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 스네이더의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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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 스네이더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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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 ||||
| | 2010 FIFA 월드컵 실버볼 | 2010 FIFA 월드컵 브론즈부트 | |
베스트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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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er of the Year 2010 | ||
수상 사비 에르난데스 | 2위 리오넬 메시 | 3위 웨슬리 스네이더 |
웨슬리 스네이더의 기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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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前 축구 선수 | ||
웨슬리 스네이더 Wesley Sneijder | ||
출생 | 1984년 6월 9일 ([age(1984-06-09)]세) | |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 ||
국적 | [[네덜란드|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70cm / 체중 120kg[1] | |
직업 | 축구 선수 (공격형 미드필더 / 은퇴) | |
주발 | 오른발 (양발) | |
소속 | 유스 | USV 홀랜드 (1990~1991) AFC 아약스 (1991~2002) |
프로 | AFC 아약스 (2002~2007) 레알 마드리드 CF (2007~2009) 인테르나치오날레 (2009~2013) 갈라타사라이 SK (2013~2017) OGC 니스 (2017~2018) 알 가라파 SC (2018~2019) | |
국가대표 | 134경기[2] 31골 (네덜란드 / 2003~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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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덜란드의 前 축구 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였다.인테르의 2009-10 시즌 트레블과 네덜란드의 2010 월드컵 준우승을 이끈 주역이다. 날카로운 스루 패스와 돌파, 위협적인 중거리 슈팅을 겸비했던 미드필더였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자세한 내용은 웨슬리 스네이더/클럽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2.2. 국가대표 경력
2003년 4월 30일, 포르투갈 전에 A매치에 첫 출전하였고, 성인 국가대표팀 최연소 데뷔 선수 목록의 8번째에 이름을 올렸다.UEFA 유로 2004에서 대회 초기에는 주로 벤치에서 대기했었고, 조별 리그 2경기에서 교체로 출전하였다: 그는 독일과의 조별 리그 1차전과 라트비아와의 3차전에 필드를 밟았다. 그는 예선전에서 2골을 공헌하기도 했다.
스네이더르는 독일에서 열린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네덜란드의 4경기에 모두 출전하였다. 포르투갈과의 16강전[3]에서 역대 최다인 4장의 레드카드와 16장의 옐로카드가 나왔는데 그도 포르투갈의 미드필더 프티를 양국 선수들의 패싸움 과정에서 바닥으로 밀치는 바람에 한장의 옐로카드를 받았다. 네덜란드는 이 경기에서 0-1로 패하였다.
UEFA 유로 2008을 앞두고 스네이더는 5월 31일, 웨일스와의 친선전에서 프리킥을 성공시켜 두 차례 연속으로 직접 프리킥으로 득점하는 기록을 세웠다. 경기는 레알 마드리드 팀 동료 아르연 로번이 한 골을 터뜨리면서 2-0 완승으로 결론지어졌다.
UEFA 유로 2008 조별 리그 이탈리아전에서는 지오바니 판브롱크호르스트가 골문 앞에서 걷어낸 후, 스네이더르가 디르크 카윗이 머리로 내어준 패스를 받아 잔루이지 부폰을 지나치는 강력한 발리슛으로 꽂아넣었다. 이 골로 네덜란드는 뤼트 판니스텔로이가 선제골을 넣은지 겨우 5분만에 2-0으로 앞서나갔다. 경기는 에드빈 판데르사르가 여러 차례 결정적인 선방을 한 후 지오바니 판브롱크호르스트가 이탈리아 진영으로 파고 들어가 3번째 골을 성공시키는 것으로 네덜란드의 3-0 압승으로 끝났다. 스네이더의 골은 네덜란드가 이탈리아를 상대로 30년만에 승리를 챙길 수 있게 되었고, 이탈리아는 1983년 스웨덴에 같은 점수차로 패한 이래 역대 최다 점수차 패배를 당했다.
