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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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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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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2.1. 연세대학교 심벌2.2. 상징 동물 - 독수리
2.2.1. 독수리 엠블럼2.2.2. 백양로 독수리상
2.3. 교호2.4. 교가2.5. 교색2.6. 학위복
3. 연세체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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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연세대학교의 여러 상징들을 정리한 문서.

2. 상세

2.1. 연세대학교 심벌

연혁
연희전문학교[1]연희대학교연세대학교
1915~19461946~19561957~19601960~1970 1970~1971 1971~1990[2]1990~20012001~20152015~현재
파일:연희전문 교표.png파일:연희대학.jpg파일:연세대 구형로고4.jpg 파일:연세대 구형 로고2.jpg파일:연세대학교 문장(1990~2001).svg파일:연세대학교 문장(2001~2015).svg파일:연세대학교 문장.svg
파일:연세UI연대기.png
방패 속의 'ㅇ'는 원만무애한 이상의 세계를 목표로 한 인격의 완성을 뜻하며, 'ㅅ'은 튼튼한 기초를 닦아 박학의 기반 위에 전공을 세우려는 학문적 태도를 나타낸다. 또한 'ㅇ'은 하늘(天)을 뜻하고 'ㅡ'은 땅(地)을 의미하며, 'ㅅ'은 사람(人)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는 연세대학교 교육의 대본(大本)인 천,지,인(天,地,人)의 삼재(三才)를 상징하고 있다. 아울러 '책'은 진리를, '횃불'은 자유를 의미하고, '방패'는 이러한 실천의 두 이념을 수호함을 뜻한다. 'ㅇ', 'ㅅ'이 들어간 이 방패 로고는 1960년부터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김동길 명예교수에 따르면, 양주동 교수가 연세대에서 교수로 있던 시절 이 로고를 디자인했다고 한다.

'ㅇ', 'ㅅ' 방패 로고는 몇 차례 개정되었는데, 2015년에 기존 로고를 약간 리뉴얼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을 꼽자면 '책'과 '횃불'이 커지고 외곽 테두리가 사라졌으며 명/채도가 더 밝아져서 기존의 군청색에서 밝은 파랑색에 가까운 색으로 바뀌었다. 연세대 각 건물 및 시설에는 아직 로고가 교체 안된 경우가 꽤 많지만 모양도 꽤 다르고 한/영 글자 위치도 달랐던 2001년 로고와는 달리, 전체적인 형상은 유지하되 시인성을 개선한 정도라 옛날 로고가 떡하니 붙어있어도 옛날 로고인지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애초에 15학번 이전 학번들은 뭐가 다른지 모른다...

'ㅇ', 'ㅅ' 방패 로고가 사용되기 전에는 태극 문양이 들어간 방패 문양을 사용했는데, 이 태극 문양 방패 로고는 1946년 연희대학교로 승격되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태극 문양은 개신교 대학이지만 일제시대 때 국학 연구의 산실이며, 민족 독립을 위해 힘썼던 대학임을 보여주는 로고이다. 연세대의 오래된 건물[3]에는 아직도 태극+방패 문양이 건물 외곽에 새겨져 있다. 통합 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도 별도의 문양이 있었지만, 1957년 통합 연세대학교가 출범한 후에는 기존 문양에서 연'희'를 연'세'로 바꾸어 1960년까지 사용했다.

2.2. 상징 동물 - 독수리

연세대학교의 상징 동물은 독수리연세빵[4]다.

연세춘추 기사에 따르면 1960년 고려대와의 정기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처음 독수리가 연세대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총학생회장이던 이공대학 채희철 씨가 연세춘추 편집국장 박희도 씨(철학과 62년 졸업)에게 고려대의 호랑이에 대응해 연세대의 상징으로 내세울 만한 것을 물었고, 박 편집국장은 호랑이가 이길 수 없는 유일한 동물로 독수리를 떠올렸다.[5] 사자가 낫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시간에 쫓겨 일단 독수리로 하고 다시 의논하기로 했다. 그런데 독수리를 한 번 사용하고 나니 석간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버려, 결국 독수리로 굳어졌다고 한다.[6] 연세춘추 기사

연희전문학교 시절에는 따로 상징 동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고양이'라며 조롱받는 고려대학교호랑이와 함께 연고전에서 툭하면 '병아리', '참새'로 비유되기도 한다.

