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오버 그룹 포르테 디 콰트로의 멤버이자 불타는 트롯맨의 우승자에 대한 내용은 손태진 문서 참고하십시오.
<colbgcolor=#131230><colcolor=#fff> 손태진 孫泰進 | Son Tae Jin[1] | |
출생 | 1988년 5월 5일 ([age(1988-05-05)]세) |
대구직할시 서구 비산동 (現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2]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경주 손씨 (慶州 孫氏) |
신체 | 180cm, 68kg, O형 |
가족 | 아버지[3], 어머니, 형 손태성 (1983년생)[4] |
학력 | 경산중앙초등학교 (졸업) 경북체육중학교 (졸업) 경북체육고등학교 (졸업) 단국대학교 스포츠과학대학 (태권도학 / 학사) 용인대학교 교육대학원 (체육교육학 / 석사[5]) 동아대학교 대학원 (태권도학 / 박사) |
현직 | 경일대학교 태권도학과 교수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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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태권도 선수로 2008 베이징 올림픽 태권도 남자 68kg 급 금메달리스트. 당시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금메달리스트가 되었고 2012 런던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따도록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으나 아쉽게도 실패했다. 은퇴한 이후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고, 현재는 태권도 관장, 경일대학교 전문스포츠학부 태권도학과 학과장 및 태권도 감독을 역임하고 있다.2. 선수 경력
2.1. 어린 시절
경산중앙초등학교 3학년이던 1997년, 아버지에게 친구들이 다니는 태권도장을 다니고 싶다고 졸라댔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아들의 건강을 위해 태권도장에 다니게 했다. 그러나 이것이 손태진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그는 다른 아이들보다 월등한 기량을 선보였고, 태권도장 관장도 부모에게 선수로 키울 것을 제안했다. 아버지는 계속 반대했지만, 출전하는 대회마다 우승하는 것을 보고 결국 선수 생활을 하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2005년에는 아시아태권도연맹에서 주최하는 아시아 주니어태권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07년 삼성 에스원 태권도단에 입단했다.
2.2. 2008 베이징 올림픽
그러나 올림픽 출전 전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세계선수권 예선에서도 탈락하고, 국가대표 팀에 입성하기 위해 대학생 신분도 포기해야만 했다. 게다가 -68kg급은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치열한 탓에 1점 차로 이기는 혈전을 거듭해오는 험난한 여정을 이겨낸 후에야 비로소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올림픽 태권도 종목에 출전한 선수들 중 가장 어렸고 국제대회 출전 경험도 많지 않았지만 기량을 보면 유력한 금메달감이라고 평가받았다. 토너먼트 중에 8강에서 훗날 해당 체급 최강자로 군림하게 되는 동갑내기 서베트 타제굴을 꺾기도 했다.[6] 3라운드에 부상까지 입었는데도 아슬아슬하게 리드를 지키며 승리했다.올림픽에서 우승한 직후 "작년(2007년)까지 힘든 과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다. 많이 힘들었지만 그런 시련이 내게 오기를 줬다. 이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오늘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었다고 본다"라고 인터뷰했다. 이어서 그는 "경기 직전 꿈을 꿨다. 도복을 챙겨 입고 임수정[7] 누나와 산을 뛰는데, '이렇게 힘든데 이길 수 있겠죠?'라고 물으니 '당연하지'라고 대답하더라"며 "그 꿈 때문에 이렇게 금메달을 딴 것 같다"고 금메달 공을 동료 선수에게 돌리는 동료애를 과시하기도 했다.
손태진의 금메달은 이 체급에서 대한민국이 따낸 최초이자 유일한 올림픽 금메달이다.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신준식이 은메달을 딴 데 이어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송명섭이 동메달을 땄다. 2012 런던 올림픽에는 국가당 남녀 2체급씩 4체급 출전 제한에 걸려 이 체급에 출전하지 못했고[8],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이대훈이 동메달을 획득했다.
2010년 세계태권도연맹 주최 제1회 국제클럽오픈태권도대회에서 우승했고, 2011년 세계태권도연맹 주최 제1회 세계 스포츠어코드 컴뱃게임에서 -68kg급으로 출전해 금메달을 차지했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신성대학교 태권도학과 강사로 재직했고,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 KBS에서 태권도 해설위원으로 있었다.
2017년 은퇴했다.
3. 은퇴 후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세계태권도연맹과 태권도진흥재단에서 겨루기 강사로 활동했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2024 파리 올림픽 태권도 해설을 담당하였다.2020년 10월 11일 경일대학교 SMART스포츠대학 전문스포츠학부 태권도학과 조교수 겸 초대 경일대학교 태권도 선수단 감독에 부임해 현재에 이른다.
4. 수상 기록
올림픽 | ||
금메달 | 2008 베이징 | -68kg |
주니어 아시아선수권 | ||
금메달 | 2005 알마티 | -63kg |
5. 기타
- 현역 시절 별명은 비실이인데, 어린 시절 밥도 잘 먹지 않고 말 수도 적은데다가 늘 비실거려서 남과 싸울 줄도 모르는 부끄럼이 많은 아이여서 붙여졌다.
- 그와 차동민이 베이징에서 획득한 두 개의 금메달 이후 남자 태권도는 도쿄 올림픽 까지 노골드 수모가 이어졌지만 드디어 2024 파리 올림픽에서 박태준이 무려 16년만에 한국 남자 태권도에 금메달을 안가게 되었다.
[1] 태몽은 감나무에 홍시가 달린 것이라고 한다.[2] 태어난 곳은 대구이지만, 이후 경상북도 경산시로 이사하여 학창 시절을 보냈기에 사실상 경북 사람이다.[3] 수족관 판매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4] 학창 시절 유도 선수로 활동했다.[5] 석사 학위 논문 : #[6] 타제굴은 베이징에선 패자부활전을 거치고 동메달을 획득했지만, 4년 뒤 2012 런던 올림픽에선 금메달을 목에 걸 정도로 발전했다.[7] -57kg급 그랜드슬래머[8] -58kg급의 이대훈과 +80kg급의 차동민이 출전했다. 게다가 이 때는 68kg이하급의 1, 2인자 서베트 타제굴, 모하메드 바게리의 리즈 시절이기도 했다. 바게리가 해당 체급 1인자였으나 2011년 경주세계선수권 결승, 런던 올림픽 결승에서 타제굴이 바게리를 이기고 2년 연속 금메달을 수상하며 1인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