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의 화폐 상평통보(좌)와 당백전(우)의 사진. 당백전의 액면가는 백 배에 달했으나, 구리 함량은 겨우 5-6배 많은 악화였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심화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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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은 금본위제하에서 제시된 경제학 이론 중 하나로, 화폐의 액면 가치와 실질적 가치에 괴리가 생길 경우에 실질적 가치가 높은 통화가 시장에서 축출되고 실질적 가치가 낮은 화폐가 통용된다는 법칙이다.
흔히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단문으로 요약되는 이 법칙은 영국의 상인이자 금융업자 토마스 그레샴이 1558년 즉위한 여왕 엘리자베스 1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졌으며, 기록에 의하면 그가 한 말은 "좋은 돈과 나쁜 돈은 같이 돌 수 없다(good and bad coin cannot circulate together)."에 더 가까웠다고 한다. 이 이론은 약 300년 뒤에 이를 발굴한 스코틀랜드 경제학자 헨리 더닝 매클라우드(Henry Dunning Macleod, 1821-1902)에 의해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으로 명명되었다.
2. 정의
서로 대등한 액면 가치를 갖는 재화 A와 B가 있다고 하자. A는 순수 금화이고 B는 합금으로 된 저질 주화라고 한다면, B의 소재 가치는 A보다 훨씬 낮고, 당연히 B의 생산 원가도 A보다도 훨씬 싸다. 그러면 사람들은 남에게 지불할 때는 B를 이용하고 실질적인 가치가 높은 A는 자기가 보관하려고 할 것이므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시장에서 양화인 A는 사라져 가고 악화인 B만 통용된다.즉, 화폐로서의 가치는 똑같이 정해 놓았으나 재물로서의 실질적 가치가 다른 두 재화가 있다면 사람들은 실질적 가치가 더 높은 재화(양화)를 보관, 저축하고, 실질적 가치는 낮지만 액면가는 같은 재화(악화)를 밖에서 사용하게 될 것이므로, 시중에서 유통되는 악화(화폐로의 가치>재물로의 가치)의 양이 늘어나고 양화(재물로의 가치>화폐로의 가치)는 점차 시중에서 그 모습을 감춘다. 이에 시중에서 돌아다니는 악화가 많아져 양화의 양이 적어지니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게 된다.
다음은 역사상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예이다.
두 종류의 화폐가 있다고 하자. 화폐 A는 금화, 화폐 B는 은화이며 무게는 둘다 1g이다. 그리고 조폐국은 화폐 A를 1만원권, 화폐 B를 1천원권으로 지정하여 발행하였다. 즉 A=10B가 공식적인 화폐간의 교환비이다. 그런데 시중에 은 품귀현상이 벌어지게 되었고, 금은방에서는 은괴 10g을 1만 2천원에 매입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현상이 장기화되면 사람들은 점점 은화를 돈(10g에 1만원)으로 사용하지 않고, 녹여서 은괴(10g에 1만 2천원)로 만든 다음 금은방 같은 곳에 팔아먹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양화인 은화는 점점 시장에서 사라질(구축될)것이고, 악화인 금화만이 시장에서 거래를 목적으로 유통될 것이다.
이것은 주화의 가치에서 액면가와 그것을 구성하는 금속의 시장가격(실제가치)에 차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실제 가치가 액면가보다 높은 양화가 있고, 실제 가치가 액면가보다 낮은 악화가 동시에 유통되고 있다면, 사람들은 실제 가치가 높은 양화는 땅에 묻든지 장롱에 쌓아두든지 해서 계속 저축할 것이고, 심하면 이걸 주조해 악화로 만드는 등, 실제 가치가 낮은 악화만 금융거래를 하는데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시장에는 실제 가치가 낮은 주화만 유통되게 되며, 가치가 낮은 주화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일은 과학적인 주조 및 위폐방지기술이 등장하기 이전의, 전근대에 굉장히 빈번하게 일어났던 일이었다. 금화 끝을 미세하게 갈아내거나 성분을 달리 해서 주조하는 등 화폐 위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어났으며, 따라서 근대 이전 은행과 금융기관에서 가장 중요한 직업 중 하나는 화폐 및 금속 감별사였다. 또한, 화폐를 위조하는 일은 국가경제를 혼란에 빠트리는 일이므로 매우 엄하게 다스렸다.