스네이더는 대회 최고의 골들 중 하나를 넣는 것으로 24번째 생일을 자축했다. UEFA 유로 2008에서 2년 전에 2006 독일 월드컵을 우승한 이탈리아를 맞이하여 31분에 팀의 2번째 득점을 성공시켰다. 다수의 팬들과 평론가들은 그의 득점이 대회 최고의 골들 중 하나라고 이구동성으로 평가했다. 6월 13일, 그는 이어지는 프랑스와의 조별 리그 2차전에서 득점을 또 올렸다. 92분, 페널티 구역 밖에서, 스네이더는 골문 구석으로 공을 차 넣었고, 골대를 강타한 뒤 그대로 빨려들어갔다. 네덜란드는 이 경기에서 4-1로 크게 이겼다. 비록 네덜란드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러시아와의 8강전에서 패하였으나, 스네이더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스네이더는 명실상부 대회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서 빛나는 활약을 펼쳤다. 아르연 로번과 함께 맹활약을 떨치며 조별 예선 첫 경기 덴마크 전에서는 팀의 두번째 골을 어시스트, 두 번째 경기 일본 전에서는 중거리 슈팅으로 결승골을 만들었다. 이후에도 16강 슬로바키아 전 쐐기골과 8강 브라질 전 멀티골, 그리고 4강 우루과이 전에도 골을 기록했다.
비록 결승전에서는 세르히오 부스케츠에게 고전하며 공격 포인트를 올리지 못해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데 실패했으나, 로번에게 매우 결정적인 패스를 찔러 카시야스와 1대 1 상황을 만들어주는 등. 그럭저럭 본인은 활약을 해준 편이었다. 위와 같은 맹활약으로 그는 실버볼과 브론즈부트를 수상했다. 동료 스트라이커들이 1골씩 넣고 그친 것을 보면 정말 엄청난 활약이었으며, 7경기에 출장하여 4경기에서 MOM에 선정되는 등.[4] 골든볼을 받았던 포를란에 못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5]
UEFA 유로 2012에서 네덜란드는 덴마크, 독일, 그리고 포르투갈과 함께 죽음의 조 B조에 편성되었다. 스네이더는 덴마크와 독일과의 경기에서 네덜란드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되었으나, 각각 0-1, 1-2로 패하였다. 포르투갈전에서도 1-2로 패하였는데, 스네이더는 왼쪽 측면으로 이동했지만 네덜란드의 조기 탈락을 막지 못하였다.
2012년 8월, 마르크 판보멀의 대표팀 은퇴로, 스네이더가 네덜란드의 주장 완장을 찼다. 1년이 지나지도 않아, 그의 직위는 루이스 판 할 감독에 의해 로빈 반 페르시에게 넘어갔다.
스네이더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 참가할 네덜란드의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고, 6월 13일 전 대회 우승팀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100번째 출전 기록을 세웠고, 5-1 대승에도 한몫하였다. 스네이더는 이어지는 멕시코와의 16강전에서 88분에 팀의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켰고,[6] 이후 로번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훈텔라르가 성공시켜서 2-1로 이겼다.
8강전은 승부차기 끝에 승패가 가려졌는데, 스네이더는 네덜란드의 3번째 주자로 나와 골을 넣어 코스타리카를 침몰시켰다. 아르헨티나와의 준결승전 역시 승부차기로 승패가 갈렸고, 스네이더의 슛은 세르히오 로메로의 골키퍼에 막힌 두 번의 슛 중 한번을 기록하였고, 팀은 2-4로 졌다. 스네이더는 브라질과의 3위 결정전에서 선발로 출전할 계획이었으나, 경기를 앞두고 부상 당하면서 그의 자리는 요나탄 더구즈만이 대신하였다.
