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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0 18:49:31

여로보암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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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45px-Jeroboam_I.jpg
이름 여로보암 1세 Jeroboam I
출생 미상[1]
이스라엘 왕국
사망 기원전 909년경
디르사
출신 에프라임 지파
재위년도 기원전 931년~기원전 910년
약 22년
국적 북이스라엘 왕국
아버지 느밧
자녀 나답
이전 국왕 솔로몬
다음 국왕 나답

1. 개요2. 즉위 이전의 삶3. 이스라엘 국왕4. 여로보암의 길

[clearfix]

1. 개요

Jeroboam I

북이스라엘 왕국의 초대 국왕, 여로보암 왕조의 시조. 한국 천주교 성경에서는 예로보암이라고 하는데, 원음에 그나마 가까운 표기는 '야로브암'이다.

2. 즉위 이전의 삶

열왕기에 따르면 여로보암은 솔로몬 치세 때 공사장 감독으로 능력 있는 관리였다. 솔로몬의 신임을 얻어 요셉 자손들의 일을 감독하는 직책을 맡기도 했다. 어느 날 선지자 아히야(Ahiah)[2]가 자신의 옷을 12조각으로 나누어 10조각을 주면서 여로보암이 왕이 될 것이라 예언했다.[3]
그러면서 여로보암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열 조각을 맡으십시오. 이것은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하시는 말씀이십니다. '잘 들어라. 내가 솔로몬의 손 안에 있는 이 나라를 찢어 너에게 열 지파를 주리라. 그러나 한 지파만은 솔로몬에게 주어 내 종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내가 지정한 성읍인 예루살렘에서 다스리게 하리라. 솔로몬은 나를 버리고 시돈 사람이 섬기는 여신 아스도렛과 모압의 신 그모스, 암몬 사람의 신 밀곰을 예배하였다. 그는 그의 아비 다윗과는 달리, 내가 보여준 길을 가지 않았고 내 앞에서 바르게 살지도 않았으며 내가 준 규정과 법령을 지키지도 아니하였다. 그러나 내가 뽑아 세운 나의 종 다윗이 내 명령과 규정을 지킨 것을 생각하여 솔로몬 생전에는 이 나라를 조금도 빼앗지 아니하리라. 내가 장차 그의 아들 대에 가서 이 나라를 쪼개어 열 지파를 너에게 맡길 것이다. 솔로몬의 아들에게는 한 지파를 주리라. 그리하여 나의 종 다윗으로 하여금 내가 선택하여 나의 것으로 지정한 성읍인 예루살렘에서 그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항상 내 앞에서 비추게 하리라. 내가 너의 원대로[4] 너를 택하여 통치자로 임명하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운다. 나의 종 다윗처럼 내가 명하는 바를 모두 지키고 내가 지시하는 길을 가며 내 규정과 명령을 지켜 내 앞에서 바르게 살아라. 그리하면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또한 다윗의 왕조를 든든히 세워주었듯이 너의 왕조도 든든히 세워 너에게 이스라엘을 맡기리라. 이렇게 하여 다윗의 자손의 머리를 숙이게 해주리라.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렇게 두어두지는 아니하리라.'"
열왕기상 11:31~11:39(공동번역성서)

12조각의 옷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나타내고 여로보암은 그중 10지파를 다스리는 왕이 된다는 뜻이었다.[5] 또한, 여로보암이 하느님을 진정으로 믿고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여로보암을 위해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그에게 주겠다고도 했다. 이 예언의 내용을 들은 솔로몬이 여로보암을 죽이려 하자, 위협을 느낀 여로보암은 이집트로 도망치게 된다.

솔로몬 사후 여로보암은 이스라엘로 귀국한다. 백성들은 그를 내세워 선왕의 치세 때 과세와 노역이 과했으니 이를 경감해 줄 것을 새로 왕위에 오른 르호보암에게 청한다. 르호보암은 3일의 말미를 약속하고 신하들의 조언을 듣기 위해 자리를 떴다.

