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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14 12:08:41

오코우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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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전말3. 유서4. 후폭풍5. 관련 문서

1. 개요

愛知県西尾市中学生いじめ自殺事件

1994년(헤이세이 6년) 일본 아이치현 니시오시에 살던 중학교 2학년이었던 13세 오코우치 기요테루(大河内清輝) 군이 집단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감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한 사건. 17년 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2011년 대구 중학생 집단괴롭힘 자살사건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는 학교폭력 사건이다.[1]

기요테루는 길고 긴 유서를 남겼으며 후술될 유서의 내용이 너무나 끔찍하여 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하였다.

2. 전말

1994년 11월 27일 아이치현 니시오시립 동부중학교 2학년 오코우치가 집안 뒷뜰의 감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한 것이 어머니에게 발견되었다. 장례 후 책상에서 '괴롭힘당하고 돈을 빼앗겼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되었다.

이 사건은 당초 공부의 무게에 눌린 '단순 자살'로 여겨졌으나 뒤늦게 언론에 의해 유서가 공개됨으로써 집단괴롭힘의 심각성을 일깨웠다.

3. 유서

우리 반 애들 4명은 제게 늘 돈을 요구해요. 오늘은 그 애들에게 줄 돈을 정말로 구할 수가 없었어요…… 이렇게 살아서 뭐해요…… 그래서…… 엄마, 아빠, 모두와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가족들 모두 보세요.

함께 보낸 지난 14년에 대해 감사드려요. 저는 이제 여행을 떠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보게 되리라 믿어요. 그때는 우리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예요. 돈 문제는 정말로 죄송해요. 일해서 갚을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이 꿈마저도 오늘 저랑 같이 끝나버리는군요.
그리고 제게 돈을 빼앗은 애들을 제발 야단치지 마세요. 그 애들한테 아무런 저항 없이 돈을 준 제 잘못이지요.

하고 싶은 일들이 정말 많았는데…… 정말 죄송해요. 항상 말썽만 일으키고, 저는 이기주의자예요. 저를 가르치시느라 많이 힘드셨죠. 엄마, 제발 건강 잘 지키세요. 아빠, 호주에 여행 보내주셨던 거 감사해요. 엄마, 맛있는 음식 만들어 주셔서 고마워요. 형, 맨날 귀찮게 굴어서 미안해. 동생아, 너는 이기주의자가 되면 안 돼. 우리 모두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겠죠.
SEE YOU AGAIN.[2]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친구들로부터 왕따당하기 시작했어요. 중학교 1학년에 가서 더 심해졌고, 그 애들이 돈을 뺏기 시작했어요. 2학년에 올라가서부터 강탈이 훨씬 더 심해졌어요. 방학 전에는 최악의 경우 한 번에 6만엔이었고, 보통 3만엔, 4만엔씩 요구해 왔어요. 그리고 17일에 또 다시 4만엔을 요구했어요. 그래서…… 만약에 제가 거절했더라면 아마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죄송해요.
저도 오래 살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가족과 함께 있을 때 제일 행복했어요. 저를 별의 별 곳에 다 데려가시고, 함께 여행도 많이 갔죠. 정말이지 엄마 아빠는 흠잡을 데 없는 분들이세요. 그렇지만……

호주 여행 갔을 때 정말 즐거웠죠. 아 그런데, 저는 왜 그 애들의 요구를 다 받아주었을까요? 그건 강가에서 일어난 일 때문이에요. 그 애들이 절 강가로 끌고 가서는, 무슨 짓을 하려는 지 제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풍덩, 제 머리를 물 속에 빠뜨렸어요. 죽을 것 같아서 제가 팔을 휘저었더니 제 머리를 물에서 꺼낸 다음 다시 풍덩 집어넣었어요. 이런 식으로 몇 번이나 했는지 아세요? 4번? 게다가 거긴 야사쿠가와 강이었어요. 어떤 곳은 5m, 6m도 넘어요. 그 애들이 저를 물에 빠뜨렸을 때, 저는 화살표 방향[3]으로 헤엄쳐 도망가려 했는데, 제 발을 잡더니 또다시 풍덩. 강바닥이 발에 닿지 않는 만큼 전 정말로 겁이 났어요. 이 일이 있은 뒤 안타까웠지만, 저는 그 애들이 시키는 것은 뭐든 다 했어요.

