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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1 22:29:06

안초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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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ancho_IV_de_Navarra-_Compendio_de_crónicas_de_reyes.png
Antso IV.a Gartzeitz
가문 세메노 왕조
생몰년도 1039년 ~ 1076년
출생지 팜플로나 왕국
사망지 팜플로나 왕국 페날렌
재위
기간
팜플로나 왕국 국왕 1054년 - 1076년
아버지 가르치아 4세 산치츠
어머니 푸아의 에스테파니아
형제 라미로 가르체이츠, 우라카 가르체이츠, 헤르메신다 가르체이츠, 페르난도 가르체이츠, 라몬 가르체이츠, 세메나 가르체이츠, 메요르 가르체이츠, 안차 가르체이츠
배우자 노르만의 플라센시아, 세메나(정부)
자녀 가르치아 산치츠, 가르치아 산치츠, 라미로 산치츠(사생아), 우라카 산치츠(사생아)

1. 개요2. 생애3.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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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팜플로나 왕국 11대 국왕.

2. 생애

1038년 팜플로나 왕국 10대 국왕 가르치아 4세 산치츠와 비고레 백작 베르나르-로제 또는 바르셀로나 백작 베렝게르 라몬 1세의 딸인 푸아의 에스테파니아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형제로 라미로 가르체이츠, 우라카 가르체이츠, 헤르메신다 가르체이츠, 페르난도 가르체이츠, 라몬 가르체이츠, 세메나 가르체이츠, 메요르 가르체이츠, 안차 가르체이츠가 있었다. 1054년 카스티야의 패권을 놓고 레온 왕국의 국왕 페르난도 1세와 아라곤 백작 라미로를 상대로 아타푸에르카 계곡에서 전투를 벌이던 아버지가 전사한 후 주둔지에서 14살의 나이에 병사들에 의해 새 국왕으로 추대되었다.

18살 때까지 어머니의 섭정을 받았고, 어머니가 1058년 사망한 후 친정을 시작했다. 당시 팜플로나 왕국의 서쪽에 있던 많은 영주들이 카스티야 백작 및 레온 국왕 페르난도 1세에게 귀순하자, 아라곤 왕을 칭한 라미로 1세와 동맹을 맺고 페르난도 1세와 대립했다. 그러다가 1062년 12월 29일, 안초 4세와 페르난도 1세는 그들의 국경을 확정짓는 조약에 서명했다. 페르난도 1세는 카스티야의 단독 군주로 인정받았고, 안초 4세는 리오하, 알라바, 비스케이 등지를 돌려받았다.

1063년, 아라곤 국왕 라미로 1세가 사라고사 토후국의 전진기지인 그라우스를 포위 공격하다가 사라고사 토후국에 고용된 용병대장 엘 시드의 역습을 받고 전사했다. 교황 알렉산데르 2세는 이 소식을 듣고 유럽 각국에 이베리아 반도의 기독교 국가들을 돕기 위해 원조를 보내달라고 호소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067년 레온과 카스티야의 산초 2세가 팜플로나 왕국 국경지대에 군대를 배치하고 팜플로나를 위협하자, 안초 4세는 위협을 느끼고 아라곤 국왕 산초 라미레스에게 구원을 호소했다. 이에 산초 라미레스가 구원군을 이끌고 달려오면서, 이른바 "세 명의 산초 전쟁"이 발발했다. 그 결과, 엘 시드가 이끄는 카스티야군이 대승을 거두었고, 안초 4세는 부레바, 알타 리오하, 알라바 일대를 카스티야에 넘겨줘야 했다.

1076년 6월 4일, 안초 4세는 나바라 마을 인근의 페날렌에서 사냥하던 중 형제 라몬 가르체이츠가 고용한 암살자가 내지른 단검에 찔려 협곡 아래로 굴러 떨어져 사망했다. 라몬 가르체이츠는 팜플로나 왕국의 새 국왕이 되려 했지만, 귀족들이 형제를 살해한 그를 왕으로 받들기를 거부하자 사라고사 궁정으로 도주했다. 이후 레온-카스티야 국왕 알폰소 6세가 비즈카이아, 기푸스코아 등 여러 영토를 빼앗아갔고, 아라곤 국왕 산초 라미레스가 팜플로나의 왕위를 겸임했다.

3. 가족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