3. 이스라엘 국왕

그러나 르호보암은 자신과 친하던 젊은 귀족층의 말만 듣고 되려 솔로몬보다 더 무거운 멍에를 백성들에게 지울 것이라고 선포한다.[6] 결국 분노가 폭발한 백성들은 르호보암이 보낸 역꾼의 감독 아도람을 돌로 쳐 죽였고, 유다와 베냐민을 제외한 10지파가 독립을 선언,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한 여로보암은 초반에는 에프라임 산지의 스켐을 수도로 정하다가 얼마 후 프누엘을 거쳐 티르차로 천도하였다

이후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들자 그의 아내는 여로보암의 충고에 따라 변장을 하고 그가 왕이 될 것을 예언했던 선지자 아히야를 찾아갔다. 그러나 아히야는 늙어 눈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의 아내를 단번에 알아보았으며,[7] 여로보암 가문이 악을 행하고 야훼를 배신하여 노엽게 하였으므로, 여로보암 왕가에 속한 남자는 모두 죽임을 당하고 그 집이 멸절될 것을 예언했다.
아히야는 그 여자가 방문 앞으로 다가서는 발소리를 듣고 이렇게 말하였다.
"여로보암의 아내여, 들어오시오. 어찌하여 이렇게 다른 여자인 양 가장하고 오셨소? 나는 당신에게 가슴 아픈 말을 전해야겠소. 여로보암에게 가서 말하시오.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백성 가운데서 뽑아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영도자로 임명했으며 다윗의 왕가에서 나라를 갈라 너에게 주었다. 그러나 너는 나의 종 다윗만하지 못하였다. 다윗은 나의 계명을 준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마음을 다하여 나를 따랐으며 만사를 내 마음에 꼭 들도록 올바르게 처리하였다. 그러나 너는 선왕들보다 더 큰 악을 저질렀을 뿐 아니라[8] 우상들을 쇠붙이로 부어 만들었고 다른 신을 섬겼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를 배반하여 내 속을 썩였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여로보암 왕가에 재난을 내리리라. 여로보암 가문에 속한 남자는 자유인이든 종이든 가리지 아니하고 모두 씨도 남기지 아니하리라.[9] 그리하여 사람들이 똥을 치듯이 나는 여로보암 가문을 이 이스라엘에서 남김없이 쓸어버리리라. 무릇 여로보암 가문에 속한 사람이 성 안에서 죽으면 그 시체를 개가 뜯어먹을 것이요, 성 밖에서 죽으면 공중의 새가 쪼아먹으리라. 야훼의 말이니 어김이 없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시오. 당신이 궁에 도착하면 곧 왕자는 죽을 것이오. 그래도 그 아이만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슬퍼하며 매장할 터인데 여로보암 가문에서 그만이 무덤에 묻힐 것이오. 그래도 그만은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보시기에 옳게 살았기 때문이오. 그리고 나서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새 왕을 뽑으시어 여로보암 가문을 멸종시킬 것입니다. 야훼께서 이스라엘을 치실 때는 마치 급류에 휩쓸린 갈대처럼 흔들리게 하실 것이오. 야훼께서 그들 선조들에게 주신 이 좋은 땅에서 송두리째 뽑아 내쫓으실 것이고, 유프라테스 강 저편으로 흩어버리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목신을 만들어 야훼의 분노를 샀기 때문이오. 여로보암 왕은 자기 혼자만이 이 죄를 지은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까지도 같은 죄를 짓게 하였습니다. 야훼께서는 이 여로보암의 죄 때문에 이스라엘을 버리실 것이오."[10]
열왕기상 14:6~14:16(공동번역성서)

요약하자면 '내가 다윗의 유산을 네게 주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해주었는데 네가 똑같이 나를 배신하여 우상을 찍어내고 나를 배신했으니 너와 네 가문뿐 아니라 너에게 속한 모든 사람이 처참히 파멸할 것이며, 오직 네 아들만이 내가 보기에 선한 일을 했으니 평안한 죽음을 맞을 것이다' 라는 멸문지화의 선고였다. 여로보암의 아내가 티르차로 돌아갔을 때, 아히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아내가 성 문에 들어서는 순간 아이는 죽고 말았다.

말년에는 유다 왕국과 분쟁이 이어졌고, 유다의 아비얌 왕과의 전쟁에 나섰다가 크게 패한 후 죽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에도 여로보암은 그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지 아니하고 오히려 일반 백성 가운데서 자기 마음대로 산당의 사제를 뽑아 임명하였다. 여로보암 왕가는 이런 일로 죄를 얻어 결국 지상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열왕기상 13:33~13:34(공동번역성서)

이 언급대로 여로보암 왕조는 오래가지 못하고 얼마 후 바아사에게 찬탈당한다.

