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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2 00:14:19

영어는 이런 거 안 되잖아


1. 개요2. 정말 영어는 안 되는가?3. 한국어는 이런 거 안 되잖아4. 스페인어는 이런 거 좀 되잖아5. 라틴어는 이런 거 잘 되잖아
영어는 이런 거 안 되잖아
영어는 안 되잖아 이런 거
이런 거 영어는 안 되잖아
이런 거 안 되잖아 영어는
안 되잖아 이런 거 영어는
안 되잖아 영어는 이런 거

1. 개요

인터넷 등지에서 돌아다니는 개드립의 일종. 교착어한국어의 어순이 고립어영어보다 자유롭다는 점을 이용한 드립이다. <한국어의 우수성.jpg> 등으로 제목을 단 게시물이 올라올 경우 게시물의 내용 자체가 이거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댓글로 십중팔구 이 드립이 달린다. '한글의 우수성'이란 제목으로 올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 드립은 문자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 한글이 아니라 한국어의 특징이다. 배리에이션으로 부사인 '씨X'을 넣어서 "씨X 영어는 이런 거 안 되잖아."라고 쓰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쓸 경우 가능한 경우는 [math(4!=24)]가지다.

참고로 언어학적으로 한국어는 자유 어순 언어가 아니라 '어순 재배치가 가능한 언어(scrambling language)'로 분류된다. 우선 어순 재배치는 한국어가 교착어이기에 가지는 특성이다. 그리고 자유 어순 언어가 아니라는 의미는 한국어에서 단어 배치를 바꿀 경우 비문이 되어, 금지되는 어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단의 단락 및 외부 자료# 참고할 것.

2. 정말 영어는 안 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대 영어는 저렇게까지는 안 된다. 옛날 영어의 경우 굴절어로서의 성격이 지금보다 강했기에 일반 명사, 고유 명사에도 격 변화가 존재했고[1], 이로 인해 영어도 한국어만큼이나 어순이 자유로워 단어 순서를 마구잡이로 바꿀 수 있었다. 그러나 1066년 이후 영어가 단순화되어 가며 그 과정에서 명사의 격 변화는 사라져 갔다.[2] 문제는 명사의 격 변화가 사라지면 명사가 주어로 쓰였는지 목적어로 쓰였는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 그리하여 주어로 쓰인 명사는 동사 앞에, 목적어로 쓰인 명사는 동사 뒤에 오는 식으로 '순서'에 따라 어휘의 역할이 결정되는 구조를 띠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현대 영어가 저런 게 안 되는 이유는 영어가 쉬워졌기 때문.[3]

그렇다고 현대 영어에서 도치가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어서, 영어도 어느 정도는 저런 게 된다. 예문으로 "영어는 이런 거 안 되잖아."를 뒤집은 "English can do such a thing."을 써 보자. English can do such a thing으로 가능한 조합은:
English can do such a thing
Such a thing English can do
Do such a thing English can
English can such a thing do[4][5]

이렇게 네 가지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것은 문법적으로 가능한 어순 조합만을 나열한 것일 뿐, 위의 세 문장은 뜻이 전혀 달라진다.

English can do such a thing - 영어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다
Such a thing English can do - 영어로 할 수 있는 그런 일
Do such a thing English can - 영어가 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해봐

영어는 어순이 뜻을 결정하는 고립어이기 때문이다. 여섯 문장이 모두 같은 뜻을 갖는 교착어인 한국어와 뿌리부터 다르다. 두 언어를 동일한 조건에서 비교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두 언어를 비교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언어는 인종과 같다. 인류는 거주하는 환경에 따라 유전적 특성이 다양하게 발달하여 특정한 인종을 이루었지만, 이러한 특성에 따라 우수함과 열등함, 좋고 나쁨을 따질 수 없는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언어 역시 고립어와 교착어, 어느 쪽이 언어학적으로 우수한가를 따질 수 없으며, 따질 이유도 없다. 모든 언어들은 고유의 특질을 바탕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왔다. 언어와 언어 사이에 우열을 가릴 수가 없으며, 저런 문장들은 그냥 한국어의 특징이라고 봐야 한다.

3. 한국어는 이런 거 안 되잖아

반대로, 영어에서는 가능하나 한국어로 옮길 경우 성립이 불가능한 도치가 있다. 이름하여 Though- movement. 바로 아래 예문을 보도록 하자.
Strong though we are, we can be defeated.
(비록 우리가 강할지라도, 우리는 패배할 수 있다.)

저 문장이 어떻게 된 거고 하니, "We can be defeated though we are strong""Though we are strong, we can be defeated""Strong though we are, we can be defeated" 이런 순으로 도치가 이루어진 것이다. Though we are strong 부분에서 strongthough 앞으로 빼 온 건데, 이건 한국어로 치자면 "강할 비록 우리가 -지라도" 정도가 될 것이다. 물론 한국어는 이런 거 안 된다.

그렇다고 또 이걸 가지고 영어의 우수성을 주장하는 사람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주장하는 것 또한 정신승리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어는 '강할 비록 우리가 -지라도'는 안 되지만 '우리가 비록 강할지라도'는 된다. 물론 그렇다고 어느 한쪽이 이기는 건 아니다.

