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 번디 Omar Bundy | |
출생 | 1861년 6월 17일 |
미국 인디애나주 뉴캐슬 | |
사망 | 1940년 1월 20일 (향년 78세) |
미국 워싱턴 D.C.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
최종 계급 | 소장 |
복무 기간 | 1883 ~1925 |
학력 | 드포 대학교중퇴 미국육군사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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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인디애나주 뉴캐슬 출신으로 드포 대학교에 진학했다가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했으며 1883년 졸업하고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1]아이다호에 있는 제2보병연대에 배치되었고 이후 제3보병연대로 소속을 옮겼다. 이후 보병기병학교의 OAC 과정을 수료하고 제3보병연대가 사우스다코타에 있는 포트 미드로 옮겨지며 수족들과 전투를 치렀다. 이후 연대가 미네소타로 옮겨졌고 1898년 대위로 진급했다.
그 해 미국-스페인 전쟁이 발발했고 제1군단 소속으로 쿠바에서 전투를 치렀다. 제5군단 소속으로 옮겨졌고 엘카네이 전투에서 공을 세워 은성훈장을 획득했다. 산티아고 공방전이후 미국으로 귀국했다. 밀워키, 포트 샘휴스턴에서 복무하다가 미국-필리핀 전쟁에 참가했다. 네그로스섬, 비사야스에 배치되었다.
1902년 귀국해 지휘참모학교를 수료하고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가 모로족의 저항을 상대해야했다. 제1차 부드다호 전투에서 공을 세워 두 번째 은성훈장을 수여받았다.
다시 귀국해 군생활했고 1911년 중령으로 진급했다. 제11보병연대 대대장으로 복무했고 육군전쟁대학을 수료했다. 대령으로 진급 후 베라크루스 원정대에 참가했다.
1917년 전시계급 준장으로 진급해 제16보병연대, 제18보병연대, 제3기관총대대로 편제된 제1보병여단장이 되었고 제1원정보병사단[2]의 일원이 되었다. 이후 소장으로 진급해 제2보병사단장이 되었고 해병여단[3], 제4보병여단이 배속되어 미국 원정군소속으로 서부전선에 투입된다. 생미이엘, 베르됭인근에서 전투를 치러 메스를 탈환했고 벨로숲 전투 당시 프랑스를 구원해 독일군과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하지만 감찰부장으로 있던 안드레 브루스터는 번디의 활약에 부정적으로 느꼈고 상부에 보고해 후방부대인 제6군단에 배치했다.[4]이후 전방으로 다시 투입되어 생미이엘 전투에서 독일군과 전투를 치렀고 종전을 맞이했다. 이 공으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았다.
전후 대령으로 돌아왔고 1920년 준장으로 진급하고 1년 후 소장으로 진급해 필리핀 사단장이 되었다. 1925년 제5군단장을 마지막으로 퇴역했다. 1934년 육군수훈훈장을 수여받았고 1938년 뇌졸중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었으며 2년뒤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