그 후 네덜란드는 UEFA 유로 2016과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연달아 실패하면서 암흑기에 빠지게 된다. 이후 스네이더는 2018년 3월 4일,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 9월 7일 페루와의 친선 경기에서 마지막 A매치인 134경기를 뛰고 국가대표를 떠났다.
3. 플레이 스타일
엄청난 창조성과 양발에서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킥력을 갖추었다. 전성기 시절에는 피치 위에서의 흠잡을 데 없는 지휘와 더불어 프리킥으로 득점할 수 있는 데드볼 전문가로서의 능력으로 명성을 얻었다. 무회전 프리킥도 종종 구사했다. 스네이더의 패스 사거리는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어 더욱 범위가 넓었다. 또한 장거리에서 어느 발로든 슛을 하곤 했다. 넓은 시야와 동료에게 기회를 창출해주는 것 외에도 스네이더는 축구 지능과 높은 기술적 능력으로도 알려져 있다.그러나 스피드는 평범했고 탈압박도 아주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7] 수비수 한 두명의 타이밍을 뺏으면서 빠져나오는 간결한 드리블은 잘 쳤지만 드리블로 볼을 운반하고 상대 압박을 빠져 나올 테크닉까진 아니었고[8][9]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활동량도 평범한 편이었다.[10] 트레블로 유럽 무대를 평정한 팀의 핵심 에이스였고 월드컵에서 폭풍활약을 하며 조국을 결승까지 이끌었지만 2010년 트레블과 2010 남아공 월드컵 준우승의 활약 이후 다른 빅클럽들에서 그를 찾지 않던 것과 네덜란드 국대에서의 전술 중심이 아르연 로번으로 바뀌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들이 있어서였다.
그런데 의외로 헤더를 잘한다. 물론 장신 수비수들과의 제공권 싸움을 이기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공중볼 포착능력이 좋았고 헤더를 하게 되면 날카로운 코스로 잘 보내던 편이였다.[11]
4. 기록
4.1. 대회 기록
- AFC 아약스 (2002~2007)
- 에레디비시: 2003-04
- KNVB 베이커: 2005-06, 2006-07
- 요한 크루이프 스할: 2005, 2006
- 레알 마드리드 CF (2007~2009)
- 라리가: 2007-08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09~2013)
- 세리에 A: 2009-10
- 코파 이탈리아: 2009-10, 2010-11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10
- UEFA 챔피언스 리그: 2009-10
- FIFA 클럽 월드컵: 2010
- 갈라타사라이 SK (2013~2017)
- 알 가라파 SC (2018~2019)
- 카타르 스타스컵: 2018-19
4.2. 개인 수상
- FIFA FIFPro 월드 XI: 2010
- UEFA 올해의 미드필더: 2009-10
- UEFA 올해의 팀: 2010
- FIFA 월드컵 실버볼: 2010
- FIFA 월드컵 브론즈부트: 2010
- FIFA 월드컵 드림팀: 2010
- FIFA 월드컵 캐스트롤 인덱스 톱 XI: 2010
- UEFA 유로 토너먼트의 팀: 2008
- UEFA 유로 토너먼트의 골: 2008
- UEFA 유로 도움왕: 2008
- UEFA 챔피언스 리그 도움왕: 2009-10
-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MOTM: 2010[12]
- 쉬페르리그 최우수 외국인 선수: 2014-15
- 쉬페르리그 올해의 팀: 2014-15
- 쉬페르리그 도움왕: 2016-17
- 요한 크루이프상: 2004
- 아약스 올해의 선수: 2006-07
- 아약스 올해의 재능: 2001-02
- ESM 올해의 팀: 2009-10
- Goal 50: 2010
- 인테르 명예의 전당: 2021
4.3. 개인 기록
-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최다 출전: 134경기