4. 스페인어는 이런 거 좀 되잖아

서양인이 쓰는 언어가 영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에만 하더라도 수많은 언어가 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라틴어 계열 언어인 스페인어는 어순의 자율도가 영어와 한국어의 중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대다수의 유럽 언어가 그렇다. 스페인어는 특정한 경우에 한해 어순이 한국어만큼이나 자유로워지는데, 예를 들면 Juan quiere a Carmen. (후안(Juan)은 카르멘(Carmen)을(a) 사랑한다(quiere).) 정도가 되겠다. 이 문장으로 도치를 해 보자면:
Juan quiere a Carmen (후안은 사랑한다 카르멘을)
Quiere Juan a Carmen (사랑한다 후안은 카르멘을)
Quiere a Carmen Juan (사랑한다 카르멘을 후안이)
A Carmen quiere Juan (카르멘을 사랑한다 후안은)
A Carmen Juan quiere (카르멘을 후안이 사랑한다)

이렇게 된다. 이는 목적어인 Carmen 앞에 목적격 전치사인 'a'가 붙었기에 가능한 일.[6] 이 외에도 스페인어 문장은 대명사가 목적어일 경우 한국어와 어순이 같아질 때가 있다.[7] 예를 들면 "Te(널) quiero(사랑해)."

5. 라틴어는 이런 거 잘 되잖아

Gaudeamus igitur, iuvenes dum sumus.
즐기자 그러므로 젊은 때에 우리가 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젊을 때에 즐기자.)
Non eadem hominibus sunt semper honesta
아니 같 사람들에게 다 언제나 미덕은. [8]
(미덕은 사람들에게 언제나 같지는 않다.)

한국어 어순의 자유로움을 한국어의 우수성이라고 주장하면 안 되는 대표적인 이유. 애초에 한국어의 도치는 굴절어라틴어를 따라갈 수가 없다. 라틴어의 어순은 한국어보다도 자유로워, 한국어에서 불가능한 도치도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으며 실제로도 도치가 많이 쓰인다.

라틴어에서 명사는 쓰임(격)에 따라 변화하는 데다가 명사를 수식하는 단어들 또한 그 명사의 변화 형태를 따라가므로 문장 안 단어들을 무작위로 섞어도 문제가 없으며, 라틴어로 된 많은 글에서 영어나 한국어 어순에서는 말도 안 되는 단어 배열을 찾을 수 있다.
[1] 격 변화란 한국어로 치면 조사의 역할과 유사하다. 지금은 대명사에만 그 흔적이 남아 있다.[2] 언어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 당시의 프랑스어도 중세 시대에 라틴어에 있던 격 변화들을 전부 잃어버렸다.[3] 한국어에서도 "내가 너를 좋아해"처럼 조사가 붙어있을 때는 "너를 내가 좋아해"라고 써도 의미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조사를 생략한 채 "나 너 좋아해"라고 쓸 경우 고립어와 마찬가지로 '나'와 '너'가 주어인지 목적어인지 판단할 근거라고는 문장 내의 어순뿐이기 때문에 한국어의 일반적인 SOV 어순에 따라 '나'가 주어고 '너'가 목적어라고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어순을 바꾸어 "너 나 좋아해"라고 쓰면 의미가 달라지게 된다. 즉 만약 한국어가 점차 변화해 가는 과정에서 '가'나 '를'처럼 명사의 격을 나타내 주는 조사들이 사라진다면, 한국어 역시 어순의 재배치가 불가능해져서 이런 게 안 될 수도 있다.[4] 이 문장은 현대 영어에서 비문이다. 그러나 현재는 비문이긴 해도 예로부터 쓰이던 문헌이나 경구를 읽어보면 주어-조동사-목적어-본동사 어순이 가능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독일어에서는 아예 저 어순대로 써야 한다. 이는 이 어순이 서게르만어군 언어들의 표준이기 때문이다. 영어도 북게르만어와 프랑스어 어순의 영향을 받기 전까지는 저 어순이 표준이었다.[5] 이것이 가능하다는 예시로, 윈스턴 처칠의 일화를 들 수 있다. 그는 편집자가 자신의 책에서 전치사로 문장을 끝내는 경우를 멋대로 수정하자, 곧바로 "This is the kind of impertinence up with which I shall not put"이라 써서 보냈다.[6] 스페인어 어순의 자율도가 동사 변형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동사 변형의 효용성은 동사의 형태만으로 주어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것에 있지, 동사 변형 때문에 어순이 자유로워지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동사 변형을 하지 않으면 주어를 생략해서 쓰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어순의 자율도가 떨어지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위에 나온 예문의 quiere는 querer의 직설법 3인칭 단수 현재형인데, 수 일치를 없애고 직설법 현재형을 모두 querer로 통일하여 쓴다고 해도, "Juan querer a Carmen."은 여전히 자유롭게 도치 가능한 문장이다. 스페인어 어순의 자율도를 결정하는 것은 목적격 전치사 'a', 그리고 대명사에 남은 격 변화이기 때문에, 어순의 자율도를 이야기할 때 동사 변형을 꺼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논점 이탈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스페인어의 조상인 라틴어는 facere 동사의 변형만 해도 수, 시제 등을 합쳐서 90개가 넘지만, 이는 스페인어나 영어, 한국어 등에는 존재하지 않는 복잡한 시제가 라틴어에 존재하기 때문이지, 딱히 수많은 동사 변형 때문에 어순의 자율도가 올라가는 것은 아닌 것이다.[7] 조상인 라틴어의 어순이 SOV로 한국어와 유사하기 때문.[8] 라틴어에서 영어의 be 동사에 해당하는 esse 동사(위 문장에서는 esse 동사의 3인칭 복수 형태인 sunt로 사용되었다.)와 함께 여격(-에게)이 사용되면 "~으로서 역할하다" 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직역: 미덕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같음으로서(같게) 역할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