4. 여로보암의 길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 중심지인 예루살렘 성전은 유다 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에 있었고 이는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북 이스라엘에 불리했다. 여로보암은 백성들의 마음이 르호보암에게 향할 것을 경계하여 북 이스라엘 왕국의 남단 도시인 벧엘, 북단 도시인 단에 따로 신당을 세우고 금으로 만든 송아지를 숭배하게 했다. 또한 제사장과 종교 절기를 자신의 마음대로 정했다. 야훼를 믿는 신앙 대신 금송아지 숭배를 받아들인 것은[11] 선지자들의 반발을 샀다.
이스라엘 왕은 궁리 끝에 금송아지 둘을 만들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이렇게 선포하였다.
"예루살렘에 제사하러 올라가기란 번거로운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너희를 이집트에서 구해 주신 신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금송아지 하나는 베델에, 다른 하나는 단에 두었다. 그런데 이 일이 죄가 되었다.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예배하러 베델과 단에 갔다. 왕은 또한 언덕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지파가 아닌 일반 백성 가운데서 사제를 임명하였다. 여로보암은 금송아지에게 제물을 드리기 위하여 유다에서 하고 있는 것과 같이 순례절을 제팔월 십오일로 정하고 자기가 세운 베델의 산당에서 사제들을 임명하였다. 왕은 자기의 마음대로 정한 제팔월 십오일이 되면 자기가 세운 베델의 제단에 올라갔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킬 순례절을 이렇게 제정하고 친히 그 제단에 분향제를 드리러 올라갔던 것이다.
열왕기상12:28~12:33(공동번역성서)

제멋대로 정한 종교 절기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데, 마침 예언자가 와서 그 제단을 향해 이렇게 소리치면서 말한다.
마침 여로보암이 제단 옆에 서서 분향하려고 하는데 하느님의 사람 하나가 야훼의 말씀을 전할 임무를 띠고 유다로부터 와서 베델에 도착하였다. 하느님의 사람이 제단을 바라보며 야훼께 받은 말씀을 외치기 시작하였다. "오, 제단아, 제단아, 야훼가 말한다. 다윗의 가문에서 요시야[12]란 한 아들이 태어나리니, 두고 보아라,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의 사제들을 죽여 그 뼈를 네 위에서 태우리라."
그는 그 말이 야훼께 받은 것임을 보여주는 한 표적이 주어졌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이 제단이 산산조각이 나고 그 위에 있는 잿가루가 쏟아지리라."
열왕기상 13:1~13:3(공동번역성서)

이 말을 외친 후 여로보암이 그를 붙잡으라고 명령하며 손을 내밀었는데 그만 손이 굳어 오므라지지 않았고 말한 그대로 제단이 산산조각나고 잿가루가 쏟아졌다. 이에 여로보암이 그 사람에게 제발 하느님께 간청해서 내 손 좀 회복하게 해 달라고 굽실거렸다. 이후 그 사람이 하느님에게 청하여 손이 회복되자 여로보암이 그를 자기 집에 초대하려고 했지만 그는 주님이 안 된다고 했다며 거절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에 늙은 예언자의 거짓말에 속아서 주님이 한 말을 어기게 되었고 결국 그 벌로 사자에 물려 죽었고 조상들의 곁에 묻히지 못하게 되었다고.

이렇게 제단이 무너질 것이다라는 예언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의 이러한 종교 정책은 야훼 성전을 보유한 유다의 종교적 우위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물론, 종교 권력을 왕권 휘하에 두어 왕권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었기에, 여로보암 왕조가 단절된 뒤에도 북왕국은 여로보암의 길을 그대로 따랐다. 기존의 야훼 신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바람에 이후 북 이스라엘의 고질적인 사회적 분열을 지속적으로 야기하였다. 이와 같은 북 이스라엘의 분열상은 본격적으로 세속정치를 표방하여 경제적인 부를 축적하고 당대 최대 무역국인 페니키아바알 신앙을 도입한 아합 이후 사회적 양극화로까지 이어져 더욱 극심해진다.

여로보암 이후에 즉위한 북왕국의 왕들 중, 금송아지 숭배를 추진한 왕들에 대해 열왕기는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다'고 평가했다. 그렇다고 금송아지를 숭배하지 않은 북왕국의 다른 왕들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아니었는데, 이들은 한술 더 떠서 아합처럼 이방 신인 바알을 숭배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비난이 덜한 왕은 북왕국에서 바알 신앙을 혁파하고 아합이 속한 오므리 왕조를 없앤 예후와 북왕국의 마지막 왕인 호세아[13]인데 그 예후도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다고 비난받는다. 호세아는 열왕기에서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지만 선왕들보다는 나았다고 적혀 있다.

