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8-18 16:46:36

슈베비슈할

{{{#!wiki style="margin: -8px"<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cd116>
파일:바덴뷔르템베르크 주장.svg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2px"

Landkreis
파일:뵈블링겐 군 문장.png
뵈블링겐
Böblingen
파일:진델핑겐 문장.svg
(진델핑겐)
파일:에슬링겐 군 문장.png
에슬링겐
Esslingen
파일:에슬링겐 문장.svg
(에슬링겐)
파일:괴핑겐 군 문장.png
괴핑겐
Göppingen
파일:하이덴하임 군 문장.png
하이덴하임
Heidenheim
파일:하이덴하임안데어브렌츠 문장.svg
(하이덴하임안데어브렌츠)
파일:하일브론 군 문장.png
하일브론
Heilbronn
파일:호엔로헤 군 문장.png
호엔로헤
Hohenlohe
파일:루트비히스부르크 군 문장.png
루트비히스부르크
Ludwigsburg
파일:루트비히스부르크 문장.svg
(루트비히스부르크)
파일:마인타우버 군 문장.png
마인타우버
Main-Tauber
파일:오슈탈프 군 문장.png
오스탈프
Ostalb
파일:알렌 Aalen 문장.svg
(알렌)
파일:렘스무르 군 문장.png
렘스무르
Rems-Murr
파일:슈베비슈할 군 문장.png
슈베비슈할
Schwäbisch Hall
파일:800px-Wappen_Schwaebisch_Hall.svg.png
(슈베비슈할)
군급시
Stadtkreis
파일:슈투트가르트 문장.svg
슈투트가르트
Stuttgart
파일:하일브론 문장.svg
하일브론
Heilbronn
독일의 행정 구역바덴뷔르템베르크의 현
}}}}}}}}} ||
슈베비슈할
Schwäbisch Hall
파일:800px-Wappen_Schwaebisch_Hall.svg.png
휘장
슈베비슈할의 위치
<colbgcolor=#000><colcolor=#fff> 행정
국가 독일 파일:독일 국기.svg
시간대 (UTC+1/+2)
바덴뷔르템베르크
슈투트가르트 현
슈베비슈할 군
인문환경
면적 104.23km
인구 42,743명(2023년 12월)
인구밀도 410명/km²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정치
시장 다니엘 불링어
[[자유민주당(독일)|
자유민주당
]]

1. 개요2. 역사3. 교육과 문화4. 경제

[clearfix]

1. 개요


슈베비슈할은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도시로 슈베비슈할 군의 행정 중심지다. 이 도시는 바덴뷔르템베르크 북동부에 있는 코셔강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슈베비슈할은 1802년 뷔르템베르크에 합병될 때까지 5세기 동안 독일제국의 자유도시였다. 명칭에서 슈베비슈는 슈바비아 동맹을 나타내고, 이름의 두 번째 부분인 할(Hall)의 기원은 불분명하다. 1925년 소금공장이 문을 닫을 때까지 사용된 '개방판 소금 제조법'이라는 게르만족 말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2. 역사

슈베비슈할에는 기원전 5세기 초 켈트족이 거주했다. 1063년 오링거가 작성한 기록에 의하면 그들은 소금을 생산하며 생계를 이어갔다고 전해진다. 콤부르크-로텐부르크 백작이 처음 이 도시를 소유하다가 1116년경, 12세기부터 13세기까지 신성 로마 제국을 지배하던 독일의 왕가인 호엔슈타우펜 황실에게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1189년 프레데릭 1세 바르바로사 황제가 이른바 헬러라는 화폐를 처음 주조했다. 슈베비슈할은 소금과 화폐를 생산하며 날로 번창해 1204년에는 도시로 자리 잡았다.

슈베비슈할은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주로 귀족 가문이나 콤부르크 수도원이 주변 지역의 넓은 영토를 소유했다. 이 시대상은 1427년부터 1526년 사이에 재건축한 마이클 교회 외관이나 계단(1507)과 같은 중세 고딕 양식의 건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슈베비슈할은 매우 일찍 개신교파에 가담했다. 마르틴 루터의 추종자인 요하네스 브렌즈는 1522년 미카엘 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이후 그는 루터교 노선을 따라 교회와 학계를 빠르게 재편하기 시작했다.

슈베비슈할은 30년 전쟁 동안 스웨덴, 프랑스 등 여러 나라로부터 심한 약탈을 당했다. 1634년1638년 사이에 많은 슈베비슈할 거주자들은 굶주림과 질병, 특히 선혈성 전염병으로 죽었다. 하지만 지속적인 소금 생산과 증가하는 와인 무역에 힘입어 빠른 회복을 했다. 슈베비슈할은 1680년1728년, 두 차례에 걸친 큰 화재로 294채의 개인 주택을 비롯해 교회, 병원, 시청, 소금 공장 등 도시의 3분의 2가 불타버렸다. 이때 파괴된 건물은 후에 바로크 양식으로 다시 지어졌다.

3. 교육과 문화

슈베비슈할은 학문의 도시로도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선 정규 교육기관 외에도 복음주의 회관, 사회봉사관, 노인들을 위한 개신교 직업학교, 대안교육 간호학교, 아유르베다 요가연구소 등의 학교에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슈베비슈할에 있는 괴테 학교 덕분에 이 마을은 독일어를 공부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연간 2,000명의 학생들을 끌어들인다. 이 프로그램들은 특히 여름 동안 인기가 있는데, 대학생들이 학점을 취득하고 독일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방학 때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슈베비슈할 기록보관소는 시 행정부와 역사적 인물들의 공식 기록과 문서, 사진, 포스터, 그래픽, 그림, 지도와 계획, 신문 등 도시를 지칭하는 다양한 수집품들을 보관하고 있다.

4. 경제

슈베비슈할은 프랑크푸르트, 슈투트가르트, 뉘른베르크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경제 중심지다. 예전에는 소금으로 경제적 이익을 창출했지만 오늘날 경제는 주로 무역과 서비스 분야를 중심으로 한다. 부동산 금융, 태양광, 통신 분야의 많은 사업체들이 슈베비슈할에 본사를 두고 있다. 주목할 만한 기업은 1944년에 설립된 주택신용회사인 바우슈파카세 슈베비슈할 AG(Bausparkasse Schwäbisch Hall)와 항공기 좌석 제조업체인 히카르도를 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