이 법칙이 성립하려면 가치의 보존과 유통 기능을 모두 가진 두 종류의 재화 사이에 법적으로 정해진 일정한 교환비가 있어야 한다. 보존 기능의 유무를 고려하면 당연히 같은 값일때 보존성이 높은 쪽이 비축되고 낮은 쪽이 유통된다. 그리고 강제된 교환비가 없다면 그냥 시장 원리에 따라 비싼 녀석은 비싼 값에, 싼 녀석은 싼 값에 책정되어 잘 돌아다닌다.
학부 수준의 경제학 개론에서 나오는 '화폐의 정의와 기능', '통화량', '이중 화폐 체계', '화폐간 법적 교환비' 이 네 가지에 대하여 이해하고 있어야 이해 할 수 있다. 단어의 정의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다르고, 이러한 정의의 기반이 되는게 상기 네가지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해서 이 네가지를 모르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수 많은 오용사례가 괜히 나온게 아니다.
정리하자면 그레샴의 법칙이 성립하려면, 즉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하려면 두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한다.
- 가치의 보존과 유통 기능을 모두 가진 두 종류 혹은 그 이상의 재화가 있을것.
- 두 재화간에 법적으로 정해진 일정한 교환비가 있을 것.
특히 두번째 조건인 일정한 교환비의 존재가 만족되지 않으면, 그레샴의 법칙과 반대되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 Thiers' Law(티어의 법칙)은 더 좋은 화폐가 더 나쁜 화폐를 몰아낸다고 한다. 이 예로는 달러가 구 소련 붕괴 직후 기존 화폐를 대체한 건, 짐바브웨의 하이퍼인플레이션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이 부분을 잘못 이해해서 나오는 예가 화폐의 질(예를 들면 동일한 화폐가 구겨져서 품질이 안좋다든가 발행년도가 옛날이라든가)에 따라 양화와 악화를 나누는 것이다. 신용화폐는 법적 교환비가 동일하고 내재가치가 거의 없기 때문에 양화와 악화를 구분할 수 없다.
3. 오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표현은 잘못 인용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가장 대표적인 오해는 악화와 양화의 개념을 오해하는 것으로, 악화와 양화는 액면가치와 실물가치의 비로 정해진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 그냥 실물가치가 높으면 양화라고 오해하게 되는 것이 제일 대표적이다.
- 1. 악화: 법정 교환비하에서 실물가치 < 액면가 인 돈(나쁜 돈)
- 2. 양화: 법정 교환비하에서 실물가치 > 액면가 인 돈(좋은 돈)
상세는 후술하겠지만 금화와 은화의 사례가 제일 대표적이다. 재료비가 20만원인 금화가 100만원의 액면가를 가지고, 재표비가 2만원인 은화가 1만원의 액면가를 가졌다면 여기서는 은화가 양화고 금화가 악화다. 금화의 실물가치(20만원)가 은화(2만원)보다 높다고 해서 금화가 양화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그것이 아니다.
문장의 의미를 겉보기 단어만 보고 이해해서 관용적으로 '나쁜 것이 좋은 것의 자리를 뺏는다' 나 '미꾸라지가 온 물을 흐린다'와 비슷한 의미로 쓰는 경우가 많으나, 경제학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과 매우 다른 개념이다.
4. 사례
4.1. 영국
이 이론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 헨리 8세는 스코틀랜드 및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고 자신의 방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기 위해 통화의 귀금속 함량을 줄이는 정책(The Great Debasement)을 실시했다. 그 결과 금화의 순도는 95%에서 83%까지 떨어졌고, 92.5%였던 은화의 은 함량은 33%까지 떨어졌다. 헨리 8세의 얼굴이 찍혀 있던 1실링 은화는 자주 코 부분의 은도금이 벗겨져 구리가 드러나기 일쑤여서, '낡은 구리코(Old Coppernose)'라는 조롱조의 별명까지 붙었을 정도.이러한 정책은 에드워드 6세 시기까지 계속되었고, 그 결과 엘리자베스 1세가 즉위한 시점에는 외국 상인들이 거래 대금을 영국 주화로 지불받기를 거부할 지경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엘리자베스 1세는 상기 언급된 그레샴의 조언을 받아들여 헨리 8세 시기의 저질 주화 약 5만 파운드를 회수하고, 순도를 높인 새로운 화폐로 대체하기에 이른다.
