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6-10-27 17:36:07

안헌


안헌(安獻)
<nopad> 파일:단종 구하러 4군6진 채색표지.jpg
출생 1431년[1] 조선국 경기 광주부
국적 조선 → 심국
직위 아오지 토관(정5품 통의랑(通義郞))[2]
→ (생원, 진사)[3]
→ 전시 장원 후 정음청 부제조(정3품)[4]
→ 순의대부(종2품)[5]
→ 함길도 도절제사 겸 도관찰사[6]
→ 예조판서, 정2품 상계 봉헌대부[7]
→ 심왕(瀋王)[8]
자 유수(由受)[9]
호 우인(友仁)[10]
별칭 칠세현자, 해동성현, 훈정서원장, 아오지도령, 안자 등
가족 배우자 평창군주(平昌郡主)
장남 안준
차남 안훈
제자 장희백, 김종직, 김시습


1. 개요2. 환생 이전3. 작중행적
3.1. 유년기3.2. 청소년기3.3. 심왕3.4. 3년후(2부)
4. 업적

1. 개요

대체 역사소설 단종 구하러 4군6진의 주인공.
목표: "계유정난을 막으시오." "이홍위의 자연사" "학궁의 건립"[11]

2. 환생 이전

현대에서는 국문학도였고, 고전문학 전공자였다.[12][13][14] 학교는 연려대 출신인 것으로 보인다.[15][16][17] 단종이 영월로 유배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보고 슬픔에 잠겨 영월을 향했다. 거기서 열여살 나이에 직장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이 있어서 분노하며 범인이 누구냐며 따지다가 세종 17년(1435년) 함경도 아오지에서 다섯살 고아 안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그리고 깨어나자 웬 퍼런 호랑이를 통해 목표를 전달받는데, 바로 '계유정난을 막는 것'과 '이홍위의 자연사'이다.

3. 작중행적

3.1. 유년기

1435년의 안헌은 조부와 부모를 모두 잃어서 천애고아가 된 아이로 죽산 안씨의 2대 독자였다. 작은 할아버지들도 모두 돌아가셨다고 하는 걸 보면 집안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 원래의 안헌이 현대의 기억을 떠올린 것인지 아니면 현대의 안헌이 다섯살 아이의 몸에 들어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외모는 현대의 안헌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모양.[18]
처음 아오지로 전생할 때 신령 홍위씨를 붙잡고 네가 아오지에서 태어나 남한으로 떠내려온 천애고아도 아니고 운운하다가 진짜 아오지에서 천애고아가 되었다. 주어진 목표를 성취하고 한창 개척중인 육진, 그것도 아오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삼년상을 치르기로 결정한다. 이에 아오지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애 잡는다고 격렬하게 반대했으나, 잠시 후 이 소식을 나랏님이 들으면 효자문을 내릴 것이고, 그러면 혜택으로 마을 전체에 각종 조세와 역이 면제라는 것을 깨닫고는 주인공을 전력으로 서포트하기로 마음 먹는다.[19][20]

세종대왕의 눈에 띄여 높은 자리를 받아 계유정난을 대비하고자 한다...라고 하지만 국문과 출신이라는 배경, 그리고 세종대왕을 향한 필사적인 구애의 춤을 보면 그냥 세종대왕 덕질하는 미친 광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 다만 그 효과가 너무 좋아서 문제. ????: 내가 저것을 당장 못 갖는다? ...왜? 세종대왕은 부려먹기 좋은 특급노예로 인식하고 있고 문종은 저 좋은 거 아버지만 쓰지 말고 나도 쓰자고 생각하면서 최소한 단종 대까지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공포. 그렇게 인식되고도 여유가 생기면 칸트 철학을 성리학적으로 만류록 시네마틱 유니버스 페이즈 2 어떻게 깎아야 할까 고민하는 광인이다. 헌씨는 누님이 아니라 할아바님과 결혼한 것 같아요. by. 신령 홍위씨 현대에서의 삶을 회상하는 서술들과 조선에 떨어지고 나서 하는 행동들을 모아보면 공부에 특화되어 있고 매우 즐기는(!) 인재. 심지어는 조선에 떨어지고도 왕이 성리학 공부하자고 부르면 바로 가고 왕이 안 불러도 자기 스스로 간다는 걸 보면 즐기는 천재...를 넘은 광인. 함길도 도절제사로 부임해서 일년 반쯤 되자 슬슬 세종대왕과의 공부시간이 그립다고 이야기하기도...

