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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 이 속주들에는 전직 법무관이 파견됨. 그러나 호칭은 여전히 프로콘술. | }}}}}} | }}}}}}}}} | |||||
| 로마 집정관 執政官 Consul | |
| | |
| 초대 | <colbgcolor=#FFF,#1f2023>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콜라티누스 |
| 말대 | 레온 6세 |
| 시행 | 기원전 509년 |
| 폐지 | 887년 |
1. 개요
| |
| 로마 집정관의 권한을 상징하는 파스케스 |
폼페이 등 자치권을 가진 도시들의 경우에는 두움비르(duumviri)[2]이라고 하는 '자치 집정관' 직책이 있었는데 이는 본 문서에서 주로 서술하는 콘술(Consul: 집정관)과는 다른 직책이다.
프로콘술(proconsul: 전직 집정관)[3]인 의원의 권위는 다른 일반 원로원 의원들과는 한층 격이 달랐다. 아나톨리아, 히스파니아, 마케도니아, 북아프리카 등 알짜배기 속주의 총독,[4] 프라이펙투스 우르비(로마시 장관), 임페리움(imperium, 군사 지휘권)을 보유하는 사령관 등의 직책이 되기 위해서는 집정관 경력이 필요했다. 원로원 의원들 중 집정관 경력자, 그 중에서도 '보결 집정관'이 아닌 '정규 집정관 역임자'는 다른 의원들보다도 급이 높은 유력자로 취급되었다.
고대에 집정관이라는 영예는 매우 컸기에 귀족들의 경우 집정관 역임이라는 문구는 무덤과 족보에 꼬박꼬박 새겨놓았다. 또한 제정 시대나 동로마 제국 때의 황제들 또는 로마 시대 말기 군 사령관들 역시 권위를 높이는 수단으로 가끔씩 집정관에 출마해서 당선되기도 할 정도로 집정관이 가진 권위는 상당히 높았다. 또한 로마인들이 연도를 표기하는 수단으로도 '누구와 누구가 집정관이었던 해'로 표기하는 (동아시아의 연호와 유사한) 방법이 사용되었다.
2. 선출
집정관은 백인대회[5]라고도 불리는 켄투리아회에서 선출되며 해마다 후보 10여 명 중 투표로 두 명을 뽑는다. 집정관 선거는 6월~7월에 치르고 승계는 1월에 했다.기원전 367년 평민들의 기나긴 요구 끝에 결국 평민들이 집정관으로 선출될 수 있게 하는 리키니우스-섹스티우스 법(Leges Liciniae Sextiae)이 통과된 후 일반 평민들도 집정관으로 선출되었다. 기원전 342년부터는 아예 집정관 둘 중 하나는 무조건 평민이어야 한다는 법령도 생겼다.
아우구스투스가 집권한 뒤, 두 번의 조정 헌법 이후부터는 집정관 선출 역시 변화했다. 원수정(프린키파투스)의 초창기 당시에는 집정관은 기원전 31년 이전처럼 여전히 켄투리아회에서 선출됐고, 후보 역시 10여명이 나왔다. 그렇지만 그 내용은 1차 조정 헌법, 2차 조정 헌법 아래에서의 공화국 법에 따라, 후보 모두 프린켑스 세나투스가 허락한 자들로 채워졌다. 아우구스투스는 이를 교묘한 방법으로 바꿔 나갔다. 그 결과 집정관 추천이라는 명목 아래에서 집정관 입후보자 2명 모두 황제에게 지명되고 형식상 투표를 거치는 식으로 당연시됐다. 그리고 이는 선례가 되어 아우구스투스 집권 중기 이래, 집정관 선출과 선거 목적 역시 황제와 황제 주변의 실력자 주도 하에 지명되고 당선 후 취임하는 식이 됐다.
동로마 제국을 제외한 기원전 1세기부터 테오도시우스 1세까지의 기간 동안, 로마 황제 중 추천을 통한 지명 횟수는 황제의 권위를 상징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황제의 권력 강화를 확실히 원로원에게 보여주면서도, 독선적인 통치의 상징이 됐다.
