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 산스크리트어: Yaśodharā
- 한역: 耶輸陀羅, 耶輸多羅 또는 지칭(持稱)·구칭(具稱)·지예(持譽)·명문(名聞)
이름의 뜻은 '소문이 널리 퍼졌다'는 뜻으로, 석가모니가 출가하기 전 왕자 시절에 맞이한 부인이다.[1]
아버지는 싯다르타에게는 외삼촌이 되는 콜리 성의 성주 선각왕(수프라붓다)인데 수프라붓다의 누이가 바로 마야 부인(마하마야)과 마하파자파티니까 야쇼다라는 싯다르타에게 외사촌이 된다. 일설에는 수프라붓다의 아들이 바로 석가모니를 죽이려 했던 데바닷타라고도 한다.
슈도다나 왕이 태자의 의향을 떠보려고 많은 여인들을 성 안으로 초대하고 태자에게 초대받은 여인들에게 보석이 든 꽃바구니를 나누어 주게 했는데 야쇼다라만은 받지 않고 빈손으로 들어왔고 아버지 수프라붓다가 가서 다시 받아오라고 권하자 "보석이라면 집에도 많은데 뭐하러 밖에 나가서 받아오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수프라붓다가 딸에게 슈도다나 왕이 그런 모임을 연 이유를 말해주었고 야쇼다라는 이때 다시 싯다르타에게 갈 생각을 했다.[2]
야쇼다라가 갔을 때는 이미 싯다르타는 가지고 있던 보석 바구니를 다 다른 여인에게 나누어주고 하나도 남은 것이 없었다. 야쇼다라는 "나보고 지금 빈손으로 가라는 건가요?"이라며 물었고, 싯다르타가 미안해하며 가락지를 빼서 주자 야쇼다라는 "내 가치가 겨우 이거밖에 안 되나요?"라고 대답했다. 이에 싯다르타가 자신이 차고 있던 모든 보석 장식을 벗어 야쇼다라에게 주려 하자 이를 사양하고 돌아가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我今何爲奪於太子嚴身之寶? 自當以諸寶飾奉上太子.
제가 이제 어찌 태자께서 차고 계시는 보물들을 벗기겠나이까? 제 스스로 온갖 장신구가 되어 태자께 바치고 싶습니다.
『방광대장엄경』 4권[3]
제가 이제 어찌 태자께서 차고 계시는 보물들을 벗기겠나이까? 제 스스로 온갖 장신구가 되어 태자께 바치고 싶습니다.
『방광대장엄경』 4권[3]
이 일이 있은 뒤에 슈도다나 왕은 정식으로 수프라붓다 왕에게 청혼을 했는데, 수프라붓다는 "우리 집의 법은 오랜 대(代)를 이어오면서부터 기능이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라야 사위를 삼았습니다. 깊숙한 궁전에서 나고 자란 태자가 어디 문무(文武)의 글과 산수·도화·전쟁의 기밀과 권모술수, 체력 등 세간의 여러 가지 재주를 다른 사람들처럼 제대로 배운 적이나 있습니까? 내 딸을 재주 없는 사람에게 줄 수는 없으니 마땅히 여러 석가들을 모아서 기능으로 선택하여 누구든지 가장 우수한 이에게 이 딸을 얻게 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슈도다나 왕이 석가족 사내 5백 명[4]을 불러 싯다르타와 재주를 겨루게 했다. 각술쟁혼(角術爭婚)이라고 하는 이 과정에서 싯다르타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인도에서는 여자 쪽에서 결혼할 때 여러 혼수를 가져가는 게 관례였는데, 야쇼다라는, 값진 보석 등의 혼수감을 준비할 것을 주위로부터 충고받자 이를 거부하고 "내 몸은 이 세상 무엇보다 값진 것이며, 내 몸이 곧 혼수다"고 하거나, 태자비로써 입궐하는 첫날에도 관례대로 얼굴을 베일로 가려야 함에도 야쇼다라는 "흠도 없는 얼굴 가릴 필요가 어디 있느냐"는 이유로 쌩얼을 그대로 드러내고 입궐했다고 한다.[6] 이러한 일화를 보면 꽤 성격 있었던 듯.[7]
