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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9-13 11:32:52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

파일: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jpg

1. 개요2. 내용3. 외부 링크4. 보물 제1130호5. 부산 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38호

1. 개요

藥師琉璃光如來本願功德經. 고려 숙종 7년(1102)에 흥왕사(興王寺) 교장도감(敎藏都監)에서 간행한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1055-1101)의 약사경을 훗날 조선 세조 5년(1459)에 왕의 명으로 복원한 불경.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에 보관된 것이 보물 제1130호로, 부산광역시 남구 백련사에 소장된 것이 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38호로 지정되었다.

2. 내용

흥왕사는 고려 전기의 고승 의천이 교장, 즉 속장경을 간행하던 곳으로,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은 이런 의천이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자 고려 숙종의 명에 따라 국사의 병이 치유되길 기원하며 대장경판을 사용하여 제작하였다.

이때 제작된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 원본은 훗날 대몽항쟁 시기 또는 여말선초의 혼란기 속에 다른 대장경들과 함께 완전히 불타 소실된 줄 알았다. 그러다 조선 세조 시기에 고려 시대 불경, 대장경 복원 사업 중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 한 부가 발견되면서 이를 간경도감에서 다시 복원한 것이다.

보물 제1130호로 지정된 장서각본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에는 흥왕사(興王寺)의 간기(刊記)가 붙어있으며, 대장경의 천자함(千字函)[1] 표시인 국(鞠)자가 새겨졌다. 이 천자함 표시는 대장경 간행 때만 한정되고 개별 경전 간행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이는 이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이 고려 전기 의천을 위해 만들어졌던 대장경판본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 세조 5년(1459) 어제발(御製跋: 왕의 명령에 의해 조성했다는 발문)이 붙어 있다.

부산 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38호로 지정된 백련사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은 장서각본과 동일한 인본이다.

고려 전기 대장경판각의 형태와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료이며, 또한 고려 시대 판본의 격을 갖추고 있는 자료로 고려 전기 우리 나라의 발전된 인쇄술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자료이다. 또한 조선 세조 시기 고전 문화 복원 사업에 대해서도 유추해볼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고려 불경을 조선 세조 때 복원한 것으로 정명경집해관중소, 대반열반경소, 천태사교의집해 등이 있다.

3. 외부 링크

4. 보물 제1130호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은 줄여서 ‘약사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질병의 치유를 기원하기 위한 경전이다. 이 약사경은 속장경을 간행하기 위해 1086년 흥왕사에 설치한 교장도감(敎藏都監)에서 펴낸 것 가운데 하나이다.

닥종이에 찍어낸 1권으로 크기는 세로 30㎝, 가로 16㎝이며, 제목 아래 대장경의 천자함(千字函 : 천자문의 순서에 따라 책의 번호를 매기는 방법) 표시인 ‘국(鞠)’자가 적혀 있다. 대각국사 의천이 속장경을 간행하던 중 숙종 6년(1101년)에 돌연 병이 생겨 그해 10월에 입적하게 되는데, 그의 병이 치유되길 기원하기 위해 대장경판에 근거하여 간행에 착수하였고 숙종 7년(1102년)에 완성하였다.

이 책은 새김의 솜씨·글자획·종이질 등이 고려 시대의 목판을 보고 다시 새긴 것을 조선 시대에 찍어낸 여러 판본들과 비슷한 것으로 보아 조선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5. 부산 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38호

흔히『약사경(藥師經)』으로 불리는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은 동방 세계에 유리광국(琉璃光國)이라는 불국토를 건설하고, 12가지 큰 서원(誓願)을 세워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할 것을 서원함으로서, 중생들의 질병을 치유하고 모든 재난을 제거하며 수명을 연장하는 약사여래의 공덕을 설파하고 있는 경전이다.

백련사 소장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은 당나라 현장이 번역한 것으로, 고려 초조본 대장경판으로 간행된 것으로 모두 16장이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4장 7행의 13번째 글자 ‘경(竟)’자와 12장 22행의 12번째 글자 ‘경(敬)’자의 마지막 획이 탈락되어 있는데, 이는 중국 송나라 태조의 조부의 휘(諱)를 피한 결획(缺劃)이다. 표죽(褾竹)이나 뒤에 축을 달아 권자본 형식으로 장정을 갖추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불상의 복장용으로 인출된 것으로 보인다.

백련사 소장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은 초쇄본은 아니지만 인쇄 정도가 대체로 선명하고 보관 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이 책과 동일한 인본(印本)이 하나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또 하나는 경상남도 지정 유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초조본 대장경의 희귀성이라는 점에서 볼 때 서지학 및 대장경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1] 대장경을 보관하는 함의 순서를 천자문에 따라 붙인 것[2] 종로도서관 소장본은 서문의 찬자와 찬술 시점을 표시하지 않았으나, 1853년(철종 4)에 간행된 목판본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을 참조하면 1853년 여름 최성환(崔星煥)이 지은 것을 그대로 옮겨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아울러 1853년 목판본과 대조해보면 서문 본문의 내용이 일치하므로 필사의 저본은 1853년 목판본임을 알 수 있다. 즉 종로도서관본은 양주 석고사(昔高寺)에서 대곡(大谷)이 1853년 간본을 바탕으로 전사(傳寫)한 책으로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