황제가 평소 원로원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여부도 중요했다. 그러나 이것보다 중요한 기준이 된 것은 황제가 집정관 추천권 외에도 하위 행정직 추천까지 간섭했는지 여부였다. 13번 추천을 한 아우구스투스, 10~15회 정도 추천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 트라야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와 비교해 18번 추천을 사용한 도미티아누스, 16~20번 추천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독선적이고 무례한 황제로 욕을 먹었던 이유 역시 이런 점이 컸다.
3. 임기
임기는 1년이었고, 기원전 300년 무렵 연임 금지 규정이 생겼다. 연임 금지 규정은 로마가 소규모 국가였을 때는 잘 지켜졌지만, 점차 나라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전쟁 규모도 커지게 되어 군사적으로 유능한 인물이 집정관을 연임을 하는 사례가 나타났다. 실제 집정관이 연임한 경우는 주로 외부에 강한 세력이 나타나 로마의 존폐가 걸릴 정도로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나타났다.공화정 시기에 집정관을 연임한 대표적인 인물은 파비우스 전략으로 유명한 '쿵크타토르'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와 그 동료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등이다. 파비우스와 마르켈루스의 경우 기원전 215년 보결 집정관이었다가 214년 정규 집정관으로 연임한 예외적인 경우이며,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 바르카를 상대하는 특수한 상황이 반영되었다.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게르만족과의 킴브리 전쟁에서 전임 집정관들이 줄줄이 패하고 전멸하면서 로마군이 8만 명이나 되는 큰 손실을 입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게르만족이 언제 로마 본토를 침공할지 모르는 비상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당시 마리우스 외에는 로마를 지켜낼 역량을 지닌 장군이 없었으므로 로마 시민들의 강력한 지지하에 마리우스는 집정관직을 무려 5번이나 연임하였다.(전체 총 7회 집정관 역임)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같은 희대의 장군들마저 집정관을 연임한 적은 없을 정도로 집정관직을 연속으로 맡는 것은 예외적인 일이었다.[6] 마리우스 이후에는 마리우스의 포풀라레스파 동료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카이사르의 내전 승리 이후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등이 집정관을 연임했지만 변명의 여지 없는 독재로 여겨졌기에 두 사람 모두 살해당하는 최후를 맞았다. 하지만 옥타비아누스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벌인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한 이후 기원전 30년부터 23년까지 집정관을 여덟 번 연임하며 연임 금지 규정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었다.[7]
연임뿐만 아니라 집정관직을 맡은 지 10년 이내에 다시 맡는 것조차 관습에 어긋나는 일로 여겼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기원전 194년에 집정관을 맡았기에 기원전 190년 선거에 나서지 못하고 동생 루키우스를 내세운 후 그의 막료로 로마-셀레우코스 전쟁에 종군했다.
아우구스투스가 집권한 뒤의 원수정 아래에서는 3세기까지 집정관 임기 역시 고무줄처럼 늘어나고 줄었다. 1년을 기준으로 첫 해 1월 1일 취임한 정규 집정관은 통상적으로 황제의 경우 6월 또는 8월까지 올라 있다가, 보결 집정관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측근 등에게 지명하는 식의 추천 방법을 통해 물려줬다. 물론, 이런 보결 집정관 추천 역시 황제가 정규 집정관이나 황제의 복심인 경우에나 통용됐다. 따라서 티베리우스 마닐리우스 푸스쿠스처럼 자신이 정계 은퇴를 하면서 갓 20살이 넘은 본인의 외손자에게 보결 집정관 추천을 주면서 보결 집정관에 오르게 하면, 사후에도 손가락질을 받았다.
원수정 시절부터 집정관 임기에서 로마 귀족에게 화두가 된 것은 따라서 보결 집정관에 누가 오르는가였다. 왜냐하면 이때 보결 집정관은 남은 6개월 또는 4개월을 분기에 따라 다음 순위자에게 물려주는 식으로 활용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집정관 경력자는 늘어나면서도 황제를 제외하면 1년 동안 길게 법적 임기를 온전히 보내는 경우가 이례적인 일로 인식됐다.
4. 군사 지휘권
국가 통치에 필요한 모든 권한을 부여받았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임페리움(imperium, 총지휘권)이라 불리는 군사 및 행정 지휘권이었다.임페리움은 2개 레기온의 지휘권에 전쟁에 필요한 모든 재량권을 인정받는 것으로 공화정 시대에는 2개 군단 병력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보조병까지 합쳐 대략 2만여 명 규모 병력이었다. 로마는 해마다 전쟁을 수행하였으므로 집정관은 항상 총사령관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때문에 로마에 머무는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집정관이 지휘하는 부대는 로마 시민들에게서 제비뽑기 방식으로 뽑은 병력들로, 1년 기간이 되면 해산한 뒤 새로 뽑히는 병력들로 교체되었다.