싯다르타 태자와는 19살 때에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았으며[8] 출가 전에는 꿈으로 20가지 두려운 일을 보았는데,
- 천지가 진동하고
- 제석당이 부러지고
- 하늘의 별들이 떨어지고
- 일산이 찢어지고
- 머리가 깎이고
- 몸 위의 장식이 모두 떨어지고
- 몸이 추해지고
- 손과 발이 저절로 떨어지고
- 온몸이 나체로 드러나고
- 앉았던 상좌가 부서지고
- 침대의 네 다리가 부러지고
- 궁전의 지붕이 바람에 날려 가고
- 큰 나무가 바람에 뽑히고
-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 세상이 캄캄해지고
- 성이 무너지고
- 호법선신들이 통곡을 하고
- 카필라 국이 텅 비고
- 꽃과 숲이 모두 마르고
- 장사들이 모두 흩어져 떠나는
조선 초기에 그려진 석가출가도에 보면 위쪽에 성벽을 넘어 머리를 자르고 출가하는 싯다르타와 함께 아래쪽에 성안 사람들의 놀란 모습과, 오른쪽 아래에 바닥에 엎어져 통곡하는 여인의 모습이 보이는데, 싯다르타의 출가 소식을 듣고 통곡하는 야쇼다라를 그린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의 출가를 묘사하는 유성출가도에서는 이렇게 싯다르타의 출가와 대비시켜 야쇼다라의 통곡하는 모습을 함께 그리는 것이 일종의 '문법'으로써 정립되어 있다.
남편이 기어이 출가했다는 소식에[10] "이런 못난 지아비가 있단 말인가, 내가 아내로써 못한 것이 뭐가 있다고. 옛날에 부부가 함께 수행해서 깨달음을 얻은 선인들도 얼마나 많았는데, 처자를 데리고 간들 수도 생활에 아무 방해도 되지 않았다는데, 수행이 그토록 좋은 일이라면 부부끼리 같이 하면 둘 다 좋은 과보를 얻을 것을 자기 혼자만 수도해 좋은 과보를 얻겠다고 이렇게 나와 제 아들까지 두고 가버렸단 말인가."라고 남편을 원망하면서도 출가해 사문이 된 그와 똑같은 생활을 하겠다고 맹세하고, 침상에 누워 쉬지도 않고, 화장을 하거나 좋은 옷을 입지도 않았으며, 맛난 음식도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승사에서는 출가한 싯다르타가 거의 아무 것도 먹지 않는 고행[11]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궁인, 채녀들과 함께 몸에 장식한 영락을 풀고, 풀을 깔고 앉아서 하루에 깨 한 알, 쌀 한 톨, 콩 한 알을 먹었는데, 이때 야쇼다라는 임신 중이었으므로 임신한 몸에 무리가 갈 지경이었다. 며느리가 잘못될 것을 두려워한 시아버지 숫도다나 왕은 모든 궁인들에게 알려서 야쇼다라가 싯다르타의 고행 소식을 알지 못하도록 입단속을 시키고, 싯다르타가 음식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고 알렸다. 이후 싯다르타는 육체를 괴롭히는 고행이 아무 쓸모가 없다는 걸 알고 수자타의 우유죽을 공양받은 뒤 선정에 들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 야쇼다라는 드디어 음식을 먹었다고 전하고 있다.