2.2.1. 독수리 엠블럼

파일:연세대학교 독수리문장.svg
아카라카

2001년 학교 본부에서 공식적으로 독수리를 형상화한 공식 엠블럼을 제정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엠블럼은 이후 2014년 독수리 몸통 부위 색상이 갈색에서 연회색으로 바뀌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은 연세대 과잠으로 과잠 뒷면에 어지간하면 붙어있는 상징이다. 학과에 따라서는 개성있게 독수리 문양을 바꾸기도 한다.

이외에도 2005년 창립 120주년 기념으로 비상하는 형상의 독수리 이미지의 엠블럼이 추가 제정되었고, 이후 5년마다 주년 기념 엠블렘을 추가로 제작하여 함께 사용하고 있다.

2.2.2. 백양로 독수리상

파일:연세대학교 독수리상.jpg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독수리상

백양로에 세워진 독수리상은 학생들 스스로 700여만원의 기금을 모아 건립하여 창립 85주년 개교 기념일인 1970년 5월 9일에 제막식을 가졌다.

독수리상의 후면에는 총학생회의 건립취지문이, 네 귀퉁이에는 연세의 역사를 지켜오고 앞으로도 한국의 지성, 나아가서는 세계의 진리와 자유수호에 이바지할 연세인의 상이 조각되어 있다.

2011년 겨울동안 일시적으로 철거하여 세척 및 보수 공사를 진행하고 2012년 봄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백양로 프로젝트 공사로 인해 2013년 9월에 독수리상은 공대 뒤쪽의 야구장으로 임시 이전되었다. 현재 독수리상이 있던 자리는 공사 펜스로 인해 출입할 수 없도록 되어 있고, 공사가 완료된 뒤 원래 위치로 돌아올 예정이다. 2015년 8월 18일 독수리상은 돌아왔다. 그러나 원래 위치는 아니고 중앙도서관 쪽으로 수십미터 이전하여 재설치되었다. 방학마다 독수리가 목욕을 가기도 한다 출퇴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2.3. 교호

교호는 다음과 같다.
아카라카칭! 아카라카쵸! 아카라카칭칭! 쵸쵸쵸!
랄랄라 시스붐바 연세선수 라플라 헤이 연세 야!

첫 부분이 박자에 비해 글자수가 많아서인지 21세기 들어서는 교호를 제창할 때는 아래와 같이 줄여 사용하는데, 이제는 풀버전은 아예 응원OT에서도 가르쳐주지 않고 줄인 교호만 쓰이고 있다.
아라칭! 아라쵸! 아라칭칭쵸쵸쵸!
랄랄라 시스붐바 연세선수 라플라 헤이 연세 야!

그래서 2013년 '아카라카를 온누리에'에서 웃지못할 사태가 있었다. 선배 게스트로 박진영[7]이 나와 공연을 하고 "아카라카!!"를 외쳤는데, 그 다음에 박진영은 "아카라카칭! 아카라카쵸! 아카라카칭칭! 쵸쵸쵸!"를 외쳤지만 12, 13학번이 대다수이던 학생들은 "아라칭! 아라쵸! 아라칭칭쵸쵸쵸!"를 외치는 바람에 박자가 어긋나버렸다. 그래도 "랄랄라 시스붐바"에 가서는 다시 박자 맞춰서 교호제창을 마쳤다.[8] 2017년 '아카라카를 온누리에' 행사에서도 가수 아이유가 교호를 알고 있다며 "아카라카칭! 아카라카쵸!"를 외쳤다. 당시 관람하던 학생들 중에서는 그 교호를 아는 사람들이 더 적었기 때문에 아이유가 실수를 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정정을 해주었다. 이후 대나무숲 등에 "아라칭! 아라쵸!"가 "아카라카칭! 아카라카쵸!"을 줄인 것이라는 제보가 올라왔다.