공화정 시대에는 당해에 선출된 집정관만이 군대를 지휘할 수 있었고 법무관, 전직 집정관 등은 로마군을 지휘하지 못하였다. 예를 들어 고대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벌여진 대표적인 전쟁인 삼니움 전쟁, 피로스 전쟁 등은 집정관들이 지휘하는 병력들로 전쟁을 치렀다. 그리고 이 전통은 제1차 포에니 전쟁 때까지 유지되다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 바르카가 등장해 전쟁의 규모가 상당히 커지자 법무관(Praetor), 전직 집정관(Proconsul)에게도 임페리움을 수여하는 일이 생겼다. 특히 전직 집정관의 경우 총사령관의 집정관 임기가 끝나면 교체되는 일을 막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한니발을 상대하면서 집정관의 교체가 주는 혼선이 전쟁에 영향을 주는 일이 자주 생기자 고안해낸 방법이었다. 즉 집정관이 군대를 지휘하다 임기가 끝나면 전직 집정관의 신분으로 그대로 전쟁을 지휘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럼에도 집정관과 전직 집정관의 권한의 차이는 상당히 컸다. 예를 들어 현직 집정관은 전쟁의 시작과 종료를 결정할 수 있었고 또한 전직 집정관의 부대에 명령할 권한도 있었다. 이 때문에 많은 정치가들은 현직 집정관 시절에 전쟁을 수행하여 마무리짓고 싶어하였다. 대표적으로 마리우스는 킴브리 전쟁을 앞두고 계속 현직 집정관 상태를 유지하였으며[8] 또한 카이사르 역시 현직 집정관일 때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와의 내전과 알렉산드리아 전쟁을 수행하였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독재를 할 때 임페리움을 놓지 않고 있었으며 그 후계자인 아우구스투스는 여기에다가 호민관 특권들만 받아서 황제가 되었다.
5. 업무
집정관은 상당 기간 전쟁을 수행하였지만 아주 가끔씩은 로마에 머물며 국가를 통치하였는데 이때 이들은 1개월씩 번갈아 통치하였으며, 자신이 통치하지 않는 달에는 다른 집정관의 정책에 동의·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즉 자신이 집권하는 달에도 상대 집정관의 동의를 얻어야 정책을 집행할 수 있었다. 집정관 부재 중에는 법무관이 집정관의 일을 처리하였는데 평소엔 한 명만 두다 나중에 로마의 규모가 커지자 8명까지 늘어났었다.원로원 회의나 선거, 축제 등의 국가 행사는 집정관이 주재하며 국가에 불길한 전조를 선포함으로써 상업을 마비시키는 일을 할 수 있었다. 집정관이 이러한 점술가의 역할도 겸직하는 것은 상당히 특이한 제도로 로마 시대의 집정관은 성직자와는 거리가 먼 완전한 정치가였기 때문이었다.
집정관은 권위를 상징하는 릭토르 12명을 거느렸다. 릭토르는 파스케스[9]라는 도끼 날을 나뭇가지 가운데에 심어놓은 무기로 무장한 자들로 집정관을 호위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였다. 참고로 이는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에서 유래한 문화였다.