아들 라후라의 탄생에 대해서도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승사를 비롯한 몇몇 불경에서 믿기 힘든 전승을 전하고 있는데, 그것은 라후라가 야쇼다라의 뱃속에서 6년을 있다가 태어났다는 것이다.[12] 당연히 6년이나 태중에 있다가 태어났다는 걸 믿을 수 없었던 숫도다나 왕은 라후라의 출생에 대해 의심했고, 이때 야쇼다라는 곧 라후라를 안고 예전 싯다르타가 왕자 시절에 목욕하던 연못가로 가서 큰 바위[13] 위에 라후라를 올려놓고 "이 아이가 보살(석가모니 부처)의 친아들이라면 연못에 던져도 가라앉지 않을 것이며, 보살의 친아들이 아니라면 물에 넣자마자 가라앉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그대로 라후라를 올린 돌을 연못에 집어던졌는데, 돌은 가라앉지도 않고 라후라를 실은 채 연못에 떠 있었다고 한다. 이를 직접 본 숫도다나 왕은 라후라가 자신의 친손자임을 확인하고 직접 연못 속으로 들어가 라후라를 안고 나왔으며[14] 이후 라후라는 왕손으로 인정받아 카필라바스투 궁중에서 자라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대지도론에 따르면 이후에도 야쇼다라가 낳은 라후라가 정말 싯다르타의 친아들이 맞느냐는 소문이 온 나라에 퍼져 있었고, 그것은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되어 카필라에 돌아올 때까지도 여전히 나돌았다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가 돌아온 뒤에 아버지 숫도다나 왕과 야쇼다라가 매일 석가모니 부처를 궁으로 초청하고 공양했는데, 이때 야쇼다라가 바리때에 환희환(歡喜丸)[15]을 담아 라후라에게 주면서 부처님께 갖다 드리라 했고, 석가모니 부처는 신통력으로 그 자리에 있던 5백 명이나 되는 아라한들의 모습을 모두 자신과 똑같이 보이게 해놓았지만, 그때 일곱 살이었던 라후라는 석가모니 부처와 같은 얼굴을 한 5백 명의 아라한 가운데 딱 한 명, 즉 진짜 석가모니 부처에게로 곧장 다가가 바쳤고, 이때 석가모니 부처가 신통력을 거두어 아라한들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가운데, 진짜 석가모니 부처의 바리때에만 환희환이 가득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은 라후라가 진짜 석가모니 부처의 아들임을 믿게 되었다고 한다.
최초의 비구니이기도 하다. 석가모니 부처가 성도하고 5년 뒤에 시계모 마하파자파티[16]를 비롯한 석가족의 여인 5백 명과 함께 출가하였으며, 시계모와 함께 비구니·사미니 교단을 이끌어 존경받았다고 전해진다.
석가모니 부처와 대립했던 데바닷타와도 악연이 있는데,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승사에는 석가모니 부처를 여러 차례 죽이려다 실패한 데바닷타가 석가모니 부처가 카필라바스투를 떠나 인간 세상을 돌아다니며 설법을 행하고 카필라바스투로 돌아오기 전, 데바닷타가 카필라바스투로 가서 석가족들에게 "사문 고타마가 이미 왕업(王業)을 버리고 출가하였으므로 내가 그의 자리를 계승하려고 왔다."며 자신을 카필라바스투의 왕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석가족은 내궁에 있는 야쇼다라하고 먼저 얘기하라고 했다. 이에 데바닷타가 높은 누각으로 올라가서 야쇼다라의 처소로 가서 합장하고 한쪽으로 서서 야쇼다라에게 자신의 아내가 되어달라고 청혼했는데 야쇼다라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서[17] 데바닷타에게 다가가 그의 합장한 손을 잡고 두 무릎을 꺾어 땅에 꿇게 했다.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데바닷타의 열 손가락에서 피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땅에 뒹굴면서 아프다고 비명 지르는 데바닷타에게 야쇼다라는 "내가 이렇게 잠깐 네 손 잡는 것도 못 견디면서 나를 가지겠다고? 이 세상에 내 남편의 자격은 오직 전륜성왕 뿐이야."라고 일갈했고, 데바닷타는 아무 말도 못하고 궁을 나와버렸다고 한다.[18]
2. 본생담
