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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케도니아 |
1. 개요
북마케도니아의 역사를 다루는 문서.2. 고대
현재 이 나라 국민들 대부분은 슬라브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고대에는 그리스어를 쓰는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1] 고대 그리스의 마케도니아 왕국은 지금의 북마케도니아와 현재의 그리스 북부를 아우른 영토였다. 그리고 현 북마케도니아는 고대 그리스의 마케도니아 왕국의 중심지는 아니고 북부의 변방 지방이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절 전성기를 맞은 마케도니아 왕국은 이후 분열되며 약화되었다.이후 로마가 점차 그리스로 영향을 확대하며, 마침내 그리스 전역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그리스의 문화가 대거 로마로 흘러가 로마 문화의 원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로마 제국 시기까지는 북마케도니아 지역에서 그리스인들의 전통이 이어졌다.
그러나 로마 제국 말기인 4세기말 훈족의 침입과 게르만족의 대이동의 대혼란기를 거쳤고, 특히 발칸반도 남쪽 일대는 밀려오는 훈족과 훈족을 피해 남하하는 고트족, 그리고 이를 저지하려는 서로마 제국 3자가 뒤엉켜 싸우는 헬게이트가 펼쳐졌고, 그리스인들은 난리통을 피해 훈족과 고트족의 영향이 덜 미치는 안전한 남쪽으로 피난해갔으며, 현재 북마케도니아를 비롯한 발칸 반도 일대에는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황무지로 변하게 되었다.
3. 중세
발칸 반도는 한동안 유력한 정치세력이 지배하는 국가가 없는 상태로 방치되어 오다가 6세기 무렵 슬라브인들이 남하하여 지배자 없는 발칸반도에 정착했고, 이 지역에 남아 있던 주민들은 남하해온 슬라브인들에게 결합, 동화되었다. 슬라브인들은 발칸반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지금의 북마케도니아-불가리아를 경계로 그리스와 나뉘게 되었다.불가리아 제1제국은 이름과 다르게 지금의 불가리아 땅이 아니라 북마케도니아의 스코페, 오흐리드에 수도가 있었다.
11~12세기 동로마 제국의 전성기 시절에는 확고한 동로마의 영토였으며 이 지역에는 슬라브인들이 많이 살았고 동방인들의 이주장려로 인해 서부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넘어온 아르메니아인들도 많이 살았다.
4. 근세
동로마가 몰락한 후에는 발칸 반도의 지역 강국들인 세르비아 공국과 불가리아 제국의 지배를 거쳐 이들과 더불어 사이 좋게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는다.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제국의 핵심지인 그리스-아나톨리아 서부 해안과 발칸 반도의 자연 연결지 역할을 수행하다 보니 비톨라(오스만어로는 마나스트르·Manastır), 스코페(위스퀴프·Üsküb), 테토보(칼칸델렌·Kalkandelen), 오흐리드(오흐리·Ohri) 같은 많은 도시들이 이 시절 오스만 제국의 역참, 행정, 무역 거점으로 발전했다. 지금은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갈라져 나온 소국 정도로 취급받지만 이 시절만 하더라도 대제국의 중심부 중 하나로 상당한 위상을 지녔던 지방이다.5. 근대
19세기 민족주의 열풍이 몰아닥치면서 이 지역도 민중 지도자들이 등장하여 일련의 반란을 일으켰다. 특히 마케도니아인과 불가리아인이 주도한 마케도니아 혁명 기구(Македонска револуционерна организација)는 1903년에 일린덴 반란(Илинденско востание)을 일으켜 크루셰보 공화국(Крушевска Република)을 세운 바있다.발칸 전쟁의 결과 세르비아에 귀속되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후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나치 독일 침공 이후에는 바르다르 마케도니아라는 사실상 괴뢰국인 독립 국가가 세워지기도 했으나,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주도하는 파르티잔들이 승리하면서 자연스레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에 편입되었다.
