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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8 02:46:31

앤서니 살레르노

<colbgcolor=#000><colcolor=#fff> 앤서니 살레르노
Anthony Salerno
파일:팻 토니 살레르노2.jpg
출생 1911년 8월 15일
미국 뉴욕 주 뉴욕 시
사망 1992년 7월 27일 (향년 80세)
미국 미주리 주 스프링필드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직업 마피아
신체 168cm, 109kg

1. 개요2. 생애3. 여담4. 어록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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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뉴욕 시의 5대 마피아 조직 중 하나인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급 간부.

일명 뚱뚱한 토니(Fat Tony), 삼촌 토니(Uncle Tony)

세기의 재판(Case of Cases)이라 불린 1985년 마피아 위원회 재판의 수석 피고인이다.

2. 생애

뉴욕 시에서 태어난 앤서니 살레르노는 어려서부터 루치아노 패밀리(현 제노비스 패밀리)에 소속되어 도박, 숫자 도박, 고리대금, 보호세 갈취 등에 연루되다가 1948년에 행동대장(Caporegime)이 되었다.

1953년 어느 정보원에 의하면 앤서니 살레르노는 자신의 사업이 하루 평균 3만 달러 규모(현대로 환산하면 30만 달러)라고 시인했다.

1959년 프로권투업계 관계자들에게 일명 '미스터 엑스(Mr. X)'라는 암호명으로 불리며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앤서니 살레르노는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세계 헤비급 권투 타이틀전 플로이드 패터슨 vs 잉게마르 요한슨 경기의 프로모터 윌리엄 로젠손과 함께 흥행을 공모했다.[1] 훗날 로젠손은 경기 며칠 전 있었던 살레르노와의 담판 자리에서 실제로 자신의 머리에 권총이 겨누어져 있었다고 밝혔다. 경기 이후 비리가 드러난 로젠손은 3년간 프로모터 자격이 박탈되었고 챔피언 플로이드 패터슨의 트레이너 커스 다마토 역시 마피아와의 관계 등이 지적되며 자격증이 박탈되었다. 하지만 살레르노는 그 어떠한 법적인 제재도 받지 않았다.

앤서니 살레르노는 뉴욕 시 맨해튼에 위치한 고급 아파트, 마이애미 해변가에 위치한 주택, 뉴욕 주에 위치한 말 농장, 맨해튼 이스트 할렘에 위치한 팔마 보이즈 사교클럽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그는 1960년대까지 매년 5000만 달러의 총 수익을 올리는 뉴욕 시에서 가장 큰 숫자 도박판을 운영했다. 동시에 대부업자들의 대부업자로 여겨졌다.

1975년 부두목(Underboss)이 된 앤서니 살레르노는 수년 후 약 200명이 고용되어 1년에 최소 1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고리대금 및 도박 사업을 운영한 혐의로 기소된다. 이 수사 중 살레르노 본인이 8000만 달러(현대 기준 4억 6400만 달러)의 미지불된 대출금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육성이 도청기에 포착되었다. 기소된 살레르노는 전설적인 변호사 로이 콘을 선임했고 징역 6개월에 벌금 2만 5천 달러를 선고받았다.

6개월을 복역하고 출소한 앤서니 살레르노는 은퇴하는 필립 롬바르도(사진)의 뒤를 이을 제노비스 패밀리의 유력한 차기 두목(Boss) 후보였지만 뇌졸중을 앓는 등 건강 문제를 겪었던 탓에 그 뜻을 단념하고 1981년부터 패밀리의 거리 책임자(Street Boss)를 맡았다.

