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종교
(시천교역사)
侍天敎. 1906년 이용구가 설립한 종교. 이용구는 동학에 가입 이후 천도교도로 활동했으나 친일 성향을 보이자 손병희와 대립하여 출교당했고, 이에 새로이 만들었다.
동학농민운동 이후 천도교는 극심한 탄압을 받았지만 대한제국 시기 동학의 진보회 파벌로서 일찍이 친일로 전향했던 시천교 세력은 친일 성향 덕에 일제시대 초반 무단통치기에 그나마 식민 당국의 배려를 받았다. 그런데 3·1운동 후 대중들이 시천교를 외면할 뿐 아니라 교세도 천도교에 비하면 미약해서 활용가치가 하락하자 식민 당국도 외면해버렸다. 조선 내 사회주의 운동이 일어나자 여기에 영향받아 급진화된 시천교 내 청년들과 좌파 세력이 나름대로 교단을 쇄신하고자의 노력했지만 좌절되었고, 교단의 지도부 자리를 놓고 충돌이 벌어지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결국 시천교는 침체될 대로 침체된 채 광복을 맞았고 시천교 대교당은 대관 장소 등으로 이용되다 안식교에 매각되어 현재는 재림교회의 서울중앙교회로 사용되고 있다. 다만 증축 등으로 인해 시천교 시절의 모습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시천교는 침체를 극복하지 못하고 한 때 으르렁대던 천도교의 힘을 빌려 간신히 버티다가 결국 1982년 12월 25일 결의를 통해 천도교에 귀일하였고 시천교유지재단도 1988년 2월 20일 해산되었다. 이창번 선도사의 간략한 시천교 역사 정리
2. 다리
시천교라는 이름의 다리는 모두 3개가 있는데 나머지 두개는 마이너한 다리이고 하나는 경인 아라뱃길에 있는 다리이다.인천의 시천교는 검암역으로부터 동쪽으로 200m 조금 못되게 떨어져 있는 곳에 있으며 86번 지방도(서곶로)가 지난다. 검단에서 검암역으로 와서 갈아탈 사람은 반드시 지나야 하는 다리. 인천 도시철도 2호선이 옆에 있는 시천철교를 지난다.
아라뱃길을 건너는 다른 다리들처럼 시천교 역시 엄청난 경사를 자랑한다.[1] 새벽 시간에는 타력주행과 고속 다운힐이 예사.
이름의 유래는 이 다리가 있는 법정동 이름인 시천동.
시천교가 있는 아라뱃길 기준 북쪽은 원래 동네 뒷산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