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8ab8d9><colcolor=#ffffff> 옥사나 코스티나 Оксана Костина | Oksana Kostina | |
본명 | 옥사나 알렉산드로브나 코스티나 Оксана Александровна Костина Oksana Alexandrovna Kostina |
출생 | 1972년 4월 15일 |
소련 RSFSR 이르쿠츠크주 이르쿠츠크 | |
사망 | 1993년 2월 11일(향년 20세) |
러시아 중앙 연방관구 모스크바 | |
국적 | [[러시아| ]][[틀:국기| ]][[틀:국기| ]] |
종목 | 리듬체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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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련과 러시아의 前 리듬체조 선수였으며, 1993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2. 선수 경력
2.1. 유년 시절
리듬체조는 1979년부터 시작했다. 그후 1983년부터 올가 부야노바의 밑에서 훈련을 하게 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이르쿠츠크 소속으로 지역 대회에서 활동하는 선수였다.2.2. 1989년
소련의 대표팀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는데, 동갑내기인 올렉산드라 티모셴코, 옥사나 스칼디나에 가려 3인자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1989 세계선수권에서 공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국가대표로서 많은 기여를 했다.2.3. 1991년
세계선수권 단체전에 출전해 우승에 기여했는데, 이때 소련 선수들 중에서는 3위의 성적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고난의 복선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2.4. 1992년
2.4.1. 1992 유럽선수권
아미나 자리포바, 율리야 로슬리아코바와 함께 출전해 단체전과 개인종합에서 동메달, 곤봉 & 공 & 후프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 단체전에서 전종목 10점 만점을 받았다. 그리고 선수 측에서는 이 성적이 독립국가연합의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 선발에 반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2.4.2.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소련 붕괴 후 1992년까지는 소련 소속의 국가들이 독립국가연합이라는 단일팀으로 국제대회에 참가했는데, 리듬체조도 예외는 아니었다. 1991 세계선수권의 결과로 독립국가연합이 2장의 출전권을 확보한 상태에서, 이리나 데리우기나가 발빠르게 수를 써 전년도 세계선수권 성적에 따라 대표는 티모셴코와 스칼디나로 결정되었다. 즉 러시아 선수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이에 코스티나는 무작정 바르셀로나로 출국해 IOC와 주최국에 호소했지만, 결국 문전박대를 당했다. 이때 영국 대표팀과 함께 훈련하면서 영국으로 귀화할 생각을 했다가 다시 러시아 대표팀으로 복귀했다. 올림픽 이후 완전히 소련 국가대표팀이 붕괴되면서 이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2.4.3. 1992 세계선수권
개최되지 않은 단체전을 제외하고 개인종합과 나머지 네 종목[1]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로서 비앙카 파노바에 이어 리듬체조 세계선수권 두번째 5관왕이 되었다. 이후 러시아 대표팀의 에이스로서 책임감과 자부심을 느끼며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훈련했다.2.5. 사망
1993년 2월 11일 밤, 남자친구인 에두아르 제노브카[2]와 드라이브를 하다가 모스크바 근교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제노브카는 중상을 당한 채로 살아남았는데, 만취 상태였다고 한다. 때문에 자국의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음주운전을 했다는 사실을 공개하길 꺼렸던 러시아 당국은 이 사고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3. 평가
같은 소련의 국가대표였던 올렉산드라 티모셴코나 옥사나 스칼디나에 밀려 항상 3인자 위치에 있는 선수였지만, 전반적으로 고른 성적을 유지하는 선수였다. 주종목은 공이며, 공에서 메달을 많이 획득했다.4. 수상 기록
러시아 대표로 참가한 대회 | ||
세계선수권 | ||
금메달 | 1992 브뤼셀 | 종합 |
금메달 | 1992 브뤼셀 | 곤봉 |
금메달 | 1992 브뤼셀 | 공 |
금메달 | 1992 브뤼셀 | 줄 |
금메달 | 1992 브뤼셀 | 후프 |
유럽선수권 | ||
금메달 | 1992 슈투트가르트 | 종합 |
금메달 | 1992 슈투트가르트 | 곤봉 |
금메달 | 1992 슈투트가르트 | 공 |
동메달 | 1992 슈투트가르트 | 종합 |
동메달 | 1992 슈투트가르트 | 단체전[3] |
소련 대표로 참가한 대회 | ||
세계선수권 | ||
금메달 | 1989 사라예보 | 단체전 |
금메달 | 1991 아테네 | 단체전 |
은메달 | 1989 사라예보 | 공 |
유럽선수권 | ||
금메달 | 1990 예테보리 | 단체전 |
5. 여담
5.1. 기타
- 코스티나가 선수 생활을 하던 당시 리듬체조계에는 분홍색이 유행했다. 그래서 당시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너도나도 분홍 계열의 레오타드를 입은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코스티나는 그중에서도 유독 분홍색 계열의 레오타드나 수구와 잘 어울렸다고 한다.
