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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5 07:3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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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개요2. 관찰학습
2.1. 폭력성의 관찰학습?2.2. 이야깃거리

1. 개요

/ Social learning

사회학습은 인지학습의 일종으로, 모방학습(imitative learning), 관찰학습(observational learning)등이 있다. 당연하게도, 인간의 윤리적 언어적 능력을 발달시키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2. 관찰학습

관찰학습(, observational learning)은 사회학습의 일종으로, 모델을 관찰한 경험으로 인해 발생하는 행동상의 변화이며, 단순 모방학습(imitative learning)과 구분된다.#

의외일지 모르지만 최초의 관찰학습 연구를 시행한 사람은 바로 손다이크(E. L. Thorndike)였다. 퍼즐박스를 활용한 그의 실험에서, 손다이크는 고양이원숭이를 가지고 관찰학습이 가능한지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의 연구에는 방법론상의 결함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관찰학습이 존재함을 입증하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이 때문에 손다이크는 "관찰학습은 없다"라는 결론을 내리고는 다시는 관찰학습을 연구하지 않았다.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반두라(A. Bandura)와 그의 동료들을 비롯한 많은 연구자들이 다시금 관찰학습에 관심을 가졌다. 관찰학습을 위해서는 먼저 별도로 훈련된 모델 유기체와, 훈련받지 않은 관찰자 유기체가 필요했으며, 단순히 관찰만 가지고도 관찰자 유기체가 모델의 훈련을 그대로 복사 및 흡수(?)할 수 있을지가 요점이었다. 물론 학습은 그보다는 훨씬 더 미묘하게 일어나는 것이지만, 60년대의 여러 전설적인 실험들은 관찰학습이 명백히 존재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이것이 실제 자녀교육과 범죄 문제, 입법 활동 등에서 매우 중요한 핵심 중의 핵심을 차지한다는 것을 밝혀내어 큰 파장을 일으켰다.

관찰학습의 주제들은 크게 몇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대리 고전적 조건형성, 대리 조작적 조건형성, 에뮬레이션(emulation), 모방 일반화 등이 있다. 이 중에서 대리 고전적 조건형성의 경우는 기존의 조건형성 이론들만으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많으며, 에뮬레이션은 이것과는 물론 관계가 없고 모델의 행동을 세세하게 따라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동일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차이가 있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자면, 관찰학습과 모방(imitation)은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모방은 학습과는 다른 차원에서의, 일체의 강화나 처벌과는 관계없이 나타나는 "행동 베끼기" 현상이다. 양자의 차이를 극명히 보여주기 위해 몇몇 사례를 들어 보자. 한 어린이가 다른 어린이의 종이학 접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종이학을 접기 시작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것은 모방이지만 관찰학습이 아닐 수도 있다.[1] 반면, 한 어린이가 다른 어린이 앞에서 돌처럼 딱딱한 눈깔사탕을 입에 넣고 곤경에 빠진다면, 관찰자 어린이는 그 사탕을 입에 넣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모방이 아니지만 어쨌든 관찰학습이다.[2]

만일 관찰학습의 속도를 더 빠르게 하고 싶다면, 다음의 요건들을 충족시키면 된다.

관찰학습은 사회심리학 계통에서도 중요하게 취급되는 주제다. 그 사회적 함의도 그렇거니와, 기존의 조건형성 이외의 다른 메커니즘을 찾다가 "개인의 행동이 그가 처한 외부 환경에 영향을 주고 바꿀 수 있으리라고 믿어지는 인지적 기대" 때문일 거라는 아이디어가 나왔기 때문. 여기서 시작한 사회적 학습(social learning)의 논의는 80년대 초엽이 되자 마침내 사회적 인지(social cognition)라는 정립된 이론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자기효능감(self-efficacy)과 같은 영향력 있는 아이디어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사회심리학에서는 관찰학습의 연구자 앨버트 반두라행동주의에서 인지주의로 넘어가는 전환 국면에 위치시키기도 한다.

한편 현대의 신경과학자들은 관찰학습이 전두엽과 거울 뉴런(mirror neuron)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2.1. 폭력성의 관찰학습?

파일:attachment/learning-and-violence.jpg
(출처)

40~50년대에는 동물들을 가지고 깔짝거리며 연구하는 수준이었지만, 반두라의 "보보 인형 실험"[3]이 예민한 사회적 논쟁을 촉발시켰다. 대략 이렇게 생긴 인형샌드백 삼아서 영상 속 폭력적 이미지가 어린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실험이었다. 우선 통제 집단의 어린이들에게는 한 어른이 보보 인형과 함께 조용히 앉아서 놀고 있는 영상을 보여주었고, 실험 집단의 어린이들에게는 한 어른이 보보 인형에게 거친 언사를 퍼부으며[4] 장난감 망치로 그것을 마구 두들겨패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이후 이 어린이들은 영상 속 어른이 있던 방으로 이동하였고 방에서 보보 인형을 만났다.

