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 고령 신씨[1] |
출생 | 1924년 2월 11일[2] |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운산리[3] | |
사망 | 2003년 12월 5일 (향년 79세) |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 | |
묘소 | 국립신암선열공원 제1묘역-2호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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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2. 생애
1924년 2월 11일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운산리에서 아버지 신신휴(申信休, 1899. 4. 8 ~ ?)와 어머니 경주 이씨(1905. 11. 13 ~ 1928. 7. 6)[4]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5]1943년 10월 일본 제국 육군에 강제로 징집되어 중화민국 난징지구에 주둔하던 부대에 배속되었다. 이 충칭시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투쟁을 하고자 결심하였다.
이에 일본군 부대 탈출을 계획하다가 1944년 4월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후 국민혁명군 유격대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이어 1945년 4월 충칭시에 도착하여 우선 토교대(土橋隊)에 입대하고 광복군총사령부 경위대(光復軍總司令部 警衛隊)에 배속되어 복무하다가 8.15 광복을 맞이하였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훈하였다.
이후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6동에 거주하다가, 2003년 12월 5일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뇌졸중으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