석가모니의 전생을 다루는 본생담(자타카)에는 석가모니와 야쇼다라 둘의 전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19] 석가모니 부처 즉 싯다르타가 자신과 결혼할 여자들에게 보석 바구니를 나누어 주다 마지막에 온 야쇼다라에게 아무 것도 줄 것이 없어서 자신이 가진 가락지, 그리고 자신이 차고 있던 모든 패물을 벗어 주었음에도 퇴짜를 놓는 앞의 일화에서 야쇼다라가 왜 싯다르타가 주려는 것에 모두 퇴짜를 놓았는지에 관련된 일화이다.석가모니가 과거 무마성(無魔城)이라는 도시에서 수메다(Sumedha, 선혜善慧)라는 이름의 바라문으로 수행하던 시절에, 연등불이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양하기 위해 일곱 송이의 연꽃을 구하려 했는데, 하필 연등불이 온다는 소문이 온 성내에 퍼져서 국왕은 물론이고 성내의 주민 모두가 너도 나도 연꽃을 사 가고 따 가져가 버려 남은 것이 없었다. 연꽃을 구하러 돌아다니던 수메다는 고삐(Gopi, 구리俱夷)라는 이름의 여성이 일곱 송이의 푸른 연꽃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금을 다 내주면서 그 연꽃을 제발 자신에게 팔아달라고 부탁했는데, 수메다 바라문을 보고 반한 고삐는 "나도 연등불에게 공양하기 위해 남겨둔 꽃이라서 팔 수 없다. 정 사고 싶다면 나랑 부부의 연을 맺어달라"고 조건을 제시했다. 수메다 바라문은 난 수행자라서 지금 당장 당신과 결혼할 수는 없지만, 미래세에 자신이 태어나고 살아갈 모든 생에서 당신과 부부가 될 것이다고 맹세하고, 꽃을 팔겠다는 고삐에게 "혹시라도 다음 생에서 부부의 연을 맺더라도 내가 언제든 수행을 위해 집을 떠나게 된다면, 그걸 반대하거나 붙잡지 말아달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고삐는 이에 일곱 송이 대신 다섯 송이만 팔겠다고 내 주었고, 나머지 두 송이는 "당신한테 맡길 테니까 당신이 나 대신 연등불께 공양해 달라"고 내어주었다.
이렇게 해서 연등불이 지나가는 길에 사람들이 좌우로 서서 연꽃을 뿌리는 산화공양을 행하는 와중에 수메다가 던진 푸른 연꽃만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연등불의 머리 위에 그대로 떠 있는 기적이 일어났으며, 또한 수메다는 연등불이 지나가는 길에 진흙탕이 있는 걸 보고 입었던 사슴가죽 옷을 벗어 깔고 그것도 부족하자 머리를 풀어 진흙 위를 덮고 “부처님, 진흙을 밟지 마시고 부디 제 머리털과 몸을 마치 마니보주의 판자로 된 다리를 밟는다 생각하시고 지나가십시오. 그러면 그것은 저에게 영원한 이익이 되고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연등불은 “장하다 수메다여! 그대의 보리심은 참으로 갸륵하구나. 이같이 지극한 공덕으로 그대는 오는 세상에 결정코 부처가 되리니, 그 이름을 석가모니라 부르리라.”라며 수메다가 장차 석가모니로써 성불할 것을 예고하였다고 한다.#
이때 수메다 바라문과 고삐 선녀가 환생한 것이 각각 싯다르타와 야쇼다라였으며, 불교의 결혼식인 화혼식(華婚式)의 유래가 되었다. 화혼식에서는 결혼하는 신혼부부가 부처 앞에서 꽃을 공양하는 절차가 있는데, 이때 신랑은 다섯 송이의 꽃을 들고 신부는 두 송이의 꽃을 들며, 신랑이 신부로부터 꽃을 건네받아 부처에게 올린다. 또한 이때 부처에게 올리는 고불문(告佛文)에서도 “두 사람은 부처님의 옛 고사를 본받아 위없는 도를 성취하기를 다짐하였고, 일곱 송이 꽃을 바쳐 영원한 인연을 약속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이 들어 간다.[20]
또한 본생경 및 불본행집경 권12 각술쟁혼품(捔術爭婚品)에는 이러한 일화도 있다. 바라나시 국의 어느 왕자가 폭군인 아버지에게 쫓겨났는데, 왕자의 아내도 따랐다. 왕자가 하루아침에 들판에 나앉은 처지에서 곤궁한 삶을 하루하루 꾸리느라 여간 버거운 것이 아니었는데, 어느 날 부부가 도마뱀[21] 한 마리를 잡아 껍질을 벗기고 삶던 것을 왕자비가 물 길으러 간 사이에 왕자가 다 먹어버렸고, 왕자비가 돌아와서 도마뱀 어쨌냐고 물으니 "되살아나 달아났다"고 거짓말을 했다. 당연히 왕자비는 믿지 않았고, 몇 년 뒤 폭군인 아버지가 죽고 왕자는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와 왕이 되어 왕비가 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에 이것저것 값진 선물을 해주었으나 왕비는 무엇을 받아도 기뻐하지 않았더라고.
