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설리번 Anne Sullivan | |
본명 | 조애나 맨스필드 설리번 메이시 Johanna Mansfield Sullivan Macy |
출생 | 1866년 4월 14일 |
미국 매사추세츠 주 피딩힐스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사망 | 1936년 10월 20일 (향년 70세) |
미국 뉴욕 주 뉴욕 시 퀸스 포레스트힐스 | |
직업 | 특수교사 |
배우자 | 존 앨버트 메이시 (1905년 ~ 1914년, 이혼) |
묘소 | 워싱턴 국립 대성당 |
제자로 알려진 헬렌 켈러와 설리번 헬렌 켈러가 8세 때 찍은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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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특수교사.헬렌 켈러의 스승으로 알려진 인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특수교사라 할 수 있다.
2. 생애
어린 시절은 고아로 어린 동생과 고아원에서 지냈다. 그러다 열악한 고아원 환경 탓에 그를 일찌감치 병으로 잃고, 자신도 눈병으로 인해 시력이 크게 나빠졌다.1880년대 초반 퍼킨스 시각장애인 학교에 가서 영어 언어를 깨우친 미국 최초의 시청각장애인인 로라 브리지먼에게 브라유 점자를 배웠으며, 이후 시력 교정수술을 해서 시력을 회복한다.
그러다 21살 때 당시 7살이던 시청각 장애인 (시각 청각 중복 장애) 아동 헬렌 켈러를 가르치기 시작해[1] 이후 죽기 전까지 장장 50여 년 동안 헬렌을 지도하며 지금의 헬렌 켈러를 만들게 해주었다. 헬렌이 학교에 다닐 때는 가정교사 자격으로 수업에 동석했을 정도.
1903년에는 문학평론가인 존 앨버트 메이시와 결혼했으나 나이 및 성격 차이 때문에 1914년에 이혼했다.[2] 말년에는 건강이 나빠져 시력을 잃었고[3], 후임으로 온 폴리 톰슨에게 일을 맡기고 일선에서 물러난 뒤 1936년 사망했다.
헬렌은 설리번 선생 사후에 애니의 전기를 썼는데, 원고가 화재로 타는 바람에 사망 후 19년이나 지난 1955년에 출간되었다.
3. 평가
진정한 교육자의 표본으로 알려져 있다.하지만 앤 설리번 선생은 찬사만이 아니라 비난을 받는 부분도 있다. 비난의 주된 내용은 헬렌의 사회주의적 활동을 부정하고[4] 공연 등 헬렌 켈러를 통해 돈벌이를 했다는 점이다.
다만 공연을 통해 생계를 이었다는 부분은 앤 설리번이 자기가 없더라도 헬렌이 자립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었다고 보는 의견이 강세다. 또 어린 시절 악조건 속에서도 선생이 되고자 노력하였던 그녀였기에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가난함에 질려 이득을 취할 법했다는 의견도 있다. 사실 헬렌과 앤이 공연장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원래 부유했던 헬렌의 집안이 헬렌이 성인이 된 후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자 헬렌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중단된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헬렌이 번 돈이 착복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앤은 헬렌의 집이 망한 뒤로 수십 년간 급료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그 돈벌이라는 것도 어마어마한 금액을 번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헬렌의 공연수입은 3명이서[5] 생계를 꾸리기도 빠듯할 정도의 액수였다.
게다가 단순히 돈벌이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쳐 타인의 손발이 되는 삶을 산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수십년간의 헌신은 어지간한 인내심과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돈벌이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차라리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벌었을 것이다. 앤 설리번의 지인이 앤을 칭찬하기 위해서 "당신이 없으면 헬렌은 아무 것도 아니에요."라고 말하지만 되레 설리번은 "그럼 내가 헛되이 산 것이로군요."[6]라고 대답한 일화나, 설리번이 죽자 헬렌이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펑펑 울었다는 사실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결코 서로의 이익 때문에 엮인 관계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다만 헬렌 켈러가 공산주의자로서의 삶에선 가족을 비롯해 두 사제지간은 언쟁이 자주 오갔다고 한다. 하지만 정치 이념적인 문제를 제외하면 두 사람의 관계는 화목했던 편.
