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14 18:23:11

파울루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81818,#E5E5E5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font-size: 0.742em; letter-spacing: -0.35px"
{{{#!wiki style=""<tablewidth=100%><tablealign=center> 라틴어 문구 색상 범례
  • sine collega: 동료 없이 단독 선출
황제 겸 집정관 }}}
기원전 100년 기원전 99년 기원전 98년 기원전 97년 기원전 96년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네포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티투스 디디우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기원전 95년 기원전 94년 기원전 93년 기원전 92년 기원전 91년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코엘리우스 칼두스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마르쿠스 페르페르나 섹스투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기원전 90년 기원전 89년 기원전 88년 기원전 87년 기원전 87년 보결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스트라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포르키우스 카토 퀸투스 폼페이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메룰라
기원전 86년 기원전 86년 보결 기원전 85년 기원전 84년 기원전 83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기원전 82년 기원전 81년 기원전 80년 기원전 79년 기원전 78년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르쿠스 툴리우스 데쿨라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이사우리쿠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퀸투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
기원전 77년 기원전 76년 기원전 75년 기원전 74년 기원전 73년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루키우스 옥타비우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 루쿨루스
마메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리비아누스 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기원전 72년 기원전 71년 기원전 70년 기원전 69년 기원전 68년
루키우스 겔리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수라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퀸투스 호르텐시우스 호르탈루스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클로디아누스 그나이우스 아우피디우스 오레스테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크레티쿠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렉스
기원전 68년 보결 기원전 67년 기원전 66년 기원전 65년 기원전 65년 보결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마니우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루키우스 볼카티우스 툴루스 푸블리우스 아우트로니우스 파이투스 루키우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기원전 64년 기원전 63년 기원전 62년 기원전 61년 기원전 60년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데키무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마르쿠스 푸피우스 피소 프루기 칼푸르니아누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켈레르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히브리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무레나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니게르 루키우스 아프라니우스
기원전 59년 기원전 58년 기원전 57년 기원전 56년 기원전 55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핀테르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비불루스 아울루스 가비니우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네포스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기원전 54년 기원전 53년 기원전 52년 기원전 51년 기원전 50년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파울루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루푸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 스키피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기원전 49년 기원전 48년 기원전 47년 기원전 46년 기원전 45년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퀸투스 푸피우스 칼레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크루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이사우리쿠스 푸블리우스 바티니우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sine collega
기원전 45년 보결 기원전 45년 보결 기원전 44년 기원전 44년 보결 기원전 43년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가이우스 비비우스 판사 카이트로니아누스
가이우스 트레보니우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아울루스 히르티우스
기원전 43년 보결 기원전 43년 보결 기원전 42년 기원전 41년 기원전 40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푸블리우스 벤티디우스 바수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루키우스 안토니우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퀸투스 페디우스 가이우스 카리나스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이사우리쿠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폴리오
기원전 40년 보결 기원전 39년 기원전 39년 보결 기원전 39년 보결 기원전 38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발부스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가이우스 코케이우스 발부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푸블리우스 카니디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푸블리우스 알페누스 바루스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플라쿠스
기원전 38년 보결 기원전 38년 보결 기원전 37년 기원전 37년 보결 기원전 36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루키우스 겔리우스 포플리콜라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루키우스 카니니우스 갈루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기원전 36년 보결 기원전 36년 보결 기원전 35년 기원전 35년 보결 기원전 35년 보결
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루키우스 코르니피키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퀸투스 마르키우스 크리스푸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티투스 페두카이우스
기원전 34년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3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루키우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가이우스 멤미우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피켄스 루키우스 볼카티우스 툴루스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루키우스 아우트로니우스 파이투스 루키우스 플라비우스 마르쿠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루키우스 비니키우스
가이우스 폰테이우스 카피토 퀸투스 라로니우스
기원전 32년 기원전 32년 보결 기원전 31년 기원전 31년 보결 기원전 31년 보결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코르비누스 마르쿠스 티티우스
가이우스 소시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기원전 31년 보결 기원전 30년 기원전 30년 보결 기원전 30년 보결 기원전 30년 보결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루키우스 사이니우스
기원전 29년 기원전 29년 보결 기원전 28년 기원전 27년 기원전 26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섹스투스 아풀레이우스 포티투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기원전 25년 기원전 24년 기원전 23년 기원전 23년 보결 기원전 22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세스티우스 알바니아누스 퀴리날리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아이세르니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루키우스 아룬티우스
기원전 21년 기원전 20년 기원전 19년 기원전 19년 보결 기원전 18년
마르쿠스 롤리우스 마르쿠스 아풀레이우스 가이우스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 마르쿠스 비니키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
퀸투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푸블리우스 실리우스 네르바 sine collega 퀸투스 루크레티우스 베스필로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기원전 17년 기원전 16년 기원전 16년 보결 기원전 15년 기원전 14년
가이우스 푸르니우스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리보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프루기
가이우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루키우스 타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아우구르
기원전 13년 기원전 12년 기원전 12년 보결 기원전 12년 보결 기원전 11년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아피아누스 가이우스 발기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 퀸투스 아일리우스 투베로
푸블리우스 퀸크틸리우스 바루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퀴리니우스 루키우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파울루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기원전 10년 기원전 9년 기원전 8년 기원전 7년 기원전 6년
아프리카누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데키무스 라일리우스 발부스
율루스 안토니우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크리스피누스 술피키아누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갈루스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기원전 5년 기원전 5년 보결 기원전 5년 보결 기원전 4년 기원전 4년 보결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하테리우스 가이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가이우스 카일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루키우스 비니키우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루키우스 파시에누스 루푸스 갈루스 술피키우스
기원전 3년 기원전 2년 기원전 2년 보결 기원전 2년 보결 기원전 2년 보결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ⅩⅢ 가이우스 푸피우스 게미누스 퀸투스 파브리키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메살리누스 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 루키우스 카니니우스 갈루스
기원전 1년 기원전 1년 보결 연도 불명
코수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아울루스 플라우티우스 판사 카이트로니아누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아울루스 카이키나 세베루스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8px; padding: 0 6px"
}}}}}}}}}}}}}}}