4.2. 고대 로마
더 오래 된 예로는 고대 로마를 들 수 있다. 네로 황제 전까지의 데나리우스 은화는 순은 100%였는데, 네로부터는 안에 구리를 넣어 오현제 시대까지는 92%로 떨어뜨렸고, 콤모두스 황제 때부터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시대에는 70%로 떨어지더니만 카라칼라 황제부터 발레리아누스 황제 때까지는 50%, 그리고 발레리아누스 황제 이후로는 5%였다. 쉽게 말해서 은화가 은도금된 동화로 바뀐 셈.4.3. 10원 주화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사람들이 10원짜리를 잘 안 쓰게 될 정도로 물가 상승이 지속된 90년대 이후부터 2000년대 중반 디자인과 재질이 바뀌기 전엔 10원짜리 동전 원가가 34원이어서 실제로 10원짜리 동전을 녹여서 악세사리를 만들어 주는 가게들까지 있었으며 그 결과 바뀐 현 10원 주화는 직경이 확연히 작아지고 알루미늄로 제작되어 장난아니게 가볍다.게다가 2000년대 후반까지도 10원짜리 훼손 행위의 처벌 법규가 없었다. 2011년 12월 와서야 처벌규정이 나올 정도. 그리고 아직까지도 시장에 유통되는 구 10원 동전을 녹여서 동괴를 만들어서 판 일당이 검거됐다는 뉴스가 매년 나온다. 2014년에도 20억 원 가까이 부당이익을 챙긴 일당이 검거되었다. 수집책들이 전국 금융기관에서 보유 중인 10원짜리를 "인테리어 장식용으로 쓸 계획이다"는 핑계로 개당 몇 원의 웃돈을 주고 수천만 원씩 사들인 뒤, 이를 녹여서 동괴로 만들어서 내다 팔았다.
4.4. 상평통보
조선 시대에는 상평통보에 대해서 사람들이 정확히 이 짓을 했다는 민담이 있다. 맨 처음에는 돈을 쓰더니 돈을 녹여서 그 금속으로 물물교환을 하는 게 낫다고 해서 마을 대장간에서 돈을 전부 다 녹이니까, 정부가 그걸 알아채고 상평통보 엽전을 여러 금속의 합금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 양반들이 한수 위여서, 그 합금의 레시피를 알아내서 마을 대장간에서 돈을 직접 찍어내서 썼다는 이야기.물론 조선시대에는 상평통보를 녹이는 것도 처벌 대상이었으며, 합금으로 당백전을 직접 찍어낼 경우에는 화폐 위조죄로 그 자리에서 사형이다. 화폐위조는 나라(정확히는 정권)의 근간을 뒤흔들 수도 있는 심각한 행위인지라 역사상 대부분의 나라들이 반역에 준하는 중죄로 여겨 극형으로 다스렸다. 금속화폐에서 종이(신용)화폐로 넘어간 다음에는 전시에 적국의 화폐를 위조해서 적국에 대량으로 뿌려 경제를 공격하기도 했다.
물론 대장간 기술만 되어도 상평통보쯤은 찍어낼 수 있었고, 수많은 관청이며 군영들이 제각각 주조할 권한이 있다보니 주조 통제가 안 되었다.
