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의 육군 소장 시절[1]
石主岩[2]
1917년 ~ 1999년 7월 19일
1. 생애
1917년 함경북도 무산군에서 태어났다. 만주국 젠다오성 옌지현 젠다오사도학교(間島師道學校)를 졸업하고 1940년 만주국육군군관학교(8기)를 졸업한 뒤 만주군에서 포병 장교로 근무했다.일제 패망 시 소련군이 신경에 입성하자 만주군과 관동군 출신의 조선인 군인 400여명이 신경보안사령부를 만들어 정일권에 이어 김석범이 사령관을 맡았는데 석주암은 신경보안사령부의 경비대에서 교관을 지냈다.
1946년 경기도 인천부로 귀국해 같은 해 조선경비사관학교(2기)를 졸업한 뒤,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임관했으며, 제5사단 참모장 시절 화순군 지역에서 빨치산을 진압했다.
6.25 전쟁기에는 백선엽의 참모장으로 낙동강 전투와 평양 탈환 작전에 참가했다.
육군 헌병사령관, 육군 정보국장, 제29보병사단장을 거쳐 제6군관구사령관으로 있던 중, 사령부 관할의 용산 저탄장(貯炭場)을 서울석탄회사에 대여한 이른바 저탄장부정사건으로 징계위에 회부되어 육군 소장으로 예편하였다.
이후 대우중공업 비상임 고문을 지냈고, 1999년 7월 19일 오후 5시 30분에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사망했다.[3]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군 부문에 등재되었다.
2. 가족
- 처: 민경식
- 장남: 석대현(石大現) - 치과원장.
- 차남: 석광현(石光現) -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사법시험 합격. 현 서울대학교 로스쿨 교수.
- 장녀: 석명숙. 壻: 홍석제
- 차녀: 석영숙. 壻: 한만철
[1] 우측은 육군 빙상부 소속의 조윤식 선수로 1953년 핀란드 헬싱키 세계선수권 참가 후 귀국하여 석소장에게 보고하는 장면이다.[2] 1953년 9월 25일 조선일보 기사에는 石柱岩으로 등재되어 있다.[3] 1999년 7월 20일 조선일보 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