저는 그 애들의 종이었어요. 창피해서 도저히 입에 못 담을 짓들을 제게 했지요. 그리고 제 머리를 억지로 염색시켰어요. 아빠, 제가 스스로 머리를 물들였다고 생각하셨죠. 정말로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리고 20일에 그 애들이 또 돈을 요구했어요. 정말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제가 제 방에 있는 동안 그 애들이 엄마 목걸이를 훔쳤다는 걸 알았을 때였어요. 정말 충격이었어요.

그리고, 엄마, 아빠에게서 돈을 훔쳐야 한다는 것……

제가 자살하는 이유는 그들이 오늘 또다시 4만엔을 내놓으라고 했기 때문이에요. 돈이 없어서 "돈을 가져올 수가 없다" 고 설명했는데, 그 애들은 저를 학대하면서 다시 가서 돈을 가지고 오라고 명령했어요. 제가 빈손으로 돌아가자 그 애들 중 하나가 저한테 발길질을 하면서 말했어요. "내일 12만엔 가져와." 제가 어떻게 그 많은 돈을 구할 수가 있겠어요? 엄마가 머리 깎으라고 주신 1,000엔까지 빼앗겨서 제가 직접 머리를 잘라야 했어요. 정말 견딜 수가 없는 일이었어요. (23일)

오늘도 그 애들이 1만엔을 빼앗았어요. (24일)
오늘은 제게 2만엔을 빼앗았고, 내일 4만엔을 가져오래요. (25일)
게다가 아침 일찍 나가야 하고, 그들에게 차(茶)를 갖다줘야 하고, 그 애들을 위해 별짓을 다 해야 하고, 정말이지 더는 견딜 수가 없어요.

제가 더 일찍 자살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제게 너무나 잘해주는 가족 때문이었어요.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 자리에서 잊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 들어 구박이 점점 더 심해지고 돈이 없는데도 자꾸만 더 가져오래요.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어요. 이렇게 마지막까지 괴로움을 드려서 죄송해요.

저는 왕따당하는 다른 애들보다 더 불행해요. 왠지 아세요? 우선 그 애들이 4명이나 되기 때문이에요. 1만엔이 4만엔이 되거든요. 게다가 3명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저를 때려요. 그리고 애들이 저한테 갈취하는 돈은 남들과 비교할 때 10배는 되는 것 같아요. 그토록 많은 돈을 구하기란 정말 힘들었어요. 이 일만 아니었으면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TV에서 자살한 사람들을 볼 때 저는 항상 겨우 그 정도 돈 때문에 자살을 다 하느냐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으로, 엄마. 정말 죄송해요.

이 4장의 편지와 함께 기요테루가 어머니에게 해야 했던 모든 '차용'을 꼼꼼히 기록한 영수증이 나왔다. 기요테루가 '급우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집에서 훔친 돈은 모두 114만엔(약 1,140만원)이었다. 이 유서가 발견된 후에 나온 또 다른 증언들은 기요테루가 겪어야 했던 왕따가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4. 후폭풍

당시 아사히신문이 한 중학교의 학급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38명 중 80%에 해당하는 25명이 집단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부성(現 문부과학성)은 전국의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총점검한 결과 집단괴롭힘 사례가 17,800건이나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경찰 통계로도 1994년 한 해 동안 10명 이상의 학생들이 교내폭력에 시달리다가 자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정부는 긴급각료회의를 열어 악질적인 집단괴롭힘을 형사사건으로 취급한다는 방침을 마련하고 이지메 전담 신고전화 '110'을 새롭게 개설했으며 문부성은 이지메를 당하는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해 이지메를 가하는 학생에겐 출석정지 등 엄한 처벌을 내리기로 했다.

니시오시 교육위원회의 조사 결과 동급생 11명이 집단괴롭힘에 연관되었다는 것이 판명돼 주범격인 4명이 공갈 혐의로 서류입건되었다. 4명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오코우치에게 종종 폭행을 가했고 돈을 요구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피해자로부터 빼앗은 돈은 적어도 110만엔 이상은 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1995년 4월에 3명이 초등소년원으로, 1명은 교호원으로 송치되었다.

사건이 발생한 지 13년이 지난 2007년에는 피해자인 기요테루의 형이 자살하였다.#

5. 관련 문서



[1] 두 사건 모두 집단괴롭힘을 심각한 사회 문제로 조명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2] 편지 원문에 영어로 쓰여 있었다.[3] 기요테루는 강과 자신을 고문한 자들의 위치를 스케치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