3.2. 청소년기

조정에 출사한 시점에서 안헌은 스스로 종친들에게는 군주의 손녀사위이자 왕친, 사대부들에게는 성현이자 선비의 귀감, 벌열(문벌귀족)에게는 동족이요, 지방의 토호들에게는 출세했지만 아오지에 거점을 둔 동지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자각, 모든 권력자 집단에게 호의를 받을 수 있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조선을 바꾸고 구조적으로 계유정난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생각하며 스스로 목표를 상향 조정하는 중이다.[21]
백성들에게는 신령한 존재로 인식되는 중인 듯하다.

이따금 힘들 때면 여진족 황제나 그 비슷한 위치까지 올라간 뒤, 조선을 정벌하고 이홍위를 뒤주에 넣어 애완홍위로 만들 망상을 한다. 할 때마다 홍위 씨가 제발 그런 생각 좀 하지 말라고 사정하는 중. 완전히 농담은 아니겠다 싶은 것이 조선어 외에도 여진어도 할 줄 알고 주변의 여진족이 주인공을 아오지의 권력자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묘사가 나왔다. 이후로는 사이버펑크 2077을 인상 깊게 플레이했는지 미래의 조선을 지배하는 메카 세종과 인공지능 An-Za를 떠올리기도 한다.
일반적인 관료 같으면 문제를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할 방안의 이론의 토대를 잡고 그 이론으로 사람들을 설득한 후 그 이론으로 사람들을 설득해서 패를 모으고 세력을 키우면서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구체화하다가 세력의 힘에 기반하여 정치적 거래로 안건을 실현한다면, 안헌은 갑자기 우주에서 떨어진 기책을 내놓고 그 기책을 들은 왕이 '오'하고 당장 해보기 전에 사람들 눈치를 보면 훈정회보를 통해서 공론이 '오'하면서 당장 해보자라고 하면서 순식간에 실현해 버린다고. 밀실정치, 야합, 괴이한 측면돌파
필체는 안평대군의 말에 따르면 다소 휘갈기는 듯한 서체를 쓰는 모양이다. 작중 서술에서는 21세기의 필법에 익숙한 흔적이 있다고 나왔다. 토관이 된 집안의 도련님이기는 하지만 돈 때문에 고생한 적은 없는 듯. 21세기에도 그렇고 15세기에도 사채와는 먼 삶을 살아왔다고 한다.
명이 몽골을 정벌할 계획을 세우자 토목의 변이 곧 일어날 것임을 알고 있는 안헌이 자처해서 김종서와 교대해 함길도 도절제사로 가게 된다. 원칙상으론 외관직도 해봐야 하는 게 조선 관료 사회라서 막을 명분이 없어 세종도 허락하게 되었지만, 졸지에 평창군주가 독수공방하게 되기 때문에 세종과 평창군주에게 말없이, 하지만 호되게 혼이 난다.
부인인 평창군주와의 관계는 나쁘지는 않다. 오히려 평창군주가 이해해 주고 참아주는 쪽에 가까우며 그 반동으로 시간이 나면 전력으로 앵기는 평창군주로 인해 안헌이 업보를 받는 관계에 가깝다. 자신이 결혼생활 절반을 바깥을 나돌아다닌 줄 알겠다면서 속으로 생각하는 걸 보면 양심이 터진 듯.[22] 다만 나중에 아내인 평창군주보다 세종과 보낸 시간이 더 많다는 걸 깨닫고 본인이 무슨 짓을 해왔던 건지 경악하는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3.3. 심왕

