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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18:13:55

안젤로 스키아비오

안젤로 스키아비오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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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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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05년 10월 15일
사망 1990년 4월 17일(향년 84세)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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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센터포워드
신체 178
소속 <colcolor=#fff> 선수 볼로냐 FC(1922~1938)
감독 볼로냐 FC(1933~1934)
볼로냐 FC(1946)
이탈리아 대표팀 기술위원회(1953~1958)
국가대표 21게임 15(이탈리아|1925~1934)
1. 개요2. 선수 경력3. 감독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기록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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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前 축구선수감독.

2. 선수 경력

2.1. 클럽

21-22시즌까지 볼로냐 유스에서 활약, 프로 데뷔는 1923년 1월 18일 유벤투스를 상대로 했다. 데뷔 초 11게임 6 활약으로 알베르티의 빈자리를 꿰찼고, 볼로냐 FC를 북부 리그 결승에 진출시켰다.

이후 볼로냐 FC 1909에서 계속 활약해 24-25시즌 첫 스쿠데토를 차지, 해당 활약으로 이탈리아 유니폼도 입게 되었다. 25-26시즌에는 23게임 26골, 28-29시즌에는 29게임 29골을 기록했고 31-32시즌에는 25골로 카포칸노니에레, 32-33시즌에는 28골로 보렐에 이어 골 수 2위를 차지했다. 1932, 1934년에는 미트로파컵 우승도 차지했다.

36-37시즌에는 2게임 출전에 그쳤고, 37-38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

2.2. 대표팀

1925년 11월 4일,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을 상대로 알레만디와 데뷔해 더블로 2:1 승리를 주도, 이후 리보나티와 대회를 분담 출전했다[2].

2.2.1. 1934 월드컵

1934 월드컵에서 포초 감독에 의해 센터 포워드로 낙점, 미국해트트릭[3] 포함 4로 골 수 2위를 기록했고, 대표팀 은퇴 경기였던 결승전에서는 결승골을 기록해 우승했다.

3. 감독 경력

33-34시즌 볼로냐선수 겸 감독이었고, 45-46시즌에 감독이 되기도 했으나 시즌 종료 전에 해고되었다. 이후 이탈리아 대표팀 기술위원회 소속으로 대표팀을 이끌었다.

4. 플레이 스타일

볼로냐 전체 우승의 반[4]을 이룬 선수이자 볼로냐 FC 득점 1위[5], 출장 9위[6]. 기량이 웬만한 선수보다 한 수 위였고 특히 드리블이 좋았다. 커리어 절반에 가까운 7시즌이 세리에 이전이라 세리에 A 기록은 손해를 많이 봤으나 세리에 이전 기록까지 합치면 그의 위에는 3명[7]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경기당 도 0.69골로 노르달[8]에 이어 세리에 100골 이상 득점자 중 2위다.

5. 기록

5.1. 대회

5.1.1. 클럽

5.1.2. 대표팀

5.2. 개인

6. 기타


[1] 골든슈, 실버슈, 브론즈슈는 1982 월드컵부터 수여했으므로 비공식 수상.[2] 스키아비오는 올림픽, 리보나티는 중유럽컵에 출전했다. 27-30 중유럽컵에는 2게임 출전했다.[3] 이탈리아 월드컵 최초의 해트트릭.[4] 스쿠데토 4개를 차지했다.[5] 242. 2위 레구초니와 75골 차이.[6] 364게임[7] 250골의 토티, 290골의 피올라, 267골의 메아차.[8] 0.77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