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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비/역사/정치 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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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1. 개요

오르비의 역사 중 정치 성향에 대해 다루는 문서이다.

2. 상세

오래전부터 오르비는 대체로 보수적이었고 진보 또는 좌파가 주류를 이루었던 적은 없다. 이는 오르비 초창기인 2002~2004년부터 나도칼럼니스트 게시판이나 퍼온글 게시판 등에서 논객 활동을 했던 회원들은 진보, 보수 성향을 막론하고 인정한다. 물론 오르비에 진보, 좌파 자체가 없던 것은 분명 아니다. 토론, 친목관련 게시판에서만 활동하던 회원 중에는 좌파 정치활동이나 운동권 활동을 하는 회원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눈에 띌 뿐 소수였으며 실제로는 샤이 보수들이 오르비의 대부분을 이루었다. 또한 과거 오르비의 핵심은 학습 관련 게시판이었는데, 그곳에서 활동을 주로 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은 더 보수 성향을 띠는 편이었다.

2010~2014년 경까지도 진보 성향의 회원들이 왕성한 활동을 보였으나, 사라지고 2015년 무렵부터 서서히 우드라이브를 걸었다. 다만 오르비는 교육 정책에 있어서는 태생부터 지금까지 항상 보수적인 성향을 보여왔다. 반-정권, 보수정당 성향은 2010년대 초반 보수정권 시절에도 강하지 않았었다. 교육 문제, 그리고 교육 문제와 관련이 깊은 기본적 가치관 면에서는 분명히 보수적인 성향이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2017년 6월부터 기계학습 방법론으로 교육된 봇이 정치글이라고 자체 판단한 글에는 #auto:정치라는 태그가 자동으로 붙는다. 하지만 정치와 무관한 글에도 태그가 붙으며 그러다 보니 관리자 공지 게시물에도 가끔 정치 태그가 자동으로 붙는 광경을 볼 수 있다. 2017~2018년 경에는 모바일 오르비의 모아보기 화면에서 학습과 관련된 글만 얼마나 표시하는 것으로 제약할지(반대로 학습과 관련이 없는 글도 얼마나 허용을 할지) 5단계로 선택을 하는 UI가 있었는데, 개편 과정에서 사라졌다.

오르비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의 한가운데에서도 정치인으로서의 문재인에 대한 지지율이 높지 않았다. 오르비 유저들이 정시모집이 수시모집에 비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음에도, 당시 박근혜의 탄핵 여파가 굉장히 강해 제19대 대선 시기 유일하게 정시모집, 사시존치를 주장하였던 홍준표에 대한 지지율이 낮았다. 당시에는 대부분 유승민이나 안철수를 지지하였었다.

2019년 7월 들어 한일 무역 분쟁과 그에 따른 일본 불매운동 등 한일 간, 남북 간 정치적 긴장도가 높아지면서 다시 정치 관련 게시물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2019년 8월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와 관련된 여러 논란이 불거지며 한때 추천글이 관련 떡밥으로 도배되었다.[1]

2020년 4월, 총선을 열흘 앞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전 총선이나 대선 시기처럼 정치 게시물이 올라오지는 않았었다. 21대 총선 당일 정치글이 많은 추천을 받았지만 대부분 메인에 올라오지 못하거나 올라오자마자 내려간 것으로 보아 관리자들이 정치 게시물들의 노출을 적극적으로 줄이려고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더불어시민당 등 범 민주당계열이 180여석을 확보하는 압도적인 여당의 승리로 끝났기 때문에 야당을 지지하는 이용자가 많은 커뮤니티의 특성상 선거 결과에 분노와 좌절을 표시하는 글이 많았다. 어김없이 대평오 드립이 나오거나 극단적인 주장도 나왔지만 자정되는 모습을 보였었다.

총선 당일과 다음날 좋아요를 많이 받았던 몇 개 글들 중 보수적인 시각을 대표했던 글과 그 글에 대한 비판글, 진보적인 시각을 대표했던 대표했던 글의 논지나 댓글 반응을 살펴 보면 2020년 오르비 유저들의 정치 성향을 추론해 볼 수 있겠다. 운영자는 중도적인 성향의 글을 올렸다. 21대 총선은 오르비 내에 샤이진보의 숫자가 어느정도 존재했었다는 것을 시사했다. 아무래도 사이트 내 주성향이 보수적이기 때문에 평상시에 자신의 의견을 소신껏 말하지 못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준석에 대한 지지세가 상당히 강하며 당대표 선출 이후 긍정적인 언급이 늘었다.

20대 대선을 앞두고는 홍준표를 지지하는 여론이 절대적이었고, 일부 유승민을 지지하는 회원들도 있었다. 경선에서 윤석열이 이기고 나서 본인들의 입장과 안드는 행동을 했을땐 대다수가 투표를 포기하거나 안철수, 심지어 이재명을 찍겠다는 사람도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윤석열이 이준석과의 갈등 봉합 후 그 전과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자 다시 대부분 윤석열을 지지하는 여론으로 돌아왔다. 물론 윤석열을 좋아해서 지지한다기보다는 차악을 선택하는 느낌으로 지지하는 회원이 대다수이다.

그러나 대선 이후 수험생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부장관에 박순애를 임명하고, 정시 확대 등 공약이 지킬 기미가 안 보여지며 이준석과의 갈등이 심화되자 윤석열에 대한 비토 여론이 크게 늘었다. 다만 이재명이 나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철저히 배척당하는 상태. 이후 그나마 남아있던 친윤 여론은 윤석열 정부 수능 출제 방침 지시 관련 파문이 벌어지면서 거의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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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국 후보자의 딸은 외고 재학 당시 2주 인턴십 기간 동안의 참여로 병리학 SCI 저널의 제1저자가 되었고# 이 실적과 고3 여름 방학 동안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수준으로 쌓은 스펙#이 고려대 합격과 이후 서울대 대학원,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합격에 영향을 주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데, 이러한 의혹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오르비의 예전 글들#이 일부 증거로 간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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