이후 정통제와 왕진의 정신 나간 판단으로 심왕에 봉해졌다.
다만, 정통제가 생각한 것처럼 세종대왕과 알력다툼은커녕 오히려 평창군주가 주인공과의 시간을 두고 세종대왕과 갈등 중 서로가 서로를 믿고 있는 관계라 이이제이는 물론이고 갈등의 갈자도 일어날 일이 없다. 다만 심왕으로 책봉된 것은 무시할 수 없어서 정통제가 보낸 명나라 사신단이 책봉문을 읽은 후로 공식적으로는 세종대왕의 신하가 아니라 동격인 제후왕이 되었으므로 공적으로는 서로를 존대하는 관계이고, 사적으로는 손녀사위, 처조부 관계로 바로 돌아온다. 심왕의 영지일 것으로 보이는 심양에 머무르는 대신, 한양에 계속 머무를 생각으로 보이며 관직에서 물러나 훈정서원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다.
심왕 책봉을 위해 북경에 다녀온 겸사겸사 성리학 핵폭탄 MK. 2도 투하하고 뒤 평창군주를 데리고 요동 심양에 있는 심왕부를 둘러보고 사람도 임명하고 돌아온다. 평창군주는 굉장히 만족했다 그리고 여유롭게 평창군주와 논 뒤 자신의 언행이 결국 조선 조정에 부담이 될 것을 생각하고 평창군주와 제자 장희백를 데리고 팔도유람을 떠나지만 잠행에는 소질이 없는지 즉각 사대부들에게 따라잡힌다. 해당 지역에 세워진 서원의 이름에서 수락산 인근에서 잡혔다는 걸 확인할 수 있고 동대문을 지나 현재의 의정부로 갔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아마 안헌은 동대문 - 의정부 - 포천 - 철원 - 평강군 - 회양 - 창도군을 거쳐서 금강산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23] 어째 팔도 유람인데 서원 순회 컨설팅이 되어가는 중.

이후 왕세손으로 책봉된 이홍위의 스승을 맡게 되었다. 이는 안자의 학맥을 이어 세손의 정통성을 더하기 위해 결정된 사안으로, 아직 8살 아이라 현대식 맞춤형 방식으로 교육하는 중. 다만, 안헌의 수업을 들은 이홍위가 확장주의적 유학을 주장하고, 세종대왕과 문종이 이에 눈이 벌게져서 '우리 홍위 장하다'라고 하는 모습을 보고 안헌이 드립을 치길 공격적 네오콘('Neo-Con'fucianism 신유학)이라고, 즉 3세대가 똑같다는 이야기.
한양에서 심왕 책봉 이전까지는 경복궁에 거주하였고 책봉 이후에는 평창군주와 안헌의 사저로 지어진 저택에 기거한다. 왕이 안헌을 오랫동안 궁에 붙들기 위해공사를 질질 끌기 위해 굉장히 공을 들인 저택이라고. 공사 기간은 4년, 허물었다는 기와집만 30채 이상으로 마당에 타일까지 깔린 대궐이다. 사람들에게는 심왕궁이라 불린다. 위치는 경복궁 동쪽이다.
일명 안자학(安子學)이라 불리는 자신의 학문에 대해 논박하는 글들이 1449년을 기점으로 쏟아지자 자신이 직접 일일이 대응하는 것도 문제가 많아서 해결책을 모색하던 중 훈정서원의 김종직이 타락한 안헌 안티팬 김시습과 싸움을 벌여 잡혀갔다가 온 것을 기화로 두 사람을 모두 불러들여 왜 싸웠는지, 어떤 근거로 주장을 펼쳤는지를 물어본 뒤 둘을 꼬드긴다. 그 과정이 대학원 진학을 권유하는 교수와 같아 독자들이 PTSD를 호소한 것은 덤. 결과적으로는 안헌이 판을 깔아주고 장희백을 김종직과 김시습에게 붙여주면서 논리가 정교해진 결과 장희백, 김종직, 김시습을 필두로 심왕학을 지지하고 보호하는 흐름이 생겨날 듯하다. 그러면서 1450년에 명나라의 설선이 찾아오자 '천하를 걱정하는 선비를 잃을 수 없다. 그대가 죽으면, 천하가 그대를 잃는 것이다'라고 하며 그가 조선에 남기를 권하였다. 다만 그 모습이 그대는 여기 있을 것이다라는 선언문이라 4대 성인급의 포스를 뿜어내고 있다.