6. 현대
티토는 이 지역을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으로 연방구성체의 일원으로 끼워주고 마케도니아어도 독자적 언어로 인정했는데, 여기에는 세르비아, 불가리아, 그리스에 대한 견제구의 의미가 있었다. 이런 의도를 모를 리도 없고,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니 이들 나라는 '마케도니아'라는 명칭에 타당성이 없다는 이유로 대신 티토스탄(Titostan)이라는 멸칭으로 부른다. 이런 관계로 인해 소련은 자기말 안 듣는 티토를 견제할 때 한 번씩 불가리아를 시켜 북마케도니아의 종주권 운운을 하게 했다고 한다.별탈 없이 유고 연방의 구성국으로 조용히 살아오다가, 1991년 6월 25일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면서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서막이 오른다. 마케도니아 공화국도 다른 공화국들의 독립에 자극받아 같은 해 9월 8일 독립을 선언했지만, 분리독립 이후 내부 민족 간 분란으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크로아티아나 보스니아 같은 다른 구유고권 국가들과 달리 현지의 인구 구성비에서 세르비아인의 비중이 적었고, 당시 세르비아에서도 크로아티아의 분리독립 저지에 힘을 쏟느라 여기까지 신경쓸 여력이 없어, 독립 이후에 세르비아와의 전쟁이나 자국 영내에서 거주하는 세르비아인들의 반발[2]과 저항으로 촉발되었던 민족 간 내전을 피하고 비교적 평화롭게 독립할 수 있었다.[3]
하지만 독립 이후 동부 지역에 거주하던 남슬라브 계열의 마케도니아인들이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이슬람교를 믿는 서부의 알바니아계들을 홀대,배척하면서 민족/지역 간 갈등이 증폭되었다. 설상가상으로 1999년 코소보 전쟁이 벌어지면서 코소보에서 살던 알바니아계 난민들이 대거 마케도니아로 피난을 왔는데, 2001년에 알바니아의 지원을 받은 코소보 해방군이 36만 명의 코소보 알바니아계 난민[4]들이 거주하는 마케도니아의 영토[5]를 삼키고 대 알바니아주의 사상을 실현할 생각으로[6] 내분을 선동하면서 여기에 고무된 마케도니아의 알바니아인들과 마케도니아 정부 사이에 내전이[7] 발발하였다. 하지만 마케도니아는 당시 군사력이 워낙 약해서 NATO와 이웃나라인 불가리아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NATO를 이끄는 조지 워커 부시 미국 대통령과 당시 불가리아의 총리였던 시메온 2세[8]가 이를 받아들여 많은 양의 무기와 병장기들을 지원하여 반란 세력을 모두 제압하였고, 마케도니아에 있는 코소보 난민 36만 명 중 대부분(25만 명)을 알바니아로 보내고 마케도니아 정부 측에서 알바니아계 마케도니아인에 대한 처우 개선과 시민/자치권 부여를 약속함으로써 내전은 막을 내렸다. 여하튼 이 일 때문에 북마케도니아는 알바니아와 몹시 사이가 안좋다.
이렇게 독립해나간 신생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국제사회에 이름을 알린 것은 유명한 그리스와의 국명 분쟁, 즉 마케도니아의 나라 이름에 관한 양국의 다툼이다. 현 그리스의 북부가 마케도니아 남부이고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을 자국사로 인식하는데 이 나라가 독립하고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분쟁이 생긴 것이다. 때문에 북마케도니아는 한동안 국제사회에서 구 유고슬라비아 마케도니아 공화국(FYROM, Поранешна Југословенска Република Македонија)이라는 이름을 사용해야 했다.[9]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그리스-마케도니아 분쟁을 참고. 분쟁 끝에 2017년 8월 31일에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공화국 양국은 관계개선에 합의했다.# 2018년 1월 7일에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자에프 총리는 상반기내에 그리스와 해법을 찾는 것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2016년 12월 27일. 총선 결과 거의 동률 수준의 2석 차이로 보수당이 이겼지만 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리고 12월 총선이후에도 혼란은 일어나고 있고 야당 측이 알바니아어를 제2공식어로 지정할 움직임을 보이자 대통령이 거부를 보였고, 거기에다 야당의원에 불만을 품은 시위대가 의회를 점거하고 의원들을 폭행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다가 6개월만에 중도좌파 새정부가 구성되고 EU와 나토가입을 재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2018년 6월,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으로 변경하기로 합의하였으나, 아무래도 서로 원래 입장에서 한 발짝 양보하는 형태다 보니 이 나라와 그리스 모두 이 합의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있다.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8년 10월, 투표가 열렸지만 반대파들의 보이콧으로 겨우 37% 투표에 그쳐 버렸다. 이러니 찬성 측이 91%라는 압도적인 수치로 북마케도니아 공화국 이름을 지지했지만 과반수도 안되는 투표율이라 부결해야 한다는 반대파 태도도 완강하다. 그럼에도, 집권 사민당 정부와 찬성파는 이번 투표 결과를 토대로 의회 비준을 강행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비준 강행도 무척 회의적이었던 게 야당뿐 아니라 여당에서도 반대파가 나오는 판국이기 때문.