4.4. 출전 기록
시즌 | 클럽 | 소속리그 | 리그 | FA컵 | 대륙대회 |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2002-03 | AFC 아약스 | 에레디비시 | 17 | 4 | 2 | 3 | 1 | 0 | 3 | 0 | 0 |
2003-04 | AFC 아약스 | 에레디비시 | 30 | 9 | 11 | 1 | 0 | 0 | 7 | 1 | 0 |
2004-05 | AFC 아약스 | 에레디비시 | 30 | 7 | 8 | 3 | 1 | 0 | 7 | 0 | 3 |
2005-06 | AFC 아약스 | 에레디비시 | 19 | 5 | 5 | 3 | 2 | 1 | 7 | 4 | 2 |
2006-07 | AFC 아약스 | 에레디비시 | 30 | 18 | 9 | 4 | 1 | 1 | 9 | 1 | 1 |
2007-08 | 레알 마드리드 CF | 라리가 | 30 | 9 | 7 | 2 | 0 | 0 | 5 | 0 | 1 |
2008-09 | 레알 마드리드 CF | 라리가 | 22 | 2 | 2 | 2 | 0 | 0 | 4 | 0 | 0 |
2009-10 | 인터 밀란 | 세리에 A | 26 | 4 | 8 | 4 | 1 | 1 | 11 | 3 | 7 |
2010-11 | 인터 밀란 | 세리에 A | 25 | 4 | 6 | 2 | 0 | 2 | 9 | 3 | 2 |
2011-12 | 인터 밀란 | 세리에 A | 20 | 4 | 5 | 2 | 0 | 0 | 5 | 0 | 1 |
2012-13 | 인터 밀란 | 세리에 A | 5 | 1 | 1 | 0 | 0 | 0 | 3 | 1 | 2 |
2012-13 | 갈라타사라이 SK | 쉬페르리그 | 12 | 3 | 0 | 0 | 0 | 0 | 4 | 1 | 1 |
2013-14 | 갈라타사라이 SK | 쉬페르리그 | 28 | 12 | 7 | 6 | 3 | 1 | 7 | 2 | 1 |
2014-15 | 갈라타사라이 SK | 쉬페르리그 | 31 | 10 | 3 | 6 | 3 | 3 | 6 | 1 | 1 |
2015-16 | 갈라타사라이 SK | 쉬페르리그 | 25 | 5 | 7 | 6 | 0 | 2 | 8 | 0 | 1 |
5. 스네이더에 대한 헌사
나에게 지난 1년동안 세계 최고의 선수는 스네이더이다. 메시는 분명 환상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가 세계 최고라는 것은 너무 너그러운 평가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스네이더르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나는 폴 스콜스의 오랜 팬이다. 스콜스는 그의 세대에서 세계 최고 중 한 명이었다. 나는 솔직히 스네이더야 말로 스콜스를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선수라고 생각한다.
아르연 로번
아르연 로번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꼭 필요로 하는 선수다. 현재 그와 비슷한 선수는 어느 곳에도 찾을 수 없다. 그는 강하고, 스네이더가 뛰는 모습을 보면 마치 나와 닮아있다.
에릭 칸토나
에릭 칸토나
그는 축구 지능이 좋아 전술 이해도가 높고, 위치 선정, 패스, 골 결정력을 비롯해 활동량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 걸쳐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레알 마드리드와 인테르에서 뛰면서 리그 최상위 팀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게리 네빌
게리 네빌
나는 스네이더의 플레이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상대 팀에 있더라도 그의 플레이를 지켜보는 것을 즐긴다. 그는 챔피언이자 환상적인 선수이다.
로베르토 만치니
로베르토 만치니
6. 여담
- 평균 신장이 높은 네덜란드인 치고는 키가 매우 작은 편이다. 심지어 170cm인 욜란터보다도 작다.[13] 선수시절에는 170에 64키로그램으로 정상 체중을 보유했었지만 은퇴 후에는 120까지 살이 찌며 사람들을 놀라게했다.