또한 대지도론에는 석가모니 부처가 깨달음을 얻고 카필라로 돌아와 공양을 받을 때, 그가 앉아 있을 때에는 그를 빤히 쳐다보며 눈도 깜빡이지 않았고 그가 자리를 떠나는 것을 멍하니 쳐다 보다, 서운한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땅에 쓰러져 기절하는 바람에 곁의 사람들이 물을 뿌려서 깨웠다고 한다. 여전히 남편을 그리워하며 그가 출가했다고는 하지만 지금이라도 돌아와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어느 주술 잘하는 바라문을 데려다 그의 말대로 백 가지 맛을 내는 환희환을 지어서 약초에다 섞고 주문을 외워, 그것을 먹으면 마음이 곧 돌아서서 다시 오게 만드는 주술을 썼지만, 석가모니 부처는 정작 그 환희환을 다 먹고 아무 반응이 없이 평소처럼 축원을 해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 버렸다. 이때 석가모니 부처는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고 석가모니 부처에게 어떻게 그 술법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으셨느냐고 감탄하는 아라한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옛날 바라나시 국(姿羅捺國)의 어느 산중에 선인(仙人)이 있었는데, 생김새는 사람 같으나 머리에 뿔 하나가 있고 발은 사슴을 닮았다 해서 '일각선인(一角仙人)'이라고 불렸다. 18종의 경서에 통달했고 선정을 배우고 4무량심을 행하니, 곧 5신통을 얻었지만, 어느 날 산에 올라갔다가 큰 비를 만났고, 불편하던 발이 진흙탕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갖고 있던 물병을 깨뜨리고 발도 크게 다치게 되자, 빡친 나머지 물병에다 물을 담아 놓고는 주문을 외워 12년 동안 비가 내리지 못하게 주술을 걸어 버렸다.
비가 내리지를 않으니 농사가 될 리가 없어 백성들이 굶어 죽게 되었는데, 바라나시국의 왕이 신하들을 모아 의논하다 원인이 일각선인에게 있음을 알고 이러다가 다 죽는다고 두려워한 왕은 공고를 내려 "누구든지 그 선인의 신통을 잃고 내게 귀복하게 한다면 나라의 절반을 주겠다"고 선포했다. 공고를 본 창녀 샨타(扇陀)라는 여자가 여기에 응해 자신이 일각선인을 잡아오겠다고 나섰다.
샨타는 우선 5백 대의 수레를 구하여 5백 명의 미녀를 태우고, 사슴이 수레를 끌게 하고 거기에 갖가지 환희환을 실었다. 이 환희환에는 온갖 약초를 섞고 과일처럼 보이게 색을 입혔으며, 맛난 술을 색깔과 맛이 물처럼 보이도록 꾸몄다. 그리고는 나무껍질로 된 옷과 풀로 엮은 옷을 입고 숲 사이를 거닐면서 선인의 차림으로 선인의 암자 근처에다 초가집을 짓고 머물렀다.
어느 날 일각선인이 바깥에 나왔다가 이 초가집을 발견했고, 샨타와 여자들이 모두 나와서 맞이하며 아름다운 꽃과 좋은 향으로 선인에게 공양하며 선인을 그 초가집 안으로 들여 훌륭한 평상에 앉히고 맛난 술과 환희환을 대접했다. 이 선인은 한 번도 술이나 환희환을 먹어 본 적이 없었기에 “태어나서 이렇게 좋은 과일과 좋은 물은 처음 먹어 본다”고 기뻐했고, 여자들은 자신들이 선행을 베풀어 하늘로부터 이런 과일과 술을 받았으며, 선인에게 이곳에서 같이 살자고 권하고 “함께 목욕하자”라고 권했다. 여러 미녀들이 번갈아 문지르고 씻어 주는 데에 선인은 그만 넘어가서 그 여자들과 만리장성을 쌓았고(...) 신통력을 잃은 사이에 하늘에서는 드디어 비가 내렸다고 한다.
