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5-22 09:03:14

아구스틴 가인사

아구스틴 가인사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folding ▼ 둘러보기 틀 모음
클럽
파일:아틀레틱 클루브 로고.svg

27대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이그나시오 에이사기레
(1949~1950)
아구스틴 가인사
(1950~1955)
주안 세가라
(1955~1956)
}}} ||
파일:Gaintza.jpg
이름 아구스틴 가인사 비칸디
(Agustín Gaintza Bikandi)
생년월일 1922년 5월 28일
사망년월일 1995년 1월 6일 (향년 72세)
국적 파일:스페인 국기.svg 스페인
출신지 스페인 왕정복고 바사우리
포지션 아웃사이드 레프트 포워드
신체조건 172cm | 71kg
소속팀 아틀레틱 클루브 (1939-1960)
국가대표 33경기 10골 (1945-1955)
감독 아틀레틱 클루브 (1965-1968)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선수 생활2.3. 이후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4. 수상
4.1. 선수
4.1.1. 클럽
4.2. 감독
4.2.1. 클럽

[clearfix]

1. 개요

스페인의 전 축구 감독.

2. 생애[1]

2.1. 어린 시절

가인사는 어린 시절에 축구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는데 형 미겔의 영향으로 축구를 좋아하게 되었다. 미겔도 아틀레틱 클루브와 바라칼도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2.2. 선수 생활

2.2.1. 클럽

피루(Piru)라는 별명으로 불린 가인사는 스페인 내전시기였던 1939년 1월 15일, SD 에란디오와의 바스크 챔피언십에서 아틀레틱 클루브 데뷔전을 가졌다. 당시 가인사의 나이는 16세 7개월 18일로 상당히 빠른 데뷔를 한 선수였다.[2]

가인사의 라리가 데뷔는 1940년에 이뤄졌는데 이는 당시 아틀레틱 클루브의 아웃사이드 레프트 포워드 자리에는 유럽 대륙에서 최고급 선수였던 기예르모 고로스티사의 존재도 영향을 미쳤다. 고로스티사가 발렌시아 CF로 떠나고 나서 가인사는 아틀레틱 클루브의 주전이 될 수 있었고 그는 아틀레틱에서 모든 선수 생활을 보냈다.

아틀레틱 클루브는 전성기였던 1930년대만큼의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가인사는 텔모 사라와 호흡을 맞추며 라리가 우승 2회,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우승 7회[3]의 기록과 494회의 은퇴 당시 아틀레틱 클루브 팀내 최다 출전 기록도 남겼다.[4]

가인사는 코파 델 레이에서 전체 2위[5]이자 단일 클럽 소속 최다 출전(98경기),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8골)도 가지고 있다.

2.2.2. 국가대표

가인사는 1945년 3월 11일, 포르투갈을 상대로 스페인 대표팀에서 첫 선을 보였고 경기는 2대2 무승부로 끝났다.

가인사는 1950년 월드컵에 참가했고 두번째 경기였던 칠레전부터 이그나시오 에이사기레 대신 주장으로 임명되어 4경기를 주장으로 출전했다. 스페인은 4위를 기록, 우승을 차지한 2010년 월드컵 이전의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가인사는 1954년 월드컵 지역 예선에도 참가했지만 스페인이 탈락해서 FIFA 월드컵과는 더 이상의 인연을 맺지 못했다.

2.3. 이후

가인사는 선수 은퇴 이후 빌바오 아틀레틱 감독으로 재직하다 1965년에 1군 감독으로 승격했다. 그는 1968-69 시즌에 단 6경기만 치르고 해임되었는데 팀은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우승에 성공했다.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가인사는 아틀레틱에서 스카우트로 활동하며 선수 발굴에 힘을 썼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가인사는 빠른 스피드와 좋은 슈팅을 가진 아웃사이드 포워드였다.

4. 수상

4.1. 선수

4.1.1. 클럽[6]

4.2. 감독

4.2.1. 클럽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2] 이케르 무니아인은 1주일 차로 가인사의 데뷔 기록을 앞지르게 된다.[3] 코파 델 레이 7회 우승 기록은 역대 최다이며 타이 기록자로 리오넬 메시, 세르히오 부스케츠, 제라르 피케, 호세 마리아 벨라우스테 등이 가지고 있다.[4] 1959년 3월, 세비야 FC와의 경기에서 가인사는 아틀레틱 클루브 최고령 득점 기록도 남겼지만 58년 후인 2017년에 아리츠 아두리스가 기록을 경신했다.[5] 1위는 안도니 수비사레타의 104경기이다.[6] 가인사는 아틀레틱 클루브 원 클럽 플레이어이므로 팀 이름 기입은 생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