- 앞선 세대의 인물인 독일의 레전드 베른트 슈나이더와 같은 이름를 가지고 있어[14] 데뷔 초기에는 그를 독일식 명칭인 베슬리 슈나이더라고 부르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피파 온라인 2에도 슈나이더로 표기되었다.
- 2005년에 결혼하여 아들까지 얻었으나, 욜란터 카바우 판카스베르헌과의 불륜을 저지른 사실이 들통나 2009년 이혼했다. 이후 2010년, 결국 불륜상대였던 욜란터와 재혼. 스네이더르는 이 여자때문에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까지 해버렸다.[15][16] 아내는 배우이자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데, 과거 Turkse Chick이라는 단편 영화에서 야시시한 연기를 한지라 스네이더를 깔 때 종종 그 영화의 짤방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러나 2019년 욜란터와도 모종의 사유로 이혼했다.
- 스네이더도 위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탈모인이다. 아약스 시절과 레알 입단 첫 시즌까지만 해도 나름 풍성했지만 점점 넓어지는 M자 이마에 이후로는 짧게 머리를 밀고 다닌다. 인테르 이적 이후 웨인 루니처럼 모발이식 수술을 받았는지 머리 라인이 괜찮아졌다.
- 같은 네덜란드 대표팀이자 아약스 유스, 레알 마드리드에서 네덜란드 커넥션의 일원이 였던 라파엘 판데르파르트와 매우 친하다. 그래서 툭하면 서로를 디스한다.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함께 무리뉴빠로 유명하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침체기를 겪던 중 인테르에 합류해 팀의 에이스로 등극하여 트레블을 달성했고, 이 활약으로 월드 베스트 일레븐에 노미네이트되는데 무리뉴가 가장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소감 발표 중 무리뉴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고, 갈라타사라이로 이적한 후에도 자신의 경기를 관전하러 온 무리뉴를 발견하고는 해맑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기도 했다.
- 라파엘 판데르파르트와 공격형 미드필더 조합은 비슷한 스타일의 공격형 미드필더도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이 외에는 거의 성공한 사례가 없다. 램파드와 제라드도 그렇듯, 대부분 동선이 겹치고, 수비형 미드필더가 한 명 부족하기 때문에 중원 밸런스를 맞춰줄 선수의 조합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는 나이젤 더용 또는 마르크 판보멀 같은 수비형 미드필더가 뒤에서 판데르파르트, 스네이더르 조합의 약점인 수비력을 보완하는 용도로 활용했다. 국가대표팀에서의 입지는 스네이더르가 늘 더 앞섰기 때문에 간혹 손에 꼽게 둘 다 경기에 뛰게 되는 경우 스네이더르가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선발에, VDV가 교체로 중앙 미드필더로 나왔다. 문제는 그 중 한 경기가 남아공월드컵 결승전이었다는 것.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링크가 니콜라스 가이탄과 함께 정말 지겹도록 자주 떴던 선수 중 한 명이다. 이미 2009년 후반기부터 끊임없이 맨유랑 링크되기도 했고, 실제 협상도 있었던게 특히 2011년 여름 시즌이 끝나고 플레이메이커 보강 차원에서 맨유가 스네이더르를 영입할 것처럼 보였지만 여러 이유로 인해 무산된 적이 있었고, 나중에 스네이더르 또한 인터뷰에서 맨유로 가는 줄 알았다라고 밝혔을 정도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17] 이게 얼마나 심하면 현지 언론에서도 심심하면 스네이더와 맨유 이적기사를 썼고 2015년까지도 링크가 뜰 정도였다. 그래서 하도 지겨운 해외 축구팬들은 이제는 스네이더와 맨유 링크 기사가 뜨면 사실상 가이탄과 함께 맨유의 명예 엠버서더라고 우스개소리로 부르기도 한다.