2019년 1월 25일, 그리스 의회가 마케도니아 공화국과 체결한 마케도니아 국호 변경 합의가 통과되면서 국명이 '북마케도니아'로 공식 변경되었다. 그리스 관영매체 북마케도니아 관영매체 국명 문제가 해결되자 북대서양 조약 기구 가입을 신청했다.# # 가입 절차가 완전히 끝나기도 전인 2월 12일 정부 청사에 NATO 기를 재빠르게 게양했다.#
국정농단사태로 인해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워졌다.# EU 가입이 좌절되자 조기 총선도 검토 중이다.# 2020년 1월 3일, 조란 자에프(Зоран Заев) 총리가 사임했으며 중립 내각이 당분간 정부를 이끈다.#
6.1. 2020년대
2020년 3월 27일, 드디어 오랜 숙원이었던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의 30번째 정회원국이 되었다.7월 15일 치러진 총선에서 친유럽연합(EU) 성향의 중도좌파 정당이 사실상 승리했다.# 8월 조란 자에프가 총리직에 복귀하여 연정이 수립되었다.#
불가리아와의 역사분쟁이 계속해서 EU 가입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 그리스와의 분쟁이 해결되니 또다른 암초에 걸린 격.
2021년 5월, 오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가 북마케도니아의 EU 가입에 찬성함을 밝혔다. 불가리아는 언어 문제까지 거론하며 계속해서 반대하고 있다. #
2021년 11월, 자에프 총리가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조기사임을 발표했다. 그의 최고 역점 정책인 EU가입도 불분명해졌다. #
[1] 선주민을 제거하고 정착한 게 아니기 때문에 남하한 슬라브인들과 같이 살며, 오랜 세월 동화되어 슬라브인의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이지, 슬라브 이전과 혈통적으로 전혀 관계없는 것은 아니다.[2] 사실 크로아티아 전쟁과 보스니아 전쟁 당시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지역에서 살던 세르비아계 세력들이 분리독립에 반대하며 크로아티아인 중심의 크로아티아 정부와 보슈냐크인 중심의 보스니아 정부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게 된 배경에는 이 지역에서 살던 세르비아계 집단들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의 지원을 받던 크로아티아의 우스타샤와 보스니아의 한트샤르에 의해 대량 학살당하는 등 해당 지역이 유고 연방으로부터 분리독립 되면 다시금 제2차 대전때처럼 자신들을 죽이거나 쫓아낼거라는 피해의식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 주요한 원인이었다.[3] 다만 이와 별개로 마케도니아 독립 전,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에서 복무하다 슬로베니아나 크로아티아에 파견된 마케도니아인 54명이 전사하였으며 나머지 마케도니아인들도 마케도니아 독립 후 고생하며 전쟁터에서 빠져나와 귀국할 수 있었다.[4] 코소보 인구의 20%에 달한다.[5] 당시 북마케도니아는 난민을 수용/통제할 능력이 없었기에 북마케도니아 북부 코소보 접경지 일대에 알바니아인 난민들을 받아주되 방치하였다. 마케도니아로 간 난민들은 마케도니아가 난민으로 온 자신들을 대접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자신들이 거주하는 코소보 접경지를 코소보한테 들어 바치거나 독립할 생각을 했다.[6]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알바니아 공국 땅이라는 점을 명분으로 했다.[7] 위키백과에는 2001년 마케도니아 반란이라고 돼 있다. 항목[8] 불가리아의 전 국왕이던 그 사람이 맞다.[9] 북마케도니아 쪽도 딱히 피해자라고만 할 수는 없는게, 수도의 스코페 국제공항#에 고대 마케도니아의 영웅인 "알렉산더 대왕 국제공항"이라는 이름을 떡하니 박아놓았다. (2018년 폐지.) 그러니 그리스에서 보는 시각이 좋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