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의 인물에 대한 내용은 왕선(후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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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王詵
생몰년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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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 초기의 인물.2. 생애
집정으로 975년에 경종이 즉위하자 광종 때 참소를 당해 화를 입었던 사람의 자손들에게 복수하는 것을 건의해 복수법이 시행되었으며, 이로 인해 함부로 살육을 저지르는 바람에 다시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생겨났다.왕선은 복수한다는 핑계로 왕명을 빙자해 왕족인 천안부원낭군[1]과 진주낭군[2]까지 살해하는 충격과 공포의 폭거를 저질렀고, 이로 인해 놀란 경종에 의해 976년 11월에 지방으로 쫓겨나면서 결국 복수법은 철폐된다. 유배 이후의 행적은 불명.
왕선이 권좌에서 쫓겨난 이후에는 본래 한 사람만 담당하던 집정이 좌집정, 우집정으로 나뉘어 집정들끼리 서로 견제하도록 조치했다.
왕선이 개성 왕씨 왕족 출신인지는 불명이나 광종의 전제왕권 치하에서 고초를 겪은 자들의 대표로써 복수법을 시행한 행적으로 추측하건대 광종의 개혁정책과 절대왕권에 반대하던 공신 호족 출신의 인사였을 가능성이 충분하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