- 인테르를 나갈 때 인테르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애정이 아예 없어지지는 않았는지 국가대표팀 후배를 인테르에 가게 조언해줬다고 그 후배가 말했다. 이후 그 후배의 인테르에서의 성적을 생각하면 조언을 상당히 잘해줬다고 생각할수 있다.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미드필더 5인을 선정했는데 2010년대 최고의 미드필더 4위에 이름을 올렸다.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난민 구호를 위한 자선 축구 경기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뚱뚱하고 살찐 데다가 면도도 제대로 안 한 듯한 비주얼로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왕년의 축구 스타 아니랄까봐 녹슬지 않은 볼터치와 킥 능력을 보여주었다.
7. 같이 보기
1 반 데 사르 · 2 레이저허르 · 3 스탐 · 4 바우마 · 5 V. 브롱크호르스트 · 6 코쿠 ⓒ · 7 판 데르 메이더 · 8 다비즈 · 9 클라위버르트 10 V. 니스텔로이 · 11 판 데르 파르트 · 12 마카이 · 13 바터루스 · 14 스네이더 · 15 F. 더부르 · 16 오버르마르스 · 17 V. 호이동크 18 헤이팅아 · 19 로번 · 20 세도르프 · 21 보스펠트 · 22 젠던 · 23 베스터르펠트 |
딕 아드보카트 |
1 반 데 사르 ⓒ · 2 오이여르 · 3 헤이팅아 · 4 마테이선 · 5 V. 브롱크호르스트 · 6 더 제이우 · 7 V. 페르시 · 8 엥헬라르 · 9 V. 니스텔로이 10 스네이더 · 11 로번 · 12 멜키오트 · 13 티머 · 14 바우마 · 15 더 클레르 · 16 스테켈렌뷔르흐 · 17 더 용 18 카윗 · 19 휜텔라르 · 20 아펠라이 · 21 불라루즈 · 22 헤셀링크 · 23 판 데르 파르트 |
마르코 반 바스텐 |
1 스테켈렌뷔르흐 · 2 판 데 르빌 · 3 헤이팅아 · 4 마테이선 · 5 V. 브롱크호르스트 ⓒ · 6 판 보멀 · 7 카윗 · 8 더 용 · 9 V. 페르시 10 스네이더 · 11 로번 · 12 불라루즈 · 13 오이여르 · 14 더 제이우 · 15 브라프하이트 · 16 포름 · 17 엘리아 18 샤르스 · 19 바벌 · 20 아펠라이 · 21 휜텔라르 · 22 보스커르 · 23 판 데르 파르트 |
베르트 판마르베이크 |
Nederlands nationaal voetbalelftal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 최종 명단) |
1 실레선 · 2 플라르 · 3 더 프레이 · 4 마르팅스 인디 · 5 블린트 · 6 더 용 · 7 얀마트 · 8 더 구즈만 · 9 V. 페르시 ⓒ 10 스네이더 · 11 로번 · 12 페르하흐 · 13 펠트만 · 14 콩골로 · 15 카윗 · 16 클라시 · 17 렌스 18 페르 · 19 휜텔라르 · 20 바이날둠 · 21 멤피스 · 22 포름 · 23 크륄 |
루이 판 할 |
[1] 선수 시절에는 약 67kg[2]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A매치 역대 최다 출전 1위.[3] 뉘른베르크의 전투로 명명된 경기[4] 조별 리그에서 2번, 토너먼트에서 2번이다.[5] 상대적으로 언더독이라는 평을 받던 우루과이를 40년 만에 4강행을 이끌었다는 포를란의 임펙트가 너무 컸다.[6] 동료 선수가 헤딩으로 떨군 공을 그대로 때렸는데 대포알 같이 나간 후 골망에 꽂혔다. 속도가 114km/h가 나왔다고 한다.[7] 스네이더를 비슷한 스타일로 인식되는 메수트 외질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은데, 둘다 탈압박 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외질은 압박에 약한건 맞았지만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볼터치와 개인 기술 등 볼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당대 최고 수준이었고, 패싱 위주의 플레이스타일 때문에 묻혀서 그렇지, 스피드도 꽤 빠른 편이었고 드리블도 뛰어난 선수였다. 