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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6 14:27:51

아밍 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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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rming_Sword.jpg

1. 개요2. 잘못 알려진 사실3. 한손검의 계보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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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Arming Sword

군용 , 무장용 검이라는 뜻이다. 중세시대 11세기경부터 14세기 사이에 기사군인 계급이 사용하던, 십자가형의 크로스 가드를 지닌 양날 한손검이다. 기사 계급이 대표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knightly(또는 knight's) sword'[1], '기사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세 서양의 검' 하면 떠올리는 일반적인 검이 바로 이것이다.

다만 '아밍 소드'라는 명칭이 실제로 사용된 것은 주요 무기로서의 명맥이 끊긴 15세기 이후의 일이다. 명칭의 실제 사용 시기가 길었던 롱소드와 달리, 아밍 소드는 후대 사람들이 과거의 무기를 학술적으로 분류하며 생긴 명칭이기 때문이다. 계보 문단에서 알 수 있듯, 아밍 소드는 오랜 기간 그냥 칼(에페, 글라디우스 등)이라 불렸다. 그러니 중세를 배경으로 한 소설 등에서 당대인이 당대의 한손검을 두고 아밍 소드니 뭐니 하는 발언은 엄밀히 말하면 고증 오류다.[2]

2. 잘못 알려진 사실

일반적으로 한국에는 아밍 소드를 롱소드와 동일시하지만, 아밍 소드는 한손검인 반면 롱소드는 양손검이다.[3] 실제로 둘을 비교하면 칼날 길이는 아밍 소드중에서도 롱소드만큼 길이가 비슷한건 있어도 손잡이부분 그립 길이가 명확하게 차이가 난다. 롱소드가 한손검이라는 것은 D&D에서 잘못 퍼트린 편견이다. 다만 이는 한국에서만 일어난 현상은 아니고 서양도 마찬가지다. 아예 고증에 목숨 건 매체가 아닌 이상 좀 긴 한손검을 롱소드로 인식하고 묘사하는 건 서양 매체에서도 흔한 일이다. 물론 이 또한 D&D의 원죄다.

반면 일본에서는 아밍 소드를 브로드 소드로 착각하거나 그렇게 부르는 편견이 퍼져 있다. 브로드 소드는 군에서 계속 사용하던 일반적인 굵기의 검이 17세기 이후 민간에서 주류가 된 가늘고 찌르기 위주의 레이피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날이 넓다고 그렇게 불리운 것으로, 역사적으로 17세기 이후의 검을 부를 때 쓰인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판타지 소설과 게임으로 인해 발생한 무지. 사실 이들 '판타지 용어'는 영어 단어를 번역해 들여올 때 파이어 볼이나 라이트닝 볼트와 마찬가지로 그냥 음역해서 들여오는 과정에서 생긴 인식에 불과하다.

3. 한손검의 계보

이런 한손 장검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로마 시대의 스파타가 나오는데, 스파타는 대이주 시기를 통해 게르마닉 철기 시대의 도검에 영향을 미치고,[4] 대이주 시대 검은 바이킹 시대의 바이킹 소드에 영향을 미친다. 바이킹 소드는 유럽에서 노르만, 앵글로색슨족 등에서도 두루 비슷한 형태로 사용되다가 점차 폼멜이 둥그렇게 변하고 크로스 가드가 길어지면서 11세기 정도에 우리가 생각하는 중세 검, 아밍 소드로 변화한다.

아밍 소드도 형태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검신의 폭이 넓고 풀러가 길던 초기형에서, 점차 테이퍼가 심해지고 풀러가 짧아지다가 결국에는 풀러 없이 다이아몬드형 단면의 검신을 지닌 칼끝이 매우 뾰족한 형태로 변해간다. 가드와 폼멜 그립 등 각종 구성요소도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유행과 변화를 거쳐서 변화해나간다. 중세의 도검도 시대적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진화했다는 증거.