4.5. 당백전
반면 당백전이라는 악화가 나온 흥선대원군 시기에는 양화인 상평통보를 죄다 숨겨버리고 당백전만 유통되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당시 당백전은 실제 가치가 액면가의 6% 남짓한 가치밖에 없는[1] 악화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밀수된 것이 청나라 화폐의 위조품들인데 이걸 청전이라고 했다. 가치는 상평통보의 1/3. 하지만 당백전에 비하면 양화이다. 그런데 당백전이 폐지되고 오히려 청전 유통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뒤에는 청전이 악화가 되었고, 상평통보는 여전히 창고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결국 조선정부는 대원군이 물러난 다음에 청전마저 폐지해야 했다. 청전과 당백전의 유통으로 일어난 인플레이션과 화폐 불신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실물화폐와 전자화폐는 법정 교환비가 동일한 완전 대체재이므로 양화와 악화를 나눌 수 없다. 제조단가는 물물교환과는 아무 상관없는 팩터다.
다만 위 단락에서 언급된 인플레이션의 근본적인 이유는 당백전을 너무 많이 발행했기 때문이다. 소량만 찍어냈다면 당백전을 모을 만큼 여유있는 사람들은 최대한 상평통보를 숨겨놓고 당백전으로만 거래 했겠지만, 상평통보(양화)를 대체할 만큼 당백전(악화)이 많지가 않다면 그레샴의 법칙처럼 완전히 구축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대에 유통되던 상평통보의 총액은 약 1천만 냥으로 추정되는데, 이 때 풀린 당백전의 총액은 적어도 공식적으로 1600만 냥 정도나 되었다.
현대의 화폐에 비하면 위조하기가 쉬운 옛날 금속화폐의 특성상 금속의 가치가 액면가치랑 비슷한데, 상평 6냥짜리 동전이 100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쏟아져 나오니 기존의 상평통보는 모조리 장롱행... 그런데 총 통화량은 2600만 냥으로 증가했으므로 물가는 최소한 이론적으로 2.6배 뛰었을 것이기 때문에 당백전(100냥 단위)으로 거래할 만한 부자들이 아니면 죄다 물물교환으로 회귀하고 화폐경제는 파탄나고 세금도 제대로 안 걷히고... 사실 1천원 지폐가 볼펜으로 찍찍 긋고 '100만원'이라고 써둔 수준이니 이걸 믿을리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상당히 특이한 상황인데, 북한처럼 새 화폐가 구 화폐를 100:1의 비율로 대체한 것도 아니라서 여러모로 곤란하다. 공식수치만 두고 보자면 기존에 1천만 냥 분량의 상평통보가 있었고 새로이 당백전 1600만 냥(액면가)을 발행했는데, 이 당백전들의 금속가치는 96만 냥(1600 / 100 * 6)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레샴의 법칙에 따라 1천만 냥의 양화가 모두 사라져버리고 실질가치 100여만 냥의 악화만 유통되는 상황이었으므로, 엄밀히 따지면 이는
4.6. 금본위제도
윗 사례는 금화가 양화이지만, 반대로 금화가 악화가 된 사례도 있다. 금본위제도가 바로 그것인데, 19세기 후반 영국에서는 금 자체가 귀한 화폐다보니 비싼 화폐로 통용됐으나 사람들은 더 작은 단위이면서 쓰기 편한 은화를 즐겨 사용했었다. 그러나 실제 시장에 돌아다니는 금의 양이나 은의 양이나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금의 실제 가격은 낮아지고 은의 가격이 높아지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그리고 결과는 양화였던 은화가 악화였던 금화에게 구축당했다. 즉, 주화의 가치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액면가와 실제가치를 재서 실제가치가 낮다면, 즉 화폐로 사용하는 게 다른 용도로 쓰는 것보다 나은 화폐라면 그것이 악화라는 것이다. 금이 귀하다고 해서 무조건 양화라고 생각하면 오산.실제로 이런 과정을 통해 변동환율제가 될 때까지 국제 표준화폐가 금화가 되는 금본위제도를 만들어냈는데, 이는 금화가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금화야말로 모든 금속화폐를 구축한 최악의 악화였기 때문에 그렇다. 금이 가치있는 귀금속임은 분명하지만, 타 금속화폐보다 실질가치 대비 액면가를 높게 만들어 버리면 악화가 될 수밖에...