북왕국이 멸망한 뒤, 벧엘(베델)의 제단은 요시야 왕의 명령으로 파괴된다.

[1] 열왕기에는 츠레다라고 되어 있다.[2] 판관 엘리의 증손자로도 알려져 있다. 북이스라엘 3대 왕인 바아사의 아버지 이름도 아히야인데 동일인물인지는 의문. 다만 아히야가 정말 엘리의 후손이라면 동일인물이 아닐 것이다. 엘리는 대제사장이었고 제사장은 레위 지파 출신이 맡는데 바아사는 레위 지파 출신이 아니다.[3] 시기상 솔로몬이 아내를 쓸어담으면서 외국에서 들어온 각종 우상들이 판치던 때였다.[4] 이 부분을 보면 알겠지만 여로보암 1세는 단순히 어느날 갑자기 선택받은게 아니라 원래부터 야심이 있던 사람이라는 의미고 종교적 색채만 제거하고 보면 결국 다윗 왕가에 대한 불만을 자신의 민심으로 등에 업고 왕이 된거다. 아래에서 솔로몬이 죽자마자 여로보암 1세가 10지파의 대표자 격으로 나서서 요구사항을 전하는데 종교적으로 보면 야훼가 세운 분이니 그럴 수 있지 싶겠지만 이들은 이미 여로보암 1세의 금송아지 숭배를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만큼 야훼에게서 단단히 돌아선 상태라 그보다는 이미 진작부터 민심을 사 두었고 그래서 가능했다고 보는게 좋을 것이다.[5] 참고로 여로보암에게 주겠다는 10지파와 솔로몬에게 남겨주겠다는 1지파를 더하면 11지파로서 나머지 한 지파는 뭐냐고 할 수 있는데 그건 벤야민 지파로 워낙 소수라서 존재감도 적고 사실상 유다 지파에 동화된 상태였다. 참고로 10지파에 포함되긴 하지만 시므온 지파도 거의 유다 지파에 통합되었는데 애초에 이들의 땅은 유다 지파에 둘러싸여있어서 필연적인 일이었다.[6] 대하 10:15을 보면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한 것은 하느님께서 아히야로 여로보암에게 10지파를 다스리는 왕이 될 거라고 예언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였다.[7] 헬렌 켈러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도 교육을 통해 주변을 인지하는 경우도 있으나, 아히야의 경우 이런 이유보다는 야훼의 권능이 직접적으로 묘사되는 구약 성서 특성상 계시를 통해 진작부터 알아차렸을 가능성이 높다. 마침 미리 야훼가 언질을 주었다고는 되어 있다.[8] 말년에 큰 죄를 지어 하느님의 진노를 산 다윗, 솔로몬은 물론 아예 하느님에게 버림받은 사울도 신실하게 하느님을 섬기며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앙적인 면에서는 처음부터 우상 숭배에 타락한 여로보암보다는 사정이 나은 셈.[9] 이후 아합 왕가의 멸망을 예고했을 때도 이런 식으로 말했다. 개가 뜯어먹느니 하는 얘기도 그렇고... 다만 아합 왕가쪽은 그나마 개에게 뜯어먹힌건 이세벨 뿐이었다.아합이 여로보암보다도 나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왜 여로보암보다 덜 처참했지는 의문[10] 만약에 백성들이 르호보암에게 반발했듯 여로보암에게도 반발했다면 우상숭배가 판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도 여로보암의 우상숭배에 반발하지 않았고 그래서 아히야도 여로보암이나 이스라엘이나 죄를 짓기는 같다고 말한 것이다. 물론 백성들은 출애굽기 때부터 꾸준히 우상숭배를 저질렀지만...[11] 엄밀히 말하면 야훼 신앙 자체는 유지했다. 다만 기존의 야훼 신앙을 유지한 유다 왕국과는 달리 금송아지를 야훼라고 믿는 변질된 신앙을 믿게 된 것일 뿐.[12] 요시야가 태어나려면 200년 가까이 더 기다려야 했음을 감안하면 열왕기의 종교적인 면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13] 예언자 호세아와 다른 사람으로, 우연이지만 활동 시기가 겹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