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우스 멤미우스 라틴어: Gaius Memmius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가이우스 멤미우스(아버지) 코르넬리아 파우스타(어머니)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34년 |
전임 | 루키우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
동기 |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
후임 |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피켄스 |
[clearfix]
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기원전 3세기부터 쿠르수스 호노룸을 역임했지만 집정관에는 그가 선임되기 이전에는 이르지 못한[1] 노빌레스 가문인 멤미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아버지 가이우스 멤미우스는 기원전 66년 호민관을 역임하면서 제3차 미트리다테스 전쟁을 치르던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의 임페리움을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에게 넘기게 했고 기원전 58년 법무관을 역임한 뒤 기원전 56년 가문의 염원인 집정관에 도전했으나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하자 국외로 망명해야 했다. 어머니 코르넬리아 파우스타는 독재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의 딸이다.그는 기원전 51년 화폐 주조관을 역임했다. 그가 주조한 데나리온에는 아버지가 주조한 것과 구별하기 위해 "가이우스의 아들 가이우스 멤미우스( C. Memmi C. f. )"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한 동전에는 세레스 신의 두상이 새겨졌고, 뒷면에는 그가 비티니아 총독을 역임하면서 임페라토르 칭호를 받았다는 내용이 새겨졌다. 이는 고대 사료에는 발견되지 않은 사실이다. 또다른 데나리온에는 세레스와 퀴리누스의 두상이 새겨졌다.
사료에는 그가 카이사르의 내전과 해방자 내전, 옥타비아누스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갈등 동안 어떤 행보를 보였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단지 기원전 34년 7월 1일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를 대신해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와 함께 보결 집정관에 선임되었다는 사실만 알려줄 뿐이다. 그는 집정관의 자격으로 율리우스 가문의 시조 비너스를 기리기 위한 경기를 조직했다. 얼마 후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피켄스에게 직임을 넘기고 물러났으며,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1] 사실은 기원전 100년 집정관 선거에서 가이우스 멤미우스가 집정관 선거에 출마해 당선했지만 호민관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사투르니누스 추종자들이 일으킨 폭동에 휘말려 살해되는 바람에 실제로 취임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