- 동갑내기인 스칼디나, 티모셴코와 같이 서 있으면 셋의 각기 다른 매력이 도드라졌다고 한다. 티모셴코가 갈대같은 가냘픈 모습, 스칼디나가 귀여운 모습으로 어필했다면, 코스티나는 글래머한 몸매와 색조 화장 등을 통해 여성스러움을 어필했다고 한다. 이때 주로 사용한 섀도우의 색이 연보라색이라 코스티나의 팬들은 리듬체조 선수들이 연보라색 의상을 입으면 추억에 빠지기도 하였다.
- 소련이 붕괴한 후 독립국가연합이 형성되고, 다시 러시아로 바뀌는 과정에서 유난히 다사다난한 선수생활을 보낸 선수였다. 결국 그 고난은 세계선수권 5관왕이라는 업적으로 보답받았다. 선수가 사망한 지금도 그녀의 고향이었던 이르쿠츠크에서는 추모 대회가 열리고 있다. 율리아 바르수코바, 이리나 차시나가 이 대회에 참가해 우승한 적이 있다.
5.2. 코스티나 코드
러시아 리듬체조계에 전해지는 일종의 징크스로, 다음의 2가지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1)분홍색을 정복한 선수가 리듬체조의 역사를 새로 쓸 것이며, 2)이름에 알파벳 K가 들어가는 선수가 리듬체조의 전설이 될 것이다.
이 징크스의 유래가 바로 분홍색 의상을 입고 1992년 세계선수권에서 5관왕을 달성한 옥사나 코스티나(Kostina)이다. 그래서 코스티나 코드라고 한다. 실제로 러시아가 리듬체조에서 강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 코스티나가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한 이후부터이다. 비녜르가 분홍색과 K에 집착하는 이유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실제로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 등에서 활약한 선수들을 보면 카바예바(Kabaeva), 카나예바(Kanaeva), 카프라노바(Kapranova), 콘다코바(Kondakova), 쿠드랍체바(Kudryavtseva), 메르쿨로바(Merkulova) 등 대부분 성에 알파벳 K가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4] 예브게니야 카나예바의 경우, 2011 세계선수권에서 두번째 6관왕을 달성할 때 아예 경기장이 분홍색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코스티나의 축복이 카나예바에게 내렸다고 하였다.
[1] 리본이 빠진 사이클이라 곤봉, 공, 줄, 후프의 네 종목으로 경기가 진행되었다.[2] 1969년생인 러시아의 前 근대 5종 선수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동메달과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했다.[3] 전종목 10점 만점을 받았다![4] 그 외의 선수들(이리나 차시나, 다리아 드미트리예바, 베라 세시나, 야니나 루코니나 등)은 이르쿠츠크에서 열리는 코스티나 추모대회 출신인데, 어떻게든 코스티나와 연관이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