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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23 17:40:35

에리크 닐손

파일:Erik Nilsson.png
이름 에리크 헨뤼 식스텐 닐손
Erik Henry Sixten Nilsson
출생 1916년 8월 6일
사망 1995년 9월 9일 (향년 79세)
국적
[[스웨덴|]][[틀:국기|]][[틀:국기|]]
출신지 림함
포지션 레프트 풀백
신체조건 182cm | 77kg
소속팀 말뫼 FF (1934~1953)
국가대표 57경기 (스웨덴 / 1938~1952)

1. 개요2. 생애
2.1. 선수 생활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4. 수상
4.1. 선수
4.1.1. 클럽4.1.2. 국가대표4.1.3.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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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웨덴의 전 축구 선수.

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어린 시절 고향팀 림함스 IF(Limhamns IF)에서 축구를 배운 닐손은 1934년 말뫼 FF로 이적했고 1953년 은퇴할 때까지 모든 커리어를 말뫼에서 보냈다. 1950년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AC 밀란이 닐손에게 영입 제의를 보냈지만 닐손은 제의를 거절[2]하고 말뫼에 남았다.[3]

닐손은 알스벤스칸스벤스카 쿠펜에서 각각 5회씩 우승을 차지했다.

2.1.2. 국가대표

닐손은 14년간 블로굴트에서 뛰면서 1938년 월드컵, 1950년 월드컵, 1948년 올림픽, 1952년 올림픽 등 많은 국제 대회에 참가했다.

닐손이 처음 참가한 국제 축구 대회는 1938년 월드컵이었는데 이때의 닐손은 올레 셸그렌(Olle Källgren)의 후보 선수였다. 그는 3, 4위전에서 처음 월드컵 무대에 나갔지만 스웨덴은 브라질에 2대4로 패해 4위에 만족해야 했다.

닐손 역시 다른 축구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대표팀 커리어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1948년 올림픽으로 다시 국제 무대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대회에서 스웨덴은 유고슬라비아를 3대1로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는데 이는 현재까지 스웨덴 축구 역사상 유일한 올림픽 금메달이다.[4]

1948년 올림픽 이후 닐손은 스웨덴 대표팀의 주장이 되었고 1952년에 대표팀에서 은퇴할 때까지 계속 주장직을 역임했다.

12년 만에 1950년 월드컵에 출전한 닐손은 제2차 세계 대전 전후의 월드컵에 모두 출전하게 되었는데 이는 스위스프레디 비켈과 함께 단 두 명만이 가진 기록이다. 닐손은 이 대회 최고급 수비수 중 하나로 평가되었으며 스웨덴은 지난 대회보다 더 나은 3위의 성적을 거뒀다.

1952년 올림픽 4강에서 디펜딩 챔피언 스웨덴은 헝가리에 0대6으로 셧아웃당하며 세계 축구계에 충격을 선사했다.[5] 그래도 스웨덴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서독을 2대0으로 누르고 3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1952년 스웨덴의 마지막 A매치였던 10월 16일 이탈리아전이 닐손의 마지막 A매치였고 그는 57경기째 출전으로 대표팀 경력을 마감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닐손은 36세까지 대표팀 주장으로 활약할 정도로 꾸준하고 기복이 없는 선수였다. 그는 빠르고 단단하며 위치 선정 능력과 전술적인 시야도 갖춘 수비수였다. 가끔은 팔꿈치를 써서라도 공격수를 막아야 직성이 풀리는 면도 있었지만 그의 현역 시절엔 스웨덴에서 가장 믿을 만한 수비수였다.

스웨덴의 역대 최고급 수비수로도 꼽힐 수 있는 선수이다.

4. 수상

4.1. 선수

4.1.1. 클럽[6]

4.1.2. 국가대표

4.1.3. 개인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2] 닐손의 나이가 당시 34세에 가까워서 밀란이 제의를 철회했다는 이야기도 있다.[3] 닐손은 스웨덴에 남았지만 이 무렵에 많은 스웨덴 선수들이 이렇게 세리에 A에 진출했다. 대표적인 선수로는 1949년에 AC 밀란으로 한번에 영입된 그레 트리오, 인테르렌나르트 스코글룬드, 이들보다 조금 뒷세대인 ACF 피오렌티나쿠르트 함린 등이 있다.[4] 스웨덴은 이 대회 8강에서 대한민국을 12대0으로 무참히 깨버렸는데 닐손 역시 스웨덴의 선발 수비수로 뛰었다.[5] 이 팀이 바로 1956년 헝가리 혁명 이전까지 6년여간 세계 축구계를 주름잡던 매직 마자르가 되는 팀이다.[6] 에릭손은 말뫼 FF원 클럽 플레이어이므로 팀 이름 기입은 생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