검신의 양날이 거의 평행에 가깝던 바이킹 소드에 비해 아밍 소드는 칼끝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테이퍼형 검신을 지니고 있다. 크로스 가드가 길기 때문에 손을 잘 보호해주며, 폼멜이 둥글고 무게추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무게와 길이에 비해 매우 쉽게 다룰 수 있는 검이다. 이런 형태상의 특징은 평범하게 생각하면 아무 의미 없게 들리지만, 검술과 도검 전문가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 칼 끝으로 갈수록 뾰죽해지는 테이퍼형 검신은 찌르기에 유용하다는 뜻인데, 비슷한 크기와 무게의 선조격 도검인 바이킹 소드는 검신의 양날이 거의 평행에 가깝게 유지되기 때문에 찌르기에 그다지 적합하지 않으며 베기로 많이 썼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에 영향을 받은 중세 후기 나이틀리 소드의 테이퍼형 검신은 찌르고 베기 모두에 능하다는 뜻이고, 본래 찌르기에만 특화되어 있던 군단병 시절의 스파타에서 각개전투에 유리한 베기로도 검의 사용법이 다양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크로스 가드가 길다는 것은 크로스 가드가 단순히 손의 보호만 하는 것이 아니라 크로스 가드를 적극 이용해야 하도록 검술의 변화가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기사라면 검과 방패만 들고 싸우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이것만 들고 싸우지는 않는다. 봉토를 가지지 않고 실전을 자주 치렀던 노르만 기사의 당시 기록과 재현도만 보더라도 칼과 방패뿐만이 아니라 도끼도 썼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기사의 가장 위력적인 공격인 첫 돌격은 창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으며, 보통 이 첫 돌격으로 창은 부러지거나 (금속제의 경우) 구부러진다. 물론 카우치드 랜스가 보급된 건 중세 전성기의 이야기이고, 이 카우치드 랜스 기술은 5m나 되는 기마용 랜스를 다루기 위한 것이었다. 이전 시대의 기사들은 2~3m짜리 창을 썼으며, 반드시 카우치드 랜스만으로 돌격이 이뤄진 건 아니고 두손으로 창을 다루거나 투척하는 일도 많았다. 그러나 창을 소모했을 경우 한손 무기를 그냥 말 타고 지나가다가 후려치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위력을 발휘했다. 리차드 1세처럼 마상의 운동 에너지를 활용한 공격은 십자군 전쟁 시기의 이슬람 세력에게 굉장한 위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 외에 기사가 기병 검술을 사용한 사례가 있다. 백년전쟁 시기에 영국 하마 기사들의 전투력에 강한 감명을 받은 프랑스 기사들도 수하들에게 하마 전투를 명령하기도 했다. 물론 그 프랑스 기사들이 아쟁쿠르 전투에서 한 삽질에 대해서는 잠깐 눈을 감아주도록 하자... 또한 육중한 직검의 충격력이나 찌르기 공격은 중세 이후로도 오랜 기간 중기병의 주 전법으로 사용되어 왔다. 윙드 후사르의 경우 육중한 직검과 경쾌한 곡도를 모두 안장에 매달고 다니다가 상황에 따라서 선택하여 사용했고, 18~19세기 유럽의 세이버후사르 등의 경기병은 휨각이 큰 것을, 퀴레시어 등의 중기병은 직선형 도검이나 휨각이 적은 묵직하고 긴 쪽을 선호했다. 오히려 나폴레옹 전쟁 내내 휨각이 큰 세이버를 휘두르던 영국 기병은 워털루 전투에서 프랑스 흉갑기병과 창기병에게 털린 뒤에 직선형 도검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덤으로 그 전까지는 등한시했던 창기병도 창설한다. 애초에 곡도를 휘둘렀다고 흔히 생각하는 이슬람권 기병조차 십자군 전쟁 당시에는 직선형 도검이 주류였다.

한손검은 칼집에 넣어 허리에 차고 있으면 항시 휴대가 가능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라도 최소한의 무장으로 갖출 수 있다. 검술을 수련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긴 하지만 검술을 수련한 경우 맨몸의 상대라면 매우 우수한 살상력을 발휘할 수 있고, 갑옷을 입은 상대에 대해서도 창과 마찬가지로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다. 상대가 장병기를 들고 있으면 왼손에 방패를 들어 매우 우수한 방어력으로 맞설 수 있고, 검술을 수련하면 매우 충분히 상대가 가능하다. 자신이 폴액스할버드, , 그레이트소드, 클레이모어와 같은 장병기를 들었을 때는 칼집에 넣어두면 주무기를 잃었을 때를 대비한 든든한 예비 무기가 된다. 파이크나 할버드는 대기병 특화 보병 무기라 평상시에 들고 다니기엔 너무 귀찮고 쓸 때에도 제한 사항이 붙지만, 한손검은 가볍고 걸리적거리지 않으면서도 든든하다. 물론 검술을 수련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지만 거의 전 영역에 충분히 대응 가능한, 다른 무기 못지않은 무서운 무기가 된다.