이 실험은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5] 반두라 본인부터가 이미 자신의 저서에서 "텔레비전 덕분에 어른이든 어린이든 안방에 편하게 앉아서 흉악한 범죄를 학습할 기회가 무제한적으로 주어지는 현실"을 개탄했으며, 텔레비전과 같은 영상 매체들을 검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반두라의 실험 이후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반두라가 "제가 어딜 가든 꼭 보보 인형 이야기가 나오더군요"라고 말했을 정도.

1963년에 수행된 반두라의 연구에서는 기존의 보보 인형 실험에다가 조작적 조건형성을 섞었다. 여기서는 "로키"와 "죠니"라는 이름의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로키는 허구한 날 죠니를 갈구고 괴롭히고 온갖 장난감을 모조리 빼앗는 악랄한 악당으로 묘사되었고, 죠니는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로키에게 당하면서 사는 인물로 묘사되었다. 그런데 영상의 마지막 부분에서 로키는 자신이 죠니의 놀이방에서 빼앗은 모든 장난감들을 자루에 쓸어담고, 죄책감 따위는 전혀 없이 즐겁게 콧노래를 부르며 놀러 나가는 장면이 있었다. 마치 산타클로스처럼 장난감 자루를 등에 짊어진 로키가 "다음에는 또 어디 가서 놀까♬" 하며 화창한 푸른 들판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해설자가 "이렇게 로키가 승리했습니다! 로키는 승리자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영상이 끝났다.[6] 이 영상을 본 어린이들의 반응은 더욱 극적이었는데, 다른 아이를 괴롭히는 것으로 그치는 건 많이 양반이고, 심지어 로키를 똑같이 따라하기 위해서 "장난감을 담을 자루는 어디 있어요?"라고 연구자에게 물어보는 어린이도 있었다!

연구자들은 단순히 보보 인형을 때리고 그치는 것에서 넘어서서, 그러한 폭력적 행동이 은연중에 잘 했다고 부추김을 받는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67년에 진행된 연구에서는[7] 보보 인형 시나리오를 살짝 비틀어서 보여주었다. 두 집단 모두 어른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폭력적인 언행을 하는 영상을 보았지만, 한 집단의 시나리오에서는 그 어른이 폭력적으로 굴 때마다 동료 어른이 그것을 칭찬했으며, 다른 집단의 시나리오에서는 그 어른이 폭력적으로 굴 때마다 동료 어른이 그것을 준엄하게 꾸짖는 모습이었다. 그 결과, 전자의 영상을 본 어린이들은 후자의 영상을 본 어린이들보다 현저히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다시 말해 전자는 폭력적인 언사를 옳은 행위로 인식한 것이고, 후자는 그것을 그른 행위로 인식한 것이다. 그런데 이듬해에 학계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당시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등장 인물들이 폭력적이거나 불법적인 행동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는 사례가 무려 56%였다.

정말로 텔레비전만악의 근원일까? 텔레비전은 아이들에게 범죄와 불법 행위, 폭력적 행동을 가르치는 사악한 매체일까? 의외로 이 문제는 팩트의 문제라기보다는 가치의 문제일 수 있다. 학자들마다 동의하는 부분도 적지 않지만,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이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보면 이미 결론은 난 것처럼 보인다. 세계 각국에 존재하는 영상물 등급 제도가 그 사례이며, 이미 대한민국 역시 방심위에서 어린이들에게 잠정적으로 유해할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규제하고 있다.

적어도 학자들의 차원에서 보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 반두라의 실험 디자인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는 연구자들도 일부지만 있다. 실험에 동원될 어린이들에게 실험을 명목으로 그들이 갖고 있던 장난감들을 전부 압수하는 바람에 그들이 열받게 만들었다는 것. 그러하니 실험 집단의 경우는 그 욱한 감정이 폭발한 것이고, 통제 집단의 경우는 자기 장난감을 도로 찾았으니 화를 낼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이 문제를 다룰 때 다음의 주제들에 관하여 아직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을 유의할 것.

이와 관련하여 폭력성의 관찰학습 이슈에 비판적인 연구자로 크리스토퍼 퍼거슨(C. J. Ferguson) 등이 있는데, 국내에도 《모럴컴뱃》 이라는 저서가 번역되어 들어와 있다. 해당 도서의 역자가 직접 네이버 프리미엄에서 소개한 글도 존재한다. #1 #2

2.2. 이야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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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때 영국에서는 관찰학습과 관련된 뜻밖의 주제가 제기된 적이 있다. 아침에 우유 배달원들이 각 집의 현관 앞에다 우유병을 배달해 주면, 새들이 날아와서 우유병을 밀봉한 은박지를 쪼아서 찢고 그 속에 담긴 우유와 크림을 먹어치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런데 이런 습성이 과연 관찰학습이냐 아니냐가 문제가 되었던 것. 관찰학습이라면 자기 동료가 은박지를 찢고 만찬을 즐기는 것을 본 다른 새들이 똑같이 따라하는 것일 터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새들은 그냥 반짝이는 것을 아무 생각없이 쪼다가 우연히 그 속에 담긴 맛있는 식사거리를 발견한 셈이다. 대체로 학자들의 의견은 이것이 관찰학습이 아닐 것이라고 기울어지는 듯.

