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이 조선 양반들을 비판하기 위해 쓴 소설이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몰락한 양반과 그의 신분을 사려는 돈 많은 상민의 이야기를 다룬다.2. 줄거리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 신분제는 크게 동요되었다. 거듭되는 환국과 격렬한 당쟁 같은 정치적 혼란 속에 몰락한 양반들이 늘어났고 반대로 의병으로 참가해 공을 인정받거나 돈을 많이 벌어서 공명첩을 산[1] 상민들도 늘어났던 것이다.[2]그런 와중, 어느 고을에는 관가에서 쌀을 빌어 와 근근히 입에 풀칠만 하던 몰락 양반과 돈이 많은 부농이 이웃해 살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풍족했던 부자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상민이라는 이유 하나로 늘 양반에게 굽신거리며 천대받아야 하는 처지였다. 반면 양반은 가난한 와중에도 양반이라는 체면치레 탓에 다른 일을 하지 않고 글만 읽다 보니 관가에서 빌린 쌀을 도저히 갚지 못해 감옥에 갇힐 처지가 되었다. 이에 그의 아내가 '양반은 한 푼어치도 안 되는 구려'라고 한탄할 정도였다.
이를 알게 된 부자는 가족을 다 불러앉히고 '옆집 양반이 가난하여 관가에서 빌어 온 쌀을 아직 갚지 못하고 있으니, 이 참에 내가 양반 행세를 해야겠다'라고 말한 뒤 옆집으로 가 빚을 갚아주는 대가로 양반 신분을 샀다.
관가의 수령은 양반이 빚을 다 갚자 놀라서 그를 찾아갔으나 그가 자신을 '소인'이라 칭하며 굽신대는 것을 보고 연유를 물었다. 앞뒤 사정을 듣고 전말을 알게 된 수령은 부자의 행동에 감탄하면서도 사사로이 신분을 매매했으니 송사의 꼬투리가 될 수 있다며 자신이 이를 인정하는 증서를 만들어 주기로 하였다.
수령은 상민이 된 양반과 양반이 된 부자,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모두 모아놓고 증서를 만들어 부자에게 양반이 지켜야 할 규율을 알려주기 시작했는데 다음과 같다.
그러나 양반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으니, 이것을 어겨서는 안 되느니라. 양반은 절대로 천한 일을 해서는 안 되며, 옛사람의 아름다운 일을 본받아 뜻을 고상하게 세워야 하느니라. 새벽 네 시가 되면 일어나 이부자리를 잘 정돈한 다음 등불을 밝히고 꿇어앉는데, 앉을 때는 정신을 맑게 가다듬어 눈으로 코끝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두 발꿈치는 가지런히 한데 모아 엉덩이를 괴어야 하며, 그 자세로 꼿꼿이 앉아 『동래박의』[3]를 얼음 위에 박 밀 듯이 술술 외워야 하느니라.
(후략)
이를 듣고 있던 부자는 너무 당연하거나 시시콜콜한 규율만 계속 늘어 놓는 것에 진절머리가 나 ‘좀 더 그럴듯한 건 없냐’는 식의 물음을 던졌고, 이를 들은 수령은 다음과 같이 문서를 고쳐 주었다.(후략)
"하늘이 민(民)을 낳을 때 민을 넷으로 구분했다. 사민(四民)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이 사(士)이니 이것이 곧 양반이다. 양반의 이익은 막대하니 농사도 안 짓고 장사도 않고 약간 문사(文史)를 섭렵해 가지고 크게는 문과(文科) 급제요, 작게는 진사(進士)가 되는 것이다. 문과의 홍패(紅牌)는 길이 2자 남짓한 것이지만 백물이 구비되어 있어 그야말로 돈자루인 것이다. 진사가 나이 서른에 처음 관직에 나가더라도 오히려 이름 있는 음관(蔭官)이 되고, 잘 되면 남행(南行)으로 큰 고을을 맡게 되어, 귀밑이 일산(日傘)의 바람에 희어지고, 배가 요령 소리에 커지며, 방에는 기생이 귀고리로 치장하고, 뜰에 곡식으로 학(鶴)을 기른다. 궁한 양반이 시골에 묻혀 있어도 무단(武斷)을 하여 이웃의 소를 끌어다 먼저 자기 땅을 갈고 마을의 일꾼을 잡아다 자기 논의 김을 맨들 누가 감히 나를 괄시하랴. 너희들 코에 잿물을 들이붓고 머리 끄덩을 희희 돌리고 수염을 낚아채더라도 누구 감히 원망하지 못할 것이다."