실제로 금본위제를 연구하는 학자는 이 시기에 정상적으로 금화가 구축당했다면, 브레튼우즈 체제가 은본위제로 굴러갔었을것이고(금이 민간의 손에 들어가서 시중에 유통되지 않았을 것이므로) 그렇다면 공급 유연성이 좋은 은화를 기축통화로 했다면 고정환율제가 좀 더 버티지 않았을까 라고 하는 전망을 내놓는 학자도 있었다. 뭐 그렇다고 브레튼우즈체제의 불안정성 때문에 몇 년 더 갔을 정도에 그칠 게 뻔하다는 게 일반적인 중론이라 그다지 지지받고 있지는 않다. 어차피 원인은 달러화의 불안정성이 제일 크기도 하고...
5. 레몬 시장에 적용될 수 있는 법칙인가?
재화 품질의 비균등성및 정보의 비대칭성에 의하여, 품질이 좋지 않은 물건이 상대적으로 시장가격이 높게 책정되는 경우 혹은 양질의 재화의 시장 노출이 적어지는 경우를 이 법칙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는 중고차 시장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케이스를 레몬 시장(Lemon Market)이라고 부른다. [3] 쉽게 말해 '상품의 품질에 대해 구매자보다 판매자가 잘 알아서 유리하여 가격도 엉망인' 시장을 뜻한다. 대표적인 레몬 시장인 중고차 시장을 보면, 중고차가 시장 매물로 들어오는 요인은 딜러만이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차에 하자가 없음에도 싫증이 나서 바로 팔아버린 경우도 있을 것이고, 침수차거나 부활차처럼 사실상 시장에 나와서는 안 될 폐급도 있을 것이다. 이 때 딜러는 상태가 좋은 매물은 팔려고 하지 않고, 하자가 있는 제품을 먼저 팔아버리려고 할 것이다. 차량에 원래 있는 하자는 딜러가 미리 알려 주지 않으면 구매자가 쉽게 발견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나중에 하자를 발견하더라도 발뺌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다른 딜러들도 비슷하게 판단하기 때문에 시장에는 멀쩡한 중고차는 잘 돌지 않고 형편 없는 중고차만 자주 보이게 된다.이 경우를 "악화(형편 없는 중고차)가 양화(질 좋은 중고차)를 구축한다(몰아내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의 대표적 사례로 오인하는 일이 많다. 앞 문장에서 보듯 비유의 대상이 딱딱 맞게 들어가고, 현상에 대한 설명도 직관적이
비슷한 예로는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격언을 들 수 있다. 해당 격언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의 시에서 나온 것인데, 유베날리스는 검투사들이 저마다 온몸에 기름을 바르고 칼싸움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풍자시에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까지 깃들면 바람직할 것이다.(Orandum est ut sit mens sana in corpore sano.)"라는 말을 적었다. 즉, 원 저자의 의도는 육체가 건강하다고 해서 건전한 정신이 반드시 따라오는 것은 아니고, 육체적인 단련에만 힘쓰고 교양을 쌓는 건 멀리하는 세태를 비판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며 위 격언이 정반대의 의미로 오역되면서, 건강한 정신을 위해서는 육체적인 단련에도 힘써야 한다는 체육관스러운 격언으로 자주 인용되고 만 것이다.
6. 관용적 용례
실생활에서는 관용적으로 '나쁜 것이 좋은 것의 자리를 빼앗는다'는 의미에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위에서 살펴봤지만 이런 관용적 의미는 원래 이 말이 의도했던 의미와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원래 화폐, 혹은 자산가치를 저장 가능하고 환금성이 있는 재화에 한정된다.이런 관용적 의미로 사용되게 되는 이유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 자체가 관용적 의미가 뜻하는 현상에 맞아 떨어지는 중의적인 의미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나쁜 것이 좋은 것의 자리를 빼앗는다'는 관용적인 의미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지식인 층에서도 널리 사용되어 왔다. 사실 고대 로마 시절 당대 철학자들이 철학적으로 뭔가 비슷한 이론을 굳이 연결하려고 하면서 이같은 발언을 했던 것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화폐가 신용카드나 수표 지폐 같은 신용화폐로 전환되면서 화폐시장과 관련한 경제학에서는 의미가 희미해지면서 이제는 경제학속에서도 환율 관련한 토픽에나 나오는 이야기가 되었다. 다만 개론시간에 이 이론에 시간을 할애해서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현대경제학의 화두인 트리핀의 딜레마(Triffin's Dilemma)가 발생하는 직접적인 원리이기 때문이다. 개방경제 하에서 기축 통화가 유동성을 확보하도록 하려면 결국 해당 통화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하고 이 때문에 발행국의 적자가 늘어나고, 기축통화의 신뢰성이 저하되는 딜레마가 발생하는데, 그렇다고 통화 공급을 안하게(혹은 적게 하게) 되면 기축 통화가 양화가 되어 시장에서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화폐를 담보하는 국가가 유사시[4] 어떤 이유로 신용담보의 역할이 어려워지게 되면, 신용화폐를 포함한 통화의 액면가와 실질가는 언제든 요동칠 수 있기때문에 이 이론은 경제학 내에서도 화폐의 상대적인 가치를 논하는 이론으로 계속 오르내리고 있다.