7일 밤낮을 이렇게 먹고 놀던 선인은 자신이 먹은 좋은 과일(환희환)과 맛있는 물(술)을 더 찾았는데, 샨타와 여인들은 마침 다 떨어졌다며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서 얻을 수 있다"고 꾀었고, 일각선인은 좋다고 따라 나섰다. 가는 도중에 바라나시 성과 멀지 않은 거리에 이르렀을 때 샨타는 길바닥에 드러누우면서 힘이 빠져서 못 가겠다고, 그러자 일각선인은 “그럼 내 목에 타라. 내가 그대를 목에 태우고 가겠다.”며 샨타를 무동태우기에 이른다. 계획대로 일각선인은 샨타를 목마태운 채로 샨타가 이끄는 대로 바라나시의 왕궁까지 제발로 걸어 들어가게 된다.
일각선인은 이후 바라나시 왕국의 대신이 되어 성에 머물렀는데, 성에 머무르며 부족함 없이 온갖 쾌락을 다 즐겼지만 며칠 안 되어 몸은 여위고 수척해져서 갈수록 고요한 산에서 수행하던 예전을 그리워하게 되었고, 이를 들은 바라나시 국왕은 이거 이대로 잡아 두다간 정말 죽겠다 싶어[22] 일각선인을 풀어 주었고, 산으로 돌아온 그는 다시 정진하여 오래지 않아 예전의 신통력을 도로 되찾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일각선인이 석가모니 부처, 샨타는 야쇼다라의 전생이었다는 것이다. 대지도론의 저자 용수(나가르주나)는 이 본생담을 전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細軟觸法, 能動仙人, 何況愚夫.
"곱고 부드러운 촉감은 능히 선인들의 마음까지도 요동시키거늘 하물며 어리석은 범부이겠는가."
『대지도론』 17권
"곱고 부드러운 촉감은 능히 선인들의 마음까지도 요동시키거늘 하물며 어리석은 범부이겠는가."
『대지도론』 17권
한 마디로 여자가 작정하고 맨살로 덤비면 남자는 못 당해낸다는 이야기.
3. 대중 매체에서
1964년작 한국 영화 석가모니에 등장했다.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및 이를 원작으로 하는 동명의 애니메이션 붓다에도 등장한다.
세인트☆영멘에서는 붓다가 자신과 자식을 두고 출가한 일로 정신공격을 받을 때마다 회상으로 등장하는데, 발렌타인 데이마다 남편 붓다에게 초콜릿을 강제적으로 주고 있다. 안 받으면 모공으로 집어넣어서라도 먹게 한다.
싯다르타(뮤지컬)에서 여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싯다르타는 출가 후 단식이라는 고행을 거듭하다 몸이 쇠약해졌는데, 시종이었던 찬나가 찾아와 야소다라가 만든 의복 및 아버지 정반왕이 만든 우유죽을 건넸다. 시즌 5에서 김봄 및 박수련이 야소다라를 맡았다.
판타지 소설 『시바의 권』(강한이)에서, 자가나트의 여동생 야소다라가 등장한다. 주인공 이한영은 이세계에서 이들을 만난다.
