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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18:59:18

산초 레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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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riosto,_after_-_Sancho_Ramírez_of_Aragon.png
Sancho Ramírez de Aragón
가문 히메네스 왕조(세메노 왕조)
생몰년도 1042년 ~ 1094년 6월 4일
출생지 아라곤 왕국
사망지 아라곤 왕국 우에스카
재위
기간
아라곤 왕국 국왕 1063년 - 1094년
팜플로나 왕국 국왕 1076년 - 1094년
아버지 라미로 1세
어머니 비고라의 에르미센다
이복형제 가르시아 라미레스, 테레사, 산차, 우라카
배우자 우르헬의 이자벨, 루시의 펠리시아
자녀 페드로 1세, 페르난도 산체스, 알폰소 1세, 라미로 2세
종교 기독교 (가톨릭)

1. 개요2. 생애3.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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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라곤 왕국 2대 국왕, 팜플로나 왕국 12대 국왕.

이름은 스페인어로는 '산초 라미레스', 아라곤어로는 '산초 레미리스', 바스크어로는 '안초 라미리츠'이다.

2. 생애

1042년경 아라곤 국왕 라미로 1세와 비고라 백작 베르나르로제의 딸인 예르미센다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형제로 가르시아 라미레스, 테레사, 산차, 우라카가 있었다. 일찍이 우르헬 백작 에르멘골 3세의 딸 이자벨과 결혼했다. 1063년 아버지가 신카 계곡의 최북단 무슬림 전초기지인 그라우스를 포위 공격하던 중 사라고사 토후국에게 용병으로 고용된 엘 시드의 공격을 받고 전사하자 아라곤의 새 국왕으로 등극했다.

1064년 공성 기술을 갖춘 프랑스인들을 포함한 원정대를 파견해 킨카 강과 베로 강이 교차하는 지점에 자리잡은 바르바스트로(Barbastro) 시를 공략한 뒤 장인인 우르헬 백작 에르멘골 3세에게 맡겼다. 1065년 4월 사라고사 에미르 아흐마드 알 무콰디르가 지하드를 선포하고 바르바스트로로 쳐들어오자, 에르멘골 3세는 이에 맞서 항전해 도시를 지켜냈지만 그 과정에서 병사했다. 이후 산초 라미레스가 반격에 나서 1067년 이전에 부에라, 콜룽고, 아다우에스카 마을을 포함한 알케자르 일대를 공략했다.

1068년 2월 14일, 로마를 방문해 교황 알렉산데르 2세를 알현하고 아라곤 왕국을 교황청에 봉헌한 뒤 연간 500만 금화를 교황에 바치기로 했다. 교황은 그에 대한 대가로 아라곤 왕국을 정식으로 승인하고 성직자들을 아라곤에 파견해 주교구를 신설하게 했으며, 유럽 각국에 무슬림에 맞서 용감하게 싸우고 있는 아라곤 왕국을 도우라는 교령을 반포했다. 이후 많은 이탈리아 성직자들이 아라곤에 들어오면서, 아라곤에 로마 가톨릭 의식이 점진적으로 도입되었다.

1067년 레온과 카스티야의 산초 2세가 팜플로나 왕국 국경지대에 군대를 배치하고 팜플로나를 위협하자, 팜플로나 국왕 안초 4세는 위협을 느끼고 아라곤에 구원을 요청했다. 산초 라미레스 역시 산초 2세의 확장 정책에 위협을 느끼던 터라 팜플로나 왕국을 돕기로 했다. 이리하여 발발한 "세 명의 산초 전쟁"은 엘 시드가 이끄는 카스티야군이 대승을 거두었고, 안초 4세는 부레바, 알타 리오하, 알라바 일대를 카스티야에 넘겨줘야 했다.

1076년 6월 4일, 안초 4세는 나바라 마을 인근의 페날렌에서 사냥하던 중 형제 라몬 가르세이츠가 고용한 암살자가 내지른 단검에 찔려 협곡 아래로 굴러 떨어져 사망했다. 라몬 가르세이츠는 팜플로나 왕국의 새 국왕이 되려 했지만, 귀족들이 형제를 살해한 그를 왕으로 받들기를 거부하자 사라고사 궁정으로 도주했다. 이후 팜플로나 귀족들의 추대를 받으면서, 산초 라미레스는 아라곤과 팜플로나의 왕위를 겸임했다. 그는 레온-카스티야 국왕 알폰소 6세의 승인을 받아내는 대가로 비즈카이아, 기푸스코아 등 팜플로나 왕국의 서쪽 영토를 넘겨줬다.

1077년 푸에로 데 자카(Fuero de Jaca)를 반포해 카미노 데 산티아고 마을을 도시로 승격하고 아라곤 왕국과 주교 본부의 수도로 삼았으며, 자크 대성당의 건설을 명령했다. 이는 피레네 산맥 반대편의 가스코뉴 등 프랑스인들과의 무역 활동을 용이하게 수행해 국부를 늘리기 위한 조치였다. 1078년에는 사라고사에서 20km 떨어진 에브로 강둑에 엘 카스텔라 요새를 건설하여 사라고사를 압박했다.

1083년 지난날 아버지가 공략에 실패하고 목숨을 잃었던 그라우스를 공략했고 뒤이어 아예르베(Ayerbe)를 제압했다. 이로써 아라곤 왕국이 킨카 강변과 우에스카 저지대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우에스카의 남서쪽에 자리잡은 알 무데바르, 바르뷔에스, 상가렌, 타베르나스, 비시엔을 포함한 12개 마을들은 아라곤 왕국에 복속되어 매년 공물을 바치는 조건으로 평화 협약을 맺었다. 1084년 4월 5일에는 투델라 시에서 15km 떨어진 아르게다스(Arguedas) 시를 공략했다. 그는 새로 확보한 영토를 지키기 위해 로아레(Loarre) 요새를 재건했으며, 오바노스(Obanos), 가리사(Garisa), 몬테아라곤(Montearagón), 아르타소나(Artasona)에 요새를 건설했다.

1087년 킨카 강과 에세라 강이 교차하는 지점인 에스타다를 새로 공략했으며, 1092년 프라가에서 12km 떨어진 자이딘(Zaidín)을 공략했다. 이렇게 확보한 영토 일부는 리바고르사를 관장하고 있던 장남 페드로 1세의 소유로 귀속되었다. 한편 1086년 10월 23일 알폰소 6세가 이끄는 레온군과 무라비트 왕조의 유수프 이븐 타쉬핀이 맞붙은 사그라하스 전투가 벌어졌을 때 알폰소 6세에게 지원군을 파견했으나 패배를 면치 못했다.

파일:산초 라미레스의 죽음.webp

1094년 6월 4일 우에스카 시를 포위해 맹공을 퍼붓던 중 날아온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그의 유해는 몬테아라곤 수도원으로 옮겨졌다가 나중에 산 후안 데 라 페냐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사후 장남 페드로 1세가 아라곤 국왕이자 팜플로나 국왕으로 등극했다.

3. 가족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