중세 중기로 접어들면서 귀족 중장기병이 전장의 주력에 됨에 따라 보병의 양손무기인 창과 도끼는 도태된다. 창은 적은 양의 철재로 최대한의 리치와 공격력을 내어주는 무기이고 도끼는 보병의 충격력을 극대화해주는 무기지만 중장기병의 랜스 차징에 비하면 리치와 충격력 모두 부질 없었던 것이다. 흔히들 암흑시대엔 무슨 판타지 게임의 야만전사처럼 도끼하나 달랑 들고 공격과 방어를 다했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도끼를 매우 애용한 바이킹들조차도 도끼는 돌격용이었고 난전으로 들어가면 당연히 따로 장비한 검과 방패를 썼다. 그러나 기병의 시대가 되면서 기마전투와 보병전투에서 모두 효율이 높은 검이 주류가 되었고 타격병기로는 양손무기인데다 균형을 잡기 어려운 도끼 대신에 메이스가 애용되었다.

이렇게 자연히 귀족들 사이에서는 가톨릭의 상징이던 십자가와도 닮아 '고상한 무기'인 검의 지위도 올라 상류층에서부터 검술을 단련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더불어 검은 서유럽 문화권에서는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기사 서임에 쓰이는 도구가 칼이다. 사회 안정화가 이룩되었다고는 하지만 툭하면 결투를 해대던 당시 시대상을 보면 칼을 소지할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하다면 필사적으로 익히는 게 당연한 무기이기도 했다.

아밍 소드와 버클러를 사용하는 소드 앤 버클러 검술서 I.33 검술서는 학자에 따라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초중반 사이에 쓰인 것으로 보는데, 어쨌든 유물이 현존하는 중세 서양의 검술서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I.33 검술서는 갑옷을 입었을 때가 아니라 평상복 차림으로 사용하는 검술이기 때문에, 기사의 훈련용으로 수련되었을 뿐만 아니라 평민의 호신 검술, 중장병에 비해 가벼운 무장을 하는 궁병 등의 군인 계급의 검술로도 사용되었을 듯하다. 실제로 중세 시대에 아밍 소드와 버클러는 평민도 애용한 호신 무장이었으며, 르네상스 시대까지도 소드 앤 버클러 스타일은 꾸준히 사용되었다.

한편, 일부러 검지손가락을 칼날에 걸쳐 잡는 그립이 유행했다. 칼날 중에서도 손잡이에 가까운 부분은 대개 날을 세우지 않았다는 점을 이용한 것으로, 이로써 더 정교한 조작과 찌르기를 할 수 있었다. 거기에 맞춰서 아밍 소드에 손가락 보호대가 달리기 시작했다. 이 보호대는 갈수록 복잡하고 화려해졌으며, 여기에 맞춰서 날을 가늘게 만들기 시작했고, 이렇게 아밍 소드는 사이드 소드, 궁극적으로 레이피어로 발전하게 된다.

4. 관련 문서


[1] 영어 위키피디아에서도 아밍 소드로 검색하면 knightly sword로 리다이렉트된다.[2] 물론 화자가 현대인의 정신을 갖췄다면 이런 말을 하는 건 오류가 아니다.[3] 정확히는 길이와 균형이 잘 잡혀서 한 손으로도 어느 정도 다룰 수 있는 양손검이다. 롱소드는 종류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이것이 롱소드다'라고 콕 집어 말하기 어렵다. 개중에는 한 손으로 사용하는 것이 고려된 물건도 있기 때문에 롱소드가 완전히 양손검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롱소드는 아밍 소드보다는 한 체급 크다. 흔히 바스타드 소드라고 부르는 것이 롱소드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이와 유사하게 일본의 도검을 뭉뚱그려 카타나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오류. 흔히 카타나라고 부르는 타치, 우치가타나는 롱소드와 마찬가지로 양손 도검이고, 아밍 소드 급의 비교적 짧은 도검은 와키자시라고 해서 한손으로 사용을 전제하고 만들어져서 길이가 카타나보다 짧다.[4] 그보다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켈트계 장검에까지 소급할 수 있지만 직접적인 조상이라 보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