그러나 수비 가담도 꽤 했던 스네이더와 달리 외질은 수비 가담시에는 매우 적극적이지 않고 헌신성이 부족한 단점이 존재하였다.[8]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비교가 많이 되곤 했는데 이 둘은 아예 다른 유형의 선수다. 이니에스타 역시 작은 키였지만 탄탄한 기본기와 테크닉으로 볼 간수, 전진에 능했다. 스네이더는 이니에스타에 비해 득점력, 양발 킥이 좀 더 두드러졌지만, 아무래도 선수로서의 능력은 킥 능력을 제외하면 이니에스타가 압도적으로 뛰어난 선수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득점력은 포지션을 감안했을 때 이니에스타도 크게 뒤지지 않았다.[9] 밸런스가 나쁜 편은 아니라 떡대가 큰 상대 선수와의 경합에서 피식 쓰러지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체급의 한계를 극복할 정도로 근력이 좋지는 못했다.[10] 활동 반경 자체는 그래도 적은 편은 아니다. 수비 가담도 팀 작전에 따라 꽤 하는 편이며, 성실한 면도 있다. 다만, 아무래도 스피드, 체력 면에서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라운드 전체를 누비는 타입은 아니었고,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할 때 자신이 직접 공격 전개를 조율하기보다는 팀 동료들이 필요했다. 실제로 이런 스네이더의 부족한 활동 공백을 트레블 시기 인테르에서는 에스테반 캄비아소, 하비에르 사네티, 데얀 스탄코비치, 티아고 모타 등의 뛰어난 공수겸장 미드필더들이 잘 커버해 주었고, 2010 남아공 월드컵 준우승을 달성했을 때의 네덜란드 국대에서도 마르크 판보멀, 나이젤 더 용 등의 뛰어난 수비력과 활동량을 가진 수비형 미드필더들이 잘 커버해 주어서 스네이더는 중원에서 마음껏 활약을 펼치는 것이 가능하여 트레블 시기 에이스 중 하나로 등극하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맹활약을 할 수 있었다.[11] 대표적인 것이 2010 남아공 월드컵 8강 브라질전 역전 헤딩골이다.[12] 팬 선정. UEFA 선정 맨 오브 더 매치는 디에고 밀리토.[13] 네덜란드 남성의 평균 신장은 184cm이다. 한국으로 따지면 약 160cm 미만 정도로 생각하면 쉽다.[14] 슈나이더, 스네이더르는 독일어 및 네덜란드어로 재단사라는 뜻으로, 영어의 테일러와 그 의미가 동일하다.[15] 팀 동료였던 사네티의 영향력에 감화된 측면도 있다고 한다.[16] 유럽의 기독교 문화권 출신자들이 자신의 종교를 소개할 때 주로 개신교 내지 천주교라고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대개 그냥 명목상의 종교만 그런 경우가 많다. 실제로 교회에 나가는 경우는 잘 없는 편.[17] 사실 스네이더의 주급이 너무 높아서 당시 협상이 결렬되었다고 보는 관점이 가장 많다.
분류
- 1984년 출생
- 위트레흐트 출신 인물
-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
- 미드필더
- AFC 아약스/은퇴, 이적
- 레알 마드리드 CF/은퇴, 이적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은퇴, 이적
- 갈라타사라이 SK/은퇴, 이적
- OGC 니스/은퇴, 이적
- 알 가라파 SC/은퇴, 이적
- 네덜란드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2006 FIFA 월드컵 독일 참가 선수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참가 선수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참가 선수
- UEFA 유로 2004 참가 선수
- UEFA 유로 2008 참가 선수
- UEFA 유로 2012 참가 선수
- FIFA 월드컵 실버볼 수상자
-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명예의 전당
- 2002년 데뷔
- 2019년 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