앤서니 살레르노를 감시하던 FBI 요원들은 문제가 생긴 이웃들이 그를 찾아와 이런저런 도움을 청하는 모습을 보고 살레르노를 공동체의 신으로 묘사했다. 그 모습은 마치 영화 대부에서 비토 콜레오네 딸의 결혼식 날 도움이 필요한 시민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 들락날락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수사기관에서는 이런 살레르노가 마피아 위원회에 의석을 가진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Boss)이라고 판단했지만 그가 실제 두목 빈센트 지간테의 앞잡이일 뿐이라는 것은 당시 뉴욕 암흑가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런 제노비스 패밀리의 교활한 전략은 수사기관뿐 아니라 언론도 완벽히 속였는데, 1986년 포춘지는 미국 최고의 조직폭력배 순위를 정하며 살레르노를 1위로 선정했다.[2]

이 시기 앤서니 살레르노는 패밀리 두목(Boss) 빈센트 지간테가 정신질환자 연기를 할 때 입는 옷차림(잠옷 위 목욕 가운을 걸친 차림)을 따라 한 뒤 사진을 찍어 몇몇 동료들에게 크리스마스카드로 보냈다. 실제로 그 사진을 본 마피아들은 누구를 풍자하는지 바로 알아챘기에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고 한다. 지간테는 상당히 비밀스러운 남자였고 그런 장난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살레르노에게 아무런 처벌을 내리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당시 패밀리의 고위 간부였던 살레르노는 지간테를 풍자하고도 무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살레르노가 두목을 존중하는 만큼 지간테 역시 살레르노를 존중했기 때문이다.

1985년 마피아 위원회 재판에 필요한 모든 수사를 마친 연방정부는 앤서니 살레르노가 빈센트 지간테의 프런트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Boss)으로 지목하여 기소했다.
연방법원을 떠나는 앤서니 살레르노
이 수사에는 살레르노의 오랜 오른팔이었던 빈센트 카파로의 증언이 결정적이었다. 이듬해 살레르노는 도합 징역 170년에 벌금 61만 6천 달러를 선고받았다. 그는 패밀리의 실제 두목이 아니었음에도 침묵의 계율 오메르타를 어기지 않았고 모든 걸 받아들였다.

수감된 앤서니 살레르노는 교도소에서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시가를 항상 물고 다녔다.

1992년 당뇨와 전립선암 의심 증상으로 건강이 악화된 그는 뇌졸중 합병증으로 미주리 주 스프링필드 연방교정의료센터에서 사망했다.

3. 여담

마이클 프란지스가 회고하는 앤서니 살레르노

4. 어록

들어봐 토니, 내가 아니었으면 마피아는 남아나지 않았어. 조직원들은 다 내가 키웠지. 이봐, 하나만 말할게. 놈들을 제거해, 쏴 죽여버리라고. 가만히 놔두면 안 돼. 구역질 나니까. 이제 자네 건강과 빌어먹을 모든 걸 위해 건배하세.
Listen Tony, if it wasn't for me, there wouldn't be no mob left. I made all the guys. Tony, one thing. get rid of them, shoot them, kill them. You Can't go on. It's disgusting. Well here's to your health and fuck everything.
뉴욕 루케시 패밀리 두목(Boss) 앤서니 코랄로와의 대화에서.
가서 이건 뉴욕 위원회의 결정이라고 전해. 그놈한테 지금 거물들을 상대하고 있다고 전하라고.
Tell Him it's The Commission from New York. Tell him he's dealing with the big boys now.
조직 내 갈등을 얘기하는 버팔로 패밀리 두목(Boss)과의 대화에서.

5. 관련 문서



[1] 살레르노와 함께 프로권투업계의 거물로 유명한 루케시 패밀리의 프랭키 카보는 '미스터 그레이(Mr. Gray)'라는 암호명으로 불렸다.[2] 이 순위에서 지간테는 19위에 불과했다. 18위로 선정된 전 콜롬보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마이클 프란지스는 훗날 "당시 국가에서 가장 강력한 마피아였던 지간테를 어떻게 하면 나보다 아래인 19위에 올릴 수 있지?"라고 말하며 포춘지의 순위를 어리석은 집계로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