7. 기타
- 한나라 말기에 승상인 동탁이 오수전을 마구 찍어내 그레샴의 법칙을 달성한 바 있다. 문제는 이 때문에 한나라는 오늘날의 짐바브웨 못지 않은 수준의 심각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후 조조가 황제를 옹립하고 난 직후 승상이 되자마자 물가를 안정시키며 민생에 온 힘을 쏟았고 마침내 조조는 동탁이 저지른 막장짓을 해결했다.
- 허지웅이 JTBC에 출연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라는 말을 짝퉁 한류가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에 완전히 잘못 빗대어 설명했다. 흔히 그레샴의 법칙을 구축(驅逐)을 구축(構築)으로 이해하곤 하는데, 이것이 대표적인 예. 그리고 허지웅의 스마트한 이미지는 이 한마디로 완전히 박살나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위 '자주 하는 오해들' 문단으로.
- 일본의 라이트 노벨인 늑대와 향신료에서도 등장. 1권에서 트레니 은화의 은 함량을 낮추고 시뇨리지를 시도하자, 은 함량이 높은(=가치가 높은) 트레니 은화들을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다는 장면이 나오며, 10권에서는 경제 사정이 좋지 못해 밀 부족 사태가 벌어지자, 질 좋은 밀은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고, 대신 질 나쁜 밀가루만 유통되고 있다는 말이 등장한다.
8. 관련 문서
[1] 당백전의 액면가는 상평통보의 100배였지만, 금속가치는 5~6배에 불과했다.[2] 주화야 녹일 수 있지만, 지폐를 돈 말고 어떻게 쓰겠는가? 지폐가 휴지보다 싸지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지폐의 내재가치는 0이라 봐도 무방하고, 인플레이션이고 디플레이션이고 간에 전자정보인 은행예금은 돈 말고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에, 은행예금의 내재가치는 그냥 0 그 자체.[3] 여기서 레몬은 영어권에서 좋지 않은 물건을 비유하는 속어로 폭스바겐 비틀의 1965년산 중에 레몬색 차량이 유독 잔고장이 많아 중고차 시장으로 자주 유입된 것이 이름의 유래했다고 한다.꼭 레몬색 비틀을 떠나서, 20세기 초 문헌을 보면 "레몬"이라는 단어를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속여 넘기다(to pass off a sub-standard article as a good one)" 혹은 "호구, 바보(simpleton, idiot)"에 해당하는 의미의 속어로 사용한 용례가 남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레몬이 입 안에서 나쁜 뒷맛을 남기기 때문에" 혹은 "뒷생각 안 하고 일단 쥐어짜 즙을 최대한 얻어내고 버리기 때문에"나 "호구처럼 속의 즙을 쪽쪽 빨아먹고 버리기 때문에" 등의 추측이 있다. 다만 단어의 유래가 외국이라 의미가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아서 개살구 시장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반대 의미는 복숭아(Peach) 또는 박하(Mint) 시장으로, 좋은 상품이 적정가에 판매되는 시장을 뜻한다.[4] 경제학에서 유사(有事)라 함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쟁이나 천재지변 외에도 경기침체나 대량실업, 국제관계의 변화, 법령에 따라 대규모의 지출이 발생하거나 증가하는 경우 등 국가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는 경우를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