파울루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라틴어: Paullus Fabius Maximus
생몰년도 미상 ~ 서기 14년
출생지 로마 공화국 로마
사망지 로마 제국 로마
지위 파트리키
국가 로마 공화국로마 제국
가족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아버지)
아프리카누스 파비우스 막시무스(동생)
파비아 파울리나(여자형제)
배우자 마르키아[1]
자녀 파울루스 파비우스 페르시쿠스
로마 제국 집정관
임기 기원전 11년(정규)
전임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
루키우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동기 퀸투스 아일리우스 투베로
후임 아프리카누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율루스 안토니우스

1. 개요2. 생애3. 가족

[clearfix]

1. 개요

로마 제국 집정관, 원로원 의원.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최측근이자 인척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총애를 받았던 인물로,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죽은 비슷한 무렵의 14년 여름 자택에서 선친처럼 급사해, 당대와 후대 로마인에게 많은 논란을 낳았다.

2. 생애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로마 건국과 시작을 함께 한 유구한 파트리키 대가(大家) 파비우스 씨족의 막시무스 가문 출신이다. 다만, 개인이름에 해당한 프라이노멘에서 드러나듯이 그의 본래 혈통은 아이밀리우스 가문이다. 그의 직계 조상은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케도니쿠스의 장남으로 파비우스 막시무스 가문에 입양된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아이밀리아누스이다.

그가 태어날 무렵,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 나머지 "가장 오래되고 저명한 명망가 중의 명망가"로 자타가 인정한 파비우스 막시무스 가문은 공화정 후기 무렵부터 지위와 명성이 쇠퇴하다 못해 추락 중이었다. 그래서 로마사 권위자 로널드 사임은 파비우스 가문이 "집정관에서 한 세대를 놓쳤다"고 평한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권세가 예전만 못했을 뿐, 그의 집안은 여전히 부유했고, 그의 친인척들은 쿠르수스 호노룸을 밞으며 번창했다.

카이사르의 내전 당시 카이사르의 특사 중 한 명이었던,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케도니쿠스의 증손자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카이사르가 단독 집정관에서 물러나 임기 제한이 없는 독재관을 맡겠다고 발표한 뒤, 기원전 45년 10월 1일 가이우스 트레보니우스와 함께 집정관으로 선출된 인물로, 기원전 45년 12월 31일 돌연 사망했다.

파울루스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가 이름미상의 아내와의 사이에서 얻은 삼남매 중 첫째였다. 밑으로는 남동생 아프리카누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 여자형제 파비아 파울리나가 있었다.

아버지 사후 이야기는 잘 모르나, 그가 처음 맡은 직책은 쿠르수스 호노룸의 선출직 첫 관문 재무관(콰이스토르)였다. 기원전 22년에서 19년까지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동부 속주를 순행할 때, 황제 밑에서 재직했다. 그러다가 집정관 직을 마친 뒤, 아시아 속주 총독으로 재직했다. 총독 재임 기간은 정확히 모른다. 왜냐하면 기원전 10년 ~ 기원전 8년까지 재임했다는 주장과 기원전 6년 ~ 5년까지 재임했다는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이 기간 동안 황제의 허락 아래 본인 얼굴이 새겨진 여러 개의 지방정부 동전을 주조하고 관리했다. 또 그는 아시아 속주 총독으로 통치 중, 이 일대의 그리스계 주민들의 호소로 아우구스투스를 현세의 신이자 신의 대리인으로 모시면서 제전을 벌이겠다는 요구를 받았다. 이때 그는 아우구스투스에게 이를 보고했고, 아우구스투스가 원로원을 통해 이를 슬기롭게 해결한 뒤, 로마 제국 역사상 첫 황제 신격화를 통한 올림픽을 주최해 우승자에게 왕관을 주는 행사를 거행했다. 이때 그는 속주를 위한 새로운 달력을 만들었다. 이 달력은 헬레니즘의 과거 셀레우코스 제국 등의 선례를 빗대어, 새해를 아우구스투스의 생일 9월 23일에 시작했다. 그러나 이 달력은 자치정부와 시의회를 통해 아우구스투스를 신으로 모신 아시아 속주의 그리스계 도시에게 통용됐다.

