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의 前 축구 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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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eee><colcolor=#000,#e5e5e5> 이름 | 아돌프 베히톨트 Adolf Bechtold | |
| 출생 | 1926년 2월 20일 | |
| 바이마르 공화국 프랑크푸르트 | ||
| 사망 | 2012년 9월 8일 (향년 86세) | |
| 독일 프랑크푸르트 | ||
| 국적 | | |
| 신체 | 키 미상|체중 미상 | |
| 직업 | 축구 선수(수비수 / 은퇴) | |
| 소속 | <colbgcolor=#eee> 선수 |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38~1942 / 유스)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42~1960) |
| 국가대표 | 없음 | |
1. 개요
독일의 前 축구 선수. 선수 시절에는 수비수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프랑크푸르트 출신의 로컬 보이로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유스 출신에 평생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 보낸 원클럽맨이며 1959년 독일 축구 챔피언십과 유러피언컵 준우승을 차지한 전설적인 팀의 핵심 멤버였다.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아돌프 베히톨트는 1938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유스팀에 입단했다. 4년간의 유스 생활을 거쳐 1942년 1군으로 승격한 그는 1960년 은퇴까지 18년간 오직 아인트라흐트에서만 뛰었다. 총 397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기록하며 클럽의 전설적인 수비수로 활약했다.1953년과 1959년 오버리가 쥐트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1959년에는 아인트라흐트와 함께 독일 축구 챔피언십을 우승했다. 1959-60 유러피언컵에서는 선수 경력 말년에 아인트라흐트가 결승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햄던 파크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아인트라흐트는 레알 마드리드 CF에게 3-7로 패했지만, 이 경기는 유러피언컵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기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베히톨트는 해당 유러피언컵 시즌에서 1경기에만 출전했지만, 아인트라흐트의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었다.
1960년 현역 은퇴 후에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 인연을 이어갔다. 그는 클럽의 명예 회원이 되었으며 2012년 9월 8일 고향 프랑크푸르트에서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