3.4. 3년후(2부)

아들 출산 후 3년이 지났다. 그 사이 아들 하나 더 얻고, 또 한 명 더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 장남 안준을 세자로 책봉하고 교육 중인데, 애 진도가 꽤 빠름에도 본인이랑 비교되는 통에 제 과거를 후회하는 중.
심양의 시가지 건설을 완공하고, 학관은 22개까지 증축, 이홍위와 송온희, 후사히토, 서양 왕자 등 초기 학도들이 졸업시키거나 졸업기가 다가오는 등. 안정적인 심국과 학궁 운영에 성공했다. 그러나 조선 상왕이자 처조부인 세종이 병세가 악화되어 승하할 것 같아 종친들을 소집하며 조선으로 향하며 2부를 시작하게 된다.

세종의 부고에 왕진이 직접 와 정통제가 황권을 완벽하게 다지기 위해 위험한 도박을 하니, 대비책으로 심국과 조선에 병력 양성을 허가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에 조선 문종과 장영실의 도움을 받아 병법 학회를 창설. 연구기관으로 위장해 석박사(지휘관) 및 보조인 유사(병사), 그리고 심국의 문물을 전파하고 예법을 자문한다는 명목으로 이들을 모집할 찬화관(모집관 및 첩보관 및 외교관)을 구성한다.
본격적으로 병법 학회를 운용하던 중, 몽고십육기가 볼모 겸 생도로 데려온 서양 왕자들이 몽고인들의 행패에 대해 고발하고 참소하자, 이들을 달래고자 직접 몽고 카라코룸으로 향한다. 미리 몽고에게 연통을 보내 한바탕 쇼를 벌인 후, 은근히 섭정 아그바르진을 떠본다. 찬화관의 보고와 아그바르진의 태도에서 수상스러운 기색을 느끼자, 안헌은 그들이 몽고왕과 왕자들을 시해하고 찬탈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포착. 시해에 깊게 관여하지 못한 십육기장들을 포섭해 시해자들을 축출하고 세자 마르코르기스를 몽고왕으로 세우고 떠난다.

몽고 건으로 명으로 나아간 안헌은 주기진과 몽고의 행태에 관해 가볍게 잽을 주고 받지만, 이윽고 주기진이 실크로드에 형성된 도시국가들이 명에 조공을 바치지 않고 독자적으로 군다는 소식에 급발진하나, 안헌이 이를 겨우 달래 몽고가 스스로 처리하는 선에서 멈추게 한다.
명에서 돌아온 뒤, 단순히 병력으로는 명의 폭주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안헌은 다른 힘을 얻기 위해 일종의 국제 학술지 심경보를 출간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 시작으로 삼년상과 오여필의 드롭킥(...)을 화두로 시작한다. 그 결과 이순지의 초고밀도 집적 삼년상, 공동주택식 시묘살이, 유비쿼터스식 시묘살이(...) 등이 몽고와 여진, 전경련 등에 유행하게 된다. 한편, 조선에서는 서얼과 천출을 등용하겠다는 여론이 이는데, 반쯤 미치던 오여필에게 힌트를 줘 화두를 첩실 문제와 열부(烈夫)로 넘긴다.
문종이 세종의 삼년상이 끝날 무렵, 어머니 소헌왕후가 흥서하자 문종이 삼년상을 강행하지 못하도록 설득하고 결국 성공한다. 이에 영향을 받아 주기진도 대계를 멈추고 휴식기를 가지려하나, 하필이면 어떤 문사가 폐서인 주문규의 복권을 청하자 다시 폭주한다. 안헌은 이를 막으려 분투했으나, 결국 막지 못하고 주기진이 과로사하며, 그 대계를 위해 준비했던 대군이 그의 작은 아버지인 주첨선에게 넘어가 혈사가 벌어지게 된다.

안헌은 주문규를 황제로 옹립하고 주첨선과 대립한다.