Akaraka의 뜻에는 온갖 썰이 있다. 아카라카의 어원으로는 고대 그리스에서 승리를 외칠 때 불렀다는 구호를 그대로 따왔다는 이야기와, 독수리가 푸드덕거리며 날아올라 갈 때 들리는 소리와 비슷해서 따왔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정설로 확인된 것은 없다. 그냥 어감 좋은대로 막 지었다고도 한다. 이 교호에서 따온 아카라카는 연세대 대동제 행사 중 하나인 응원단 축제의 별칭이기도 하다. 정식 명칭은 연세대학교 응원제.

죄다 민간어원이지만. 음악과 즐거움 아래란 뜻으로 악하락하(樂下樂下)에서 따왔다는 얘기도 있고 로마의 어느 장군이 아카라카라고 소리질렀다는 썰도 있다.[9] 또한 연세대학교의 상징인 독수리 울음소리를 의성어로 표현한 것이라는 썰도 있다. 구글에 Akaraka 및 일본어 アカラカ로 검색하면 거의 대부분 연세대다.

나이지리아 남동부 원주민인 이보 족(Igbo People) 언어인 이보 어에 있는 Akaraka의 뜻은 Destiny, 즉 '운명'이다.[10] 예문으로는 fortune teller의 의미를 가진 "onye na-ahụ akaraka", 직역하면 '운명을 보는 사람'이다.

하지만 '운명'을 뜻하는 이 말을 끌어쓴건지, 아니면 정말 위에서 나오는 설이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인지 미지수다.

1925년 연희전문(연세대의 전신)과 보성전문(고려대의 전신)의 첫 축구대회 당시부터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단, 당대 기록은 아니다. 고려대의 교호인 '입실렌티'는 1923년 백상규가 지은 것으로 확인되지만, 연세대학교의 '아카라카'는 문헌적으로 고증되지 않는다. 그나마 교호 풀버전에 사용된 어휘를 통해 성립연도를 추측해보자면, '라라라(rah-rah-rah)'의 경우는 1870년대부터 프린스턴 대학교 응원단의 응원구호로 쓰인 용례가 확인되며, hurrah의 축약형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시스붐바(sis-boom-bah)'의 경우 1867년 미국에서 역시 프린스턴 대학교의 응원구호로 처음으로 용례가 확인되며, 폭죽이 날아가 터지고 함성이 터지는 것을 묘사한 응원구호라고 한다.[11]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가 1870년대 후반 미국 동부에서 대학 생활을 했음을 고려하면, 소싯적 미국 대학가에서 응원하던 구호들을 참고해 새로운 의성어를 덧대서[12][13] 경신학당(연희전문의 전신) 학생들에게 가르쳐줬을 개연성이 있다. 그렇다면 아카라카의 성립연도를 적어도 1915~1916년까지 올려잡을 수도 있다.

신문지상에 '아카라카'라는 응원구호가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1964년이었다. 연세대 학생들이 외친 응원구호로 인용되고 있는데, 아무리 늦어도 이때부터는 해당 구호가 연세대생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배재학당(배재고등학교)의 교호와 같은데, 배재고등학교의 졸업생들 대부분이 연세대에 진학한 것과, 두 학교의 설립에 큰 역할을 한 감리교 선교사 헨리 G. 아펜젤러의 영향으로 보인다.

2.4. 교가

파일:연세대학교 교가 악보.jpg

2.5. 교색

파일:연세대노천극장아카라카.jpg
신촌캠퍼스 아카라카 행사
연세대의 상징 색은 로열 블루(Royal Blue)[14]이다.

2.6. 학위복

파일:연세학위복.jpg
연세대학교 학위복

학사 학위복이 2017년 2월 학위수여식부터 바뀌게 된다. 2014년 제1차 의식위원회에서 학위복 교체를 의결한 바 있었으나 여러 사유로 인해 이행되지 못하다가 2016년 3월 제 1차 의식위원회에서 재의결되고 7월에 제 2차 의식위원회에서 최종 선정하였다. 졸업가운의 디자인은 생활과학대 의류환경학과 천종숙 교수가 담당했고 그 비용은 유진그룹 회장인 유경선 씨가 전액 부담했다.

예전의 학사 학위복은 검은색 가운에 사각모를 착용했고 대부분 대학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던 디자인이었으나 새롭게 바뀐 졸업가운은 연세대의 정신을 반영한 디자인으로 제작됐다. 우선 졸업가운에는 연세대학교의 상징인 독수리 형상, 로얄블루색, 교표 등을 넣어 이전과 차별성을 강조했다. 모자 또한 타 대학에서 천편일률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각모에서 팔각 벨벳 소재의 모자로 변경됐다.