이를 듣고 경악한 부자는 읽는 것을 중지시키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그냥 양반으로 안 살겠다며 도망쳤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양반' 이라는 말을 절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첫 번째 규율은 체면과 겉치레만 중시하는 양반의 허례허식을 풍자하는 대목이고, 수령이 새로 써준 규율은 부당한 특권을 누리고 평민에게 횡포를 부리는 부도덕한 모습을 풍자하는 대목이다. 판본에 따라서는 코믹성을 강조하기 위해 전자만 넣는 경우가 있고[4] 교훈성을 강조하기 위해 후자만 넣는 경우가 있다.[5]
3. 그 외
톰과 제리에서도 양반전과 비슷한 에피소드로 '백만장자가 된 톰'이 있다. 이 에피소드에서 톰이 사망한 친척으로부터 백만 달러라는 거액의 돈을[6] 상속받아 부자가 되었다. 하지만 유언장에 적힌 상속 조건으로 ‘제리를 포함한 모든 동물을 괴롭히지 말라’는 조항 때문에 부유하게 살면서도 제리의 등쌀에 시달리면서도 손도 대지 못하는 처지가 되자, 한참을 고민하다 스스로 모든 유산의 상속을 포기하고 제리를 마구 때리면서 이게 더 행복하다며 외치는 것으로 에피소드는 마무리된다 . 이를 본 팬들은 가만히 있으면 막대한 부를 톰과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을 괜히 나대다가 톰의 신경만 건드려서 재산도 날아가고 톰에게 얻어터지는 제리가 멍청하다며 신명나게 디스한다.영상"돈이 없어 몰락한 귀족"과 "돈으로 신분을 사는 상민"의 구도는 비단 조선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조금 뒤의 이야기지만 빅토리아 시대 대영제국에서는 미국의 신흥 부자와 가난한 영국 귀족 간의 정략결혼이 많았다.[7] 이는 다른 유럽 제국에서도 흔히 있었던 일이지만, 아무래도 같은 영미권인데다 권력과 금력이 절묘한 균형을 이뤘던 영향[8]으로 보인다.
4. 관련문서
[1] 공명첩을 사면 명목상 양반이 되지만, 실제로 양반 신분을 샀다 하더라도 같은 고을의 다른 양반들이 그것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고을로 가 진짜 양반 행세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2] 농업 기술이 발전하고 상업과 수공업이 발달하면서 부를 축적한 평민들이 늘어나 하부구조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상부구조로서의 신분제가 동요하게 되었다.[3] 東萊博議, 과거 시험을 위한 수험서의 일종이다.[4] 이때 부자는 양반 하다 일찍 죽겠다며 도망을 친다.[5] 이때는 "나보고 도둑놈이 되라는 것이냐!? 이 썩어빠진 놈들아!!"라고 일갈하는 판본도 있다.[6] 이 작품은 1944년작이며, 지금도 백만 달러는 큰 돈인데 2023년 기준으로 환산하면 1,700만 달러(한화 232억원)에 이르는 엄청난 거금이다.[7] 실제 명문가로 유명한 윈스턴 처칠의 부친은 공작가 방계 출신이지만 어머니 제니 제롬은 월 가의 금융업자의 딸이었다.[8] 프랑스는 금력이 승리하며 공화정을 이끌었고, 독일은 금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융커들이 여전히 권력과 자금을 동시에 거머쥔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