4. 업적


[1] 현대에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1990년대 중후반생으로 추측된다.[2] 1437년 탈상 이후 세종대왕을 처음 알현한 후 획득[3] 1442년 소과에 응시하여 얻음[4] 1444년 대과에 응시한 후 얻음[5] 1445년 경혜공주와 결혼하면서 얻은 부마직첩[6] 1447년[7] 1448년 하반기로 추정, 원래 문관이라면 정헌대부. 실질적인 대신의 반열에 올랐다. 동시에 함길도 도절제사 후임은 이징옥이 되었다.[8] 명나라에서 에센을 토벌하기 위해 준비를 한 상황에서 후방의 조선을 이이제이로 견제하겠다는 정신 나간 발상으로 저지른 거라 모두들 어처구니없어했다. 야수의 심장으로 역관광각을 본 어떤 한 분 제외 어쨌든 1448년 시점에서 책봉된 것으로 보인다. 굳이 심왕이어야 했던 것은 원나라 때 심왕가와 고려왕가의 갈등을 보고 이거다 생각했던 듯하다. 그래서 이 당시 심왕이었던 주원장의 21번째 아들 주모의 서장자인 주길돈(혹은 주길순), 즉 2대 심왕을 다른 직위로 옮기고 주인공을 임명했다고 한다. 기존의 심왕은 봉지가 산서성 창즈시에 있어서(영락제 때 심양에 있던 걸 옮김) 옮길 필요가 없었으며 안헌 역시 영락제 이후 주씨 왕가들처럼 심왕부와 장원 하나를 받게 되었다.[9] 김종서가 지어주었다. 관례를 치렀으나 집안 어른이 없어서 자를 지어줄 사람이 없었으나 김종서가 지어주고 안헌이 기쁘게 받아들이며 해결. 하필 숙적이 될 인물이 이'유=수'양대군이라 잠시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했다.[10] 우인(愚人)으로도, 우인(友人)으로도 들을 수 있기에 선택한 듯.[11] 심국이 세워지고 조선과 명, 여진과 몽골의 교차점에 있는 심양을 중심으로 한 심국을 지키기 위해 학궁을 세웠다가 조선의 왕세손이 유학 오고 명나라 황태자가 유학올 위기에 처하게 되자 안헌이 스스로 자신의 목표가 이랬다고 자기 세뇌를 했다. 이에 대한 홍위씨의 말. "불쌍한 헌씨..."[12] 독자들은 박사였거나 박사 학위 수여 직전이 아니었겠느냐고 추정하는 중. 교수님의 연하장을 몇 백통씩 썼다는 걸 보면 교수가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애착노예 최소 대학원생은 확정. 복식부기, 대차대조표로 추정되는 것을 도입하면서 현대의 생활을 회상하는 걸 보면 랩실 간사였다고 한다. 최소 석사에 경력, 아니면 박사였다는 말이다. 거기에 아마 현대에서 살 때도 이틀에 한 번 자는 일정을 소화하는 걸 당연하게 여긴 듯하다. 척민심서를 쓸 때 이와 같은 일정을 소화해놓고서는 이징옥이 어이가 없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저 양반도 본인의 업무성과에 만족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확정. 모교에서 시간강사도 해봤다는 독백을 보면 박사 확정.[13] 세종대왕을 알현할 때 정신이 나가거나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닌데 레퍼런스를 따기 위해 따로 공부를 했다거나 하는 언급이 있었다. 최소 성리학과 서양 철학, 국어학, 고전문학, 교육학 관련 지식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평범한 국문학도였던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세종대왕과의 학술토론을 즐기는 것을 보면 이쪽도 만만치 않은 광인이다.[14] 결혼한 부인에게 기발이승일도설을 언급하는 걸 보면 공대 너드남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얼굴이 잘생겼다는 평과 달리 현실에서 여자와 연애해 본 적이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15] 고세대 학생들과 같이 술을 마시러 갔던 안암역과 보문역 사이의 지리가 훈정서원지소를 만들기 위해 방문한 장소와 흡사하다는 안헌의 기억이라거나 작중 서술에서 고세대 한국어 대사전은 모교에 대한 애정으로 기억에서 지웠다고 나오는 것을 보면 연려대 출신으로서 라이벌리가 있는 학교의 사전은 기억하지 않겠다는 느낌이다. 