심리학계 내부에서 행동과학의 패러다임이 상당 부분 극복된 오늘날에도, 관찰학습은 여전히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특히 학습심리학에서 행동과학에 많은 빚을 지고 있기 때문에,[18] 현대의 학습심리학에서 관찰학습은 극도로 중요한 핵심 테마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학습치료나 학습상담 계통에서도 어째 "TV가 만악의 근원, 게임이 만악의 근원" 논리를 종종 접할 수 있다.

일군의 연구자들에 따르면 자폐증 환자들을 이해하는 데 관찰학습이 큰 기여를 한다고 한다. 전두엽은 망가졌지만 반대로 후두엽은 오히려 일반인보다 발달하므로 시각에 의존하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19]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런 특징을 이용해서 그림 카드 등으로 자폐인들에게 사회생활 규칙이나 대화법, 감정 등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공포증 환자들의 치료법으로도 응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고양이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안전한 거리에서 고양이와 친밀하게 어울리는 모델의 모습을 바라보며 조금씩 공포증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1] 관찰자 어린이가 그 이전에 이미 종이학 접는 법을 알고 있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2] 관찰자 어린이가 "저 사탕을 함부로 먹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학습했기 때문이다.[3] 항목 상단의 이미지가 바로 이 실험 장면들을 모은 것이다.[4] 예를 들면 "네 녀석을 가만 두지 않겠어!" 같은 것들. 욕설을 한 것은 아니다.[5] 물론 학술적으로도 굉장히 의미있는 실험이었다. 조건형성과는 일체 관계없는 방식으로 학습이 발생했기 때문.[6] 행동과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로키의 악행이 정적 강화(positive reinforcement)를 받은 것이다.[7] M. Rosekrans & W. Hartup, 1967.[8] 미국 소아과 의사 협회, 미국 심리학회, 미국 아동 및 청년 정신의학 협회, 미국 의학 협회 회원들로 구성된 위원회. 출처는 《학습과 행동》, P. Chance 참조.[9] Zillman & Weaver, 1999.[10] Anderson & Bushman, 2001. 특히 이 연구에서는 약간의 시청만으로도 공격성이 빠르게 발현한다고 보고하였다.[11] Johnson, Cohen, Smailes, Kasen, & Brook, 2002. 다른 연구에서는 이것이 일시적이거나 즉흥적인 공격성이 아니며, 예를 들어 유치원에서 본 것을 기억했다가 최대 몇 달 후에 집에서 재현하는 사례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Barr & Hayne, 1999; Hayne, Boniface & Barr, 2000; Klein & Meltzoff, 1999.[12] 이 관점이 강하게 반영된 행동과학 전공서적으로는 《학습과 기억》, M. A. Gluck et al.을 참조할 것.[13] 폭력적 비디오 게임을 통한 공격성의 증가가 관찰되지 않았다고 밝히는 논문들도 의외로 많다. 대표적으로 McCarthy, Coley, Wagner, Zengel, & Basham, 2016.[14] 여담이지만 둠 시리즈가 개발되던 당시, 개발자들 중에 독실한 크리스천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피 튀기고 잔혹하고 악마적인 게임을 만들어도 괜찮으냐"고 묻자, "그 악마들을 잡아 족치는 게임이니까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다고.[15] 《거짓말을 파는 스페셜리스트》 에 이 내용이 나온다. 이 책의 저자 D. 프리드먼은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갈리는 대표적인 사례로 폭력성의 관찰학습을 들었다. 그의 인용에 따르면, 영국의 한 심리학자는 "누구든 이에 대해 어떤 쪽으로도 확신을 갖고 주장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극심한 혼란 그 자체"라고 평하기도 했다.[16] 행동주의적 관점에서 FPS 장르 게임에 비판적인 관점을 찾는다면 데이브 그로스먼(D. Grossman)의 저서 《살인의 심리학》 을 참조.[17] 성균관대학교의 최훈석 교수가 이와 관련하여 무분별한 게임 규제를 비판하는 맥락의 연구를 한 적이 있다.[18] 그 외에도 행동경제학 같은 경우에도 행동주의의 접근법이 매우 유효하다. 다른 학제들은 대부분 인지적 접근법이나 수학적 접근법, 또는 두뇌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쪽으로 넘어간 상태.[19] 연합뉴스 2011-04-05 <의학> 자폐아, 시각능력 뛰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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