다. 당초에는 이 해 축제의 경우 몇달 뒤에 열릴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성공개최를 염원하는 의미로, 월드컵 경기가 펼쳐질 10개 도시의 시립교향악단만 초청하여 연주하는 것으로 기획을 잡았었다(단, 제주월드컵경기장은 교향악단이 없는 서귀포시에 있어서, 대신 바로 위의 제주시향(현 도립제주교향악단을 초청). 그런데 그렇게 알려진 이후 교향악축제에 부천필이 빠지는건 말이 안된다는 여론이 꽤 강하게 일어서, 결국 이 10개의 시향에 특별 초청 형식으로 부천필만 추가하고, 거기에 예술의전당 상주악단 자격으로 코심을 더해 12개 악단이 연주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되어 축제가 진행된 적이 있었다. (참고로 여기에 KBS교향악단이 빠진건 당시까지만 해도 지방악단에 기회를 준다는 이유로 서울시향과 KBS는 번갈아가면서 한군데만 초청한다는 원칙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마침 그 해는 서울시향 차례였기 때문이다.)[3] 공교롭게도 후임 상임지휘자들이 모두 임헌정과의 관련성이 있는데, 박영민의 경우 임헌정의 1세대 제자 출신이고, 장윤성은 임헌정이 서울대 작곡과 지휘전공 교수로 재직하다 정년퇴임한 그 자리의 신임 교수로 임용되어 재직중이다.[4] 다만 대관료 등의 문제 때문인지, 부천 연주회보다 서울 연주회의 입장료가 평균 두 배 비싼 편이다. 서울 사람들도 차라리 부천에서 공연 보는 게 교통비 등을 감안해도 더 싸게 먹힐 정도였다. 부천아트센터로 터전을 옮긴 이후에는 서울이나 부천이나 티켓 가격이 같다.[5] 사실 건립 추진 자체는 이미 199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애초에 부천시가 돈이 별로 없는 지자체인데다 각종 지방 정치 이슈와 뒤섞이면서 수십년간 추진했다 엎어졌다를 되풀이해온 해묵은 과제였다. 그간 건설 예정 부지만 여러 번 바뀌어 왔다. 예를 들어 위에 설명된 임헌정과 시의회와의 갈등 안에도 이 문제가 어느 정도는 포함되어 있었다.[6] 물론 대극장에 파이프오르간이 있는 세종문화회관이 현재는 지자체인 서울시 소속이라 이 표현이 애매하긴 하지만, 이 당시엔 지방자치제도 아니었고 경내에 박정희의 친필 휘호비가 있는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사실상 국가예산으로 건립해 서울시에 배정한 것이므로 지자체 건립 최초란 말이 완전 틀린 것은 아니다.[7] 창단 당시의 명칭이기도 하며, 2000년대 후반에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코러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가 2013년 7월 부로 다시 초기 명칭으로 환원되었다.[8] 원래 악단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비매품이었지만, 이후 좋은 평판을 받게 되자 아예 유니버설 뮤직 코리아를 통해 공식 상업반으로 재출반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