고세대 출신이라고 하는 것보다 연려대 출신으로서 하는 행동이라 가정한다면 좀 더 개연성이 있는 편. 그러면서 기억에서 소환하는 건 연려대 한국어사전. 사실 고세대 한국어 대사전의 모티브로 보이는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은 규범주의가 아니라 기술주의적 성향이 강하여 언어학계를 제외하면 선호되지 않는 데다가 분란의 시초(...)가 되는 일이 많다. 사전 자체는 잘 만들었지만(...). 문제는 이 한국어 사전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다니는 인간이 주인공이라는 것.[16] 연려대 출신이라는 말이 나오는 파리스나 《웰빙 마왕의 중세 교정기》의 백시원과는 동문이라는 말이 된다. 이후 2026년 6월 18일. 작가의 X(구 트위터)를 통해서 백시원의 동문임이 확정되었다. 정확하게는 작가가 김이상의 인형 앞에 표지를 가져다 놓고는 "얘는 누구죠?" 너네 사촌동생 대학 동문이야.라고 글을 올렸다.[17] 심국 학궁의 조선 기숙사의 상징 동물로 '호랑이'를 미는 이홍위에게 '가정맹어호'를 언급하면서 '수리'로 하라는 걸 보면 연려대 출신 맞다.[18] 외모는 빼어난 편인 듯, 작중에 자주 외모가 우아하다느니 잘생겼다는 이야기가 제법 나온다. 심지어는 아직 평창군주인 경혜공주도 몇 번 멀리서 봤다고 언급하면서 남편감으로 좋다고 이야기할 정도. 우겸의 말로는 얼굴형이 갸름하고 왼쪽 눈 아래 점이 있다고. 허조의 관찰에 의하면 허여스름한 얼굴에 눈가와 입술만 시뻘겋다고. 사실 이 특징은 백리투홍(白裏透紅)으로 부드럽고 귀티 나는 상으로, 총명하고 예술적 기질이 있으며 대인관계가 좋은 관상으로 보기도 한다. 조선 초기의 고위계층 남성답게 금귀고리를 하고 다닌다는 서술이 있다.[19] 물론 아이에게 고생할 일을 몰아주었다고 생각하고는 미안하다 생각하는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4군 6진의 위치상, 이를 안 하면 진짜 얼어죽거나 굶어죽을 상황이었다.[20] 이후 호랑이와 곰과 야인들이 돌아다니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고을을 펴야 하는 토관이 절망하여 부민들을 데리고 아오지로 도주한 것을 보면 이 삼년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안헌이 자기 식솔들에게 매번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도 그 고생을 하면서 주인공을 지켜주었기 때문일 것이다.[21] 아직 건국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국가라 왕족, 벌열, 사대부, 토호들이 갑작스런 상황에서 지지할 대상이 정확히 정해지지 않은 것이 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종친들은 출사하지 못하고 벌열들과 토호들은 사대부로 편입된 약 100년뒤였다면 계유정난은 성공하지 못했을 거라고. 작품 외적으로 보면 계유정난을 막는 것만이면 미래지식으로 해내기 너무 쉬워서 중간에 독자가 맥이 빠질 수 있기에 그것을 막고자 함이다.[22] 1445년에 결혼해서 1년 반을 함길도에 있었고, 최소 몇 개월은 걸리는 북경행을 다녀오기도 했으며 정음관에서 일할 때는 아예 거기에 자리 펴고 자버리는 만행도 저질렀다.[23] 실제로 이후 안헌에 의해 관동별곡에 기재된 순서대로 갔다고 언급된다.[24] 수제자인 장희백에게 준 책에 조선어를 규정짓는 음운론, 형태론이 들어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중국어 문법과 다른 조선어의 문법을 처음 규정한 책이므로 초기 조선어 언어학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사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작중에서 안헌이 아무렇지도 않게 짤막하게 언급하고 지나가는 것 중에 이런 것과 같은 함정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