4. 기타
- 헬렌 켈러와 설리번 선생의 일화를 그린 유명한 영화로 연극 원작의 <미라클 워커(Miracle Worker)>(1962)가 있다. 아서 펜이 연출했다. 이 영화로 헬렌 켈러 역을 맡은 패티 듀크[7]는 16살의 나이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고, 설리반 선생 역을 맡은 앤 밴크로프트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 작품에서 무려 10분간 대사 없이 몸싸움 만으로 이루어진 장면은 굉장히 유명하다.
앤 설리번과 헬렌 켈러의 몸싸움 씬
설리번 선생이 헬렌 켈러에게 물 펌프를 통해 처음으로 ‘Water’를 깨닫게 만드는 그 유명한 장면도 역시 등장한다. 순정만화 유리가면에서도 이 영화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2000년에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이 영화를 리메이크했다.
- 2006년 4월 9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그녀의 삶에 대해서 방영한 적이 있다. 마치 흔한 장애아 한 명의 인생처럼 잔잔한 분위기로 진행하다가 최후반 결말부에서야 자신이 맡게 된 소녀에게 "안녕, 헬렌 켈러"라고 인사하면서 반전을 선사하는 스토리텔링이 좋은 평가를 받아 서프라이즈의 레전드 편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여기서 앤 설리번에게 브라유 점자를 가르친 시간제 특수교사 로라 브리지먼의 이름이 언급된다.
- 앤 설리번에게 시청각 장애 관련 교육을 한 사람은 로라 브리지먼인데, 로라에게 시청각 장애 교육을 한 사람이 새뮤얼 그리들리 하우이다. 그리고 하우에게 처음 시청각 장애 교육을 한 사람이 줄리아 브레이스이다. 즉, 줄리아 브레이스에서 새뮤얼 그리들리 하우, 하우에서 로라 브리지먼, 로라 브리지먼에서 앤 설리번, 앤 설리번에서 헬렌 켈러로 시청각장애 교육 사제계보가 이어지는 것이다.#
- 유리가면에서 주인공 기타지마 마야와 라이벌인 히메가와 아유미가 앤 설리번이 헬렌 켈러를 가르친 역경을 소재로 한 작중극 기적의 사람을 함께 연기한다.[8] 이 작품의 팬이라면 기적의 사람 대목에서 그녀의 고생을 간접 경험할 수 있었을듯. 여담으로 주인공과 라이벌의 연기를 받아주며 양 연극 모두를 캐리하는, 앤 설리번 역할의 배우는 다름 아닌 히메가와 아유미의 어머니.
- 앤 설리번이 헬렌 켈러에게 말을 가르쳤던 방법을 직접 알려주는 영상이 있다. 그녀와 헬렌 켈러의 육성을 들어볼 수 있으며 마지막 부분에 설리번의 도움으로 "I am not dumb now(나는 이제 벙어리가 아니다.)"라며 한 글자씩 말하는 헬렌 켈러의 모습이 인상깊다.
5. 참고자료
- 헬렌 켈러, <나의 스승 설리번> (1955). 한국판 2004년에 번역됨.
- 헬렌 켈러, 자서전
- 헬렌 켈러는 어떻게 교육을 받았는가 : 1887~1891년까지 설리번이 헬렌을 관찰한 기록.
- 카트야 페렌스. <헬렌 켈러 평전> (2001)
6. 둘러보기
시청각장애인 사제계보 특수교사-학생 관계 |
줄리아 브레이스 |
↓ |
새뮤얼 그리들리 하우 |
↓ |
로라 브리지먼 |
↓ |
앤 설리번 |
↓ |
헬렌 켈러 |
[1] 이때 두 사람을 소개해 준 사람이 그 유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다.[2] 메이시는 1877년생, 애니는 1866년생이다.[3] 원래 시력이 나빴는데 헬렌 뒷바라지를 하느라 더 나빠졌다.[4] 설리반 본인은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지만, 1905년 사회주의자였던 존 메이시와 결혼했다.[5] 헬렌, 애니, 톰슨 3인 기준.[6] 설리번은 헬렌이 자기 없이도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였다. 때문에 그런 말은 설리번 입장에서는 그다지 적절한 말이 아닌 셈이다.[7] 숀 애스틴의 어머니이다. 1946 - 2016.[8] 그러니까 같은 작품인데 나머지 배우와 내용은 다 똑같고 주인공 헬렌 켈러만 각각 기타지마 마야와 히메가와 아유미가 맡는 이른바 '(기타지마 마야 주연)기적의 사람'과 '(히메가와 아유미 주연)기적의 사람'이 별개로 상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