[1] 《불본행집경》권14나 《수행본기경》에는 싯다르타 태자는 야쇼다라를 포함해 세 명의 부인이 있었다고 적고 있다. 첫 번째 태자비는 샤카 족의 부호 단다파니의 딸 고피카로, 고피카로부터 몇 년 동안 자식을 얻지 못하자 다시 야쇼다라를 아내로 맞았으며, 야쇼다라에게 자식이 없자(나중에 야쇼다라가 자식을 낳기는 하지만) 샤카 족 사람 카라스셰마의 딸을 세 번째 부인으로 들였는데, 책에 따라서 이름이 마노라타(또는 마노다라) 또는 므리가자 등으로 되어 있는 데다 자세한 기록도 없다.[2]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승사에 보면 아버지로부터 보석 바구니를 나눠주는 모임에 대한 사연(태자비 선발)을 듣고 "그런 거라면 지금쯤 다른 여자를 간택해 뒀더라도 결국에는 제가 태자비가 되겠네요."라고 말하며 왕궁으로 곧장 나아가는 패기를 보인다.[3]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파승사에는 보석 바구니를 다른 여인들에게 다 주고 남은 것이 없던 싯다르타가 야쇼다라를 보고 손을 치켜들자, 야쇼다라가 싯다르타의 손에 끼워져 있던 가락지를 싯다르타의 자리까지 직접 올라가서 빼갖고 갔다고 한다.[4] 이 중에는 데바닷타도 있었다.[5] 데바닷타와의 대결만을 다룬 조금 자세한 이야기도 있다. 처음엔 활쏘기로 가리려 했으나 둘 다 과녁을 맞혀 씨름으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싯다르타의 손목 비틀기에 데바닷타가 피똥을 싸다 내동댕이쳐졌다고 한다.[6] 방광대장엄경(方廣大莊嚴經) 권제4[7] 일각에서는 이러한 야쇼다라의 모습을 일각에서는 페미니즘적인 요소를 들어 해석하기도 한다. #[8] 19세 때에 출가하려 했으나, 대를 이을 아들 하나만 낳아주고 가라는 부왕의 요청으로 10년을 더 머무르고 출가하였다고 한다. 당연히 부왕의 의도는 진짜로 아들만 낳고 나가라는 게 아니라 태자가 아들을 낳으면 마음이 바뀌어 출가를 포기하지 않겠는가 하는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반면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승사에는 싯다르타가 출가를 결심한 바로 그때 처음으로 야쇼다라와 합방하였다고 적고 있다.[9] 출처: 불본행집경[10] 과거현재인과경에는 찬다카가 가지고 온 싯다르타의 옷과 패물을 보고 그만 기절까지 했다고.[11] 처음에는 하루에 깨 한 알만 먹었는데 굶주림을 견딜 수가 없어서 멥쌀 한 톨, 구라(拘羅:곡물의 하나) 한 알, 필두(蓽豆) 하나, 감두(甘豆) 하나씩 먹다가 나중에는 하루에 콩 한 알씩만 먹었다고.[12]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승사에서는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고 붓다가 된 소식을 듣고 야쇼다라가 "이제 아이를 낳자"고 결정했다고 전한다. 아울러 야쇼다라가 라후라를 낳은 바로 그날 싯다르타의 삼촌인 곡반왕도 아들이 태어났는데, 이 아들이 아난다라고.[13] 싯다르타가 씨름하던 바위라고.[14] 라후라를 숫도다나 왕이 안아들자마자 돌은 그대로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고.[15] 사탕과자의 일종[16] 시부 정반왕의 정처이자 남편의 생모인 마야 부인의 동생으로, 언니가 석가모니를 낳고 산욕열로 죽자 형부의 후처가 되었다. 고로 석가모니에게는 이모이자 계모인 셈.[17] 이때 잠깐 야쇼다라에게 대발색건타(大鉢塞建拕)의 힘이 깃들었다고 한다.[18] 데바닷타의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석가족들도 멋대로 궁에 쳐들어온 데바닷타를 향해 "어차피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지옥에 떨어질 자'라고 수기한 인간 때문에 우리 손 더럽힐 필요 없다"고 비웃고 치웠다.[19] 다만 와타나베 쇼코의 <불타 석가모니>에는 이 이야기를 싯다르타와 야쇼다라 부부의 이야기가 아니라 싯다르타가 맞은 또 한 명의 아내인 고피카의 이야기라고 설명하고 있다.[20] 출처: 네이버 한국일생의례사전 불교화혼식 #[21] 불본행집경에는 자라로 나온다.[22] 어차피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을 걱정하다 일각선인의 주술 때문인 것을 알고 그를 잡아오게 한 것인데 비가 내린 이상 굳이 잡아둘 필요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