전직 집정관들은 원로원에 20~30명 정도가 있었고 집정관은 주로 법무관을 역임한 이들이 곧장 후보로 나서 그들 가운데에 선출되므로 집정관은 원로원 의원들이 보기에는 성공한 정치 입문자에 불과하였다. 때문에 집정관 직위가 매우 권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원로원을 무시할 수는 없었고 따라서 원로원의 권력은 점점 강력해졌다. 이렇게 된 이유로는 원로원이 한 개인이 독재를 하는 것을 막고 싶어하였고 또한 로마 공화정은 철저히 유력 가문들에 의한 정부였으므로 집정관 직위를 여럿이 돌아가면서 맡는 것을 귀족들이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집정관 자리는 연임이 극히 드물었고 따라서 집정관에 당선된 이들은 이 자리에 연연해하기보다는 앞으로 그들이 원로원 의원으로서 정국을 운영할 것을 염두에 두었다. 이 때문에 집정관들은 원로원의 의향을 철저히 따랐고, 사실상 원로원이 곧 로마의 통치 기구의 역할을 수행했다.[10]
그러므로 집정관은 물론 내정과 외정 전체에 걸쳐 국가 통치에 필요한 최고 권한을 가진 관직이었지만, 정부 그 자체인 원로원이 있고 또 집정관 자신도 그 원로원의 구성원 중 하나인 이상 자신의 임기 동안 자의로 권한을 행사하는 통치자라기보다는 원로원의 의향을 실천하는 실무 집행 최고 책임자의 성격을 강하게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극히 싫어하던 로마 공화정에서는 집정관을 한 번에 2명씩 뽑았고, 연임도 금기시했기에 원로원 내에는 현임 집정관보다 선배이면서도 여전히 현역 정치인인 전직 집정관들이 우글우글 다수 포진하고 있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원로원 전체를 기준으로 본다면 초임 집정관 당선자는 (어차피 집정관에 당선된 이들은 많은 경우 이미 원로원 의원인 이들이었으니) 정치 경력의 최상층에 성공적으로 들어선 정도, 그리고 이후 집정관을 여러 차례 역임하여 경력을 더욱 쌓아올린다면 그만큼 그의 위상도 커지겠지만 그 역시 원로원 내에서 그의 발언권이나 존재감, 영향력은 더욱 커지는 것이지 집정관 자체의 영향력이 원로원을 밀어내게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11]
6. 제정 시대
6.1. 원수정
제정 시대에는 황제의 권력이 강해지면서 투표는 유명무실해지고 황제에게 임명되는 것이나 다름없는 직위로 전락하였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에 의하면 점점 재상처럼 되었다고 한다. 물론 재상의 의미가 위로는 황제 한 명을 보필하고, 아래로는 모든 관료를 통솔 및 지위하는 최고위직로서 결코 낮은 직위는 아니나, 공화정제에서 집정관이 실질적인 국가원수이자 종종 왕으로도 비유된 것에 비하면, 프린켑스(황제)의 등장으로 집정관직의 가치는 크게 떨어진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정관직은 원로원의 자존심과도 같아서, 원로원 의원들은 황제가 집정관을 겸하는 것을 매우 불쾌하게 여겼다.아우구스투스 이후로 제국 전체의 집정관급 공직이 크게 늘어나면서 보결 집정관 제도가 활성화되었다. 1월에 취임한 정규 집정관 2명은 그 해의 중반이 되기도 전에 사임하는 것이 관례화되었고, 이후에는 약 두 달 단위로 보결 집정관들이 취임-사임을 반복하여 한 해에만 10명 이상의 집정관 역임자들이 생겼다.
실권은 크게 줄어들었지만 제정 중기까지는 명예로운 경력을 대표하는 최고의 명예직으로 상징적인 권위는 여전히 드높았다. 특히 황제와 공동으로 정규 집정관에 취임하는 것은 그 사람이 황제의 최측근, 심복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었다. 황제들은 원로원 내에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하고 자신 또는 후계자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집정관직을 활용하였다. 즉, 재상이라는 직위의 의미가 군주국에서 모든 관료를 총괄하여 통솔하고 군주를 보필한다는 의미인 바, 이러한 점에서 에드워드 기번의 비유는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6.2. 전제정
3세기 말부터는 제국의 군제나 행정 관제 등이 크게 변화하면서 원로원 계급의 특권도 사라졌고, 경력이 적고 권한도 낮은 직위나 기사 계급 출신의 군사령관 등에게 집정관직이 남발되면서 집정관직의 가치는 크게 추락하였다.콘스탄티누스 1세 이후로는 로마 집정관과 콘스탄티노폴리스 집정관을 한 명씩 선출하게 되었다. 로마 집정관은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로도 오도아케르 왕국, 동고트 왕국 시대까지도 이어졌다. 그러나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기의 관제 개혁을 통해 로마 집정관은 534년을 끝으로 소멸하였고 동고트 왕국도 동로마에게 망한다. 541년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 집정관은 황제가 겸하였다가, 레온 6세 시기 바실리카 개혁을 통해 폐지되었다.
7. 역대 집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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