3. 연세체

학교 전용 글씨체도 있다. 링크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4. 관련 문서



[1] 61년 만에 귀환한 연희전문 교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로고. 한자로 연(延)전(專)이라고 쓰여있다. 아래는 기독교 미션스쿨이었던 연희전문답게 십자가가 놓여있다.[2] 아래 로고는 1973년 연고전 사진에서 캡쳐한 것이다[3] 대표적으로 현재 본관으로 쓰이는 언더우드관을 비롯해서 스팀슨관, 아펜젤러관 등[4] 수리를 독수리라고 잘못 부르는 오류 때문으로, 사실 표현되는 모습은 참수리, 흰머리수리, 흰꼬리수리, 검독수리 등 다양한 수리과 조류의 모양새를 보이지만 정작 독수리의 형태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독수리의 경우 원래 禿(대머리 독)자로, 수리과 대머리수리의 다른 이름이다.[5] 현실성을 굳이 따지자면, 독수리가 호랑이의 공격으로부터 계속 몸을 피해 날아다니기 때문에 무승부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호랑이가 이길 수 없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지지도 않는 셈.[6] 과거에는 아래와 같은 도 존재했지만 결과적으로 부정확한 내용이다. 썰에 따르면 고려대학교'의 상징인 호랑이에 대항할 상징 축생을 상정하는 안건이 1980년대 연고전 직전의 중앙운영위원회에서 의결되었는데, 원래는 호랑이와 라이벌인 사자가 가장 유력했다고 한다. 이 시기 중운위원이었던 연세춘추 편집장이 거나하게 취한 상태로 '독수리는 호랑이를 잡아먹는다'라는 말도 안되는 발언을 했는데, 총학생회장 이하 중운위원들이 모두 같이 마시고 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나도 그런 말 들어본 적 있어'라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결국 그 날의 중운위에서는 연세대학교의 상징을 독수리로 정하고, 그 해 연고전에 쓸 응원곡으로 호랑이를 잡아먹는 독수리(?!)란 노래까지 정했다. 문제는 다음 날 벌어졌다. 이 사실을 취한 채로 언론에 그대로 발표해서 진짜 동아일보에 연세대학교의 상징이 독수리가 되었다는 기사가 나가버린 것(...). 중운위원들은 나중에 술이 깬 상태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에 머리를 싸매다가, '호랑이는 하늘을 침범할 수 없고 그 하늘의 제왕인 독수리'라는 식으로 무마했다고. 전직 연세춘추 간부가 과거 내부 자료를 찾아보다 발굴한 사실이라고 전해졌었다.[7] 지질학과 90학번이다.[8] 같은 사건은 박진영이 행사에 초청받는 매번 반복되는 듯 하다. 08년 아카라카때도 박진영이 게스트로 왔는데, 똑같은 상황이 있었다. 본인이 저 구호를 외치며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9] 로마의 개선식에서는 부하들이 'Io triumphe'라고 소리쳤던 전통은 있지만 나머지 장군이 이랬다는 설은 검증되지 않았다.[10] 이곳과 이곳, 이곳을 참조.[11] 나중에 이 구호는 locomotive cheer(증기기관차 응원구호)라는 이름으로 정착한다.[12] 칭(ching)은 영어에서 금속성 악기가 부딪치는 의성어로 사용된다.[13] 벅스 버니가 나오는 1943년 애니메이션인 "Super-Rabbit"에서는 대학가 응원구호를 패러디한 "bric-a-brac-a firecrack-a, sis-boom-bah, Bugs Bunny, Bugs Bunny, rah rah rah"라는 응원구호가 나오는데, 이 구호의 모티브가 된 대학 응원구호가 있었다면 앞의 bric-a-brac-a firecracka에서 "ac-a"와 "rack-a"를 가져왔을 가능성은 있으나, 확실한 물증이 없다.[14] 밝은 감청색(#4169E1) ~ 짙은 군청색(#002366)에 해당하는 색으로, 프랑스 황실의 상징색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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