파비우스는 아르발 형제단(Arval Brethren)의 일원이었다. 이 사제단이 아우구스투스가 집권 후 자신의 친인척과 측근에게만 내려진 점에서 볼 때, 그가 얼마나 총애를 받았는지 알 수 있다.

기원전 3년 파비우스는 레가투스 아우구스티 프로 프라이토레 또는 히스파니아 타라코넨시스 총독이 되었다. 이때 그는 켈트족의 도시를 점령하고 루쿠스 아우구스티를 건설했다. 이 도시는 현재 스페인의 루고이다.

시인이자 풍자작가 유베날리스의 후원자 중 한명이 그의 후손이었고, 그와 그 아들 역시 생전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 등에게도 후원을 아끼지 않아, 이들에게 관대한 후원자, 덕망 높은 귀족으로 찬사를 받고 그들에게 송가, 찬사 등을 선물받았다. 이는 이탈리아 주민들에게도 같아, 이탈리아의 아트리에는 그의 인망과 관대함을 칭찬한 기념비가 설치되어 현재까지 남아 있다.

아우구스투스의 최측근 중 리비아 드루실라 황후의 두 아들 티베리우스, 대 드루수스 모두와 관계가 좋았고, 티베리우스가 정식 후계자가 된 뒤에도 관계가 좋고 협력 관계였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 갑작스럽고 예상하지 못한 점에서 이는 후일 괴담이 되고 이 내용이 고대기록자 중 신뢰 있는 기록에 언급돼, 이 점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후계자 티베리우스 황제가 악명을 떨치는 원인이 됐다.

서기 14년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죽고 얼마 되지 않아, 저택에서 갑자기 사망했다. 이때 아우구스투스의 외손자 아그리파 포스투무스가 처형된 일로 갓 취임한 티베리우스 황제가 포스투무스를 죽이라고 명했다는 의심이 있어, 파울루스 파비우스 막시무스의 급사에 관해 여러 이야기가 돌았다. 그 내용은 타키투스의 <연대기>에 실려 있는데, 그에 따르면 파울루스 파비우스 막시무스가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함께 유배된 섬에서 추방생활 중인 포스투무스를 만났고, 아우구스투스와 포스투무스가 화해했을 때, 동행한 파울루스 파비우스 막시무스가 이 증인이 됐다고 한다. 그래서 파비우스 막시무스가 급사한 것은 직간접적으로 아우구스투스의 신뢰를 저버린 것에 대한 보복이며 티베리우스 혹은 리비아 드루실라가 그를 암살했거나 처형했을 수 있다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다만, 오비디우스의 경우, 파비우스 막시무스의 죽음을 아우구스투스의 분노 때문이라고 평하면서 아우구스투스에게 그가 살해됐을 수도 있다는 식으로 적고 있다.

타키투스의 이 이야기와 그 진실성, 정확성은 현대 역사가 중 아주 고리타분한 이들을 제외한 대다수에게 의문시되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괴담이 진실이 된 예시로 언급된다. 먼저 당시 로마 제국의 정치 구도상 그를 죽였다는 인물들에게 파비우스 막시무스가 급사한 일은 이익이 아니었고, 그렇게 할 이유가 없었다. 파울루스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티베리우스를 지지한 아우구스투스 최측근이며, 대 드루수스의 아들 게르마니쿠스 후원자이자 지지자였다. 또 그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아우구스투스 후계자 등극 및 직위 승계 등을 도왔고, 소 드루수스의 후계구도 참여에도 힘을 보태는 등 리비아, 티베리우스 입장에서 볼 때 정적이라고 도저히 할 수 없었다. 또 파울루스 파비우스 막시무스의 가족력 역시 타키투스의 주장이 신빙성 없다고 평가받는 증거가 되고 있다. 20세기 초부터 역사 분야에 다양한 학문 전문가들이 가세한 뒤부터였는데, 의학 분야의 로마사 연구 논문 등에서는 파울루스 파비우스 막시무스의 선친 퀸투스, 동생 아프리카누스, 아들 페르시쿠스 모두 건강했다가 죽은 터라, 그의 돌연사 가능성 역시 뇌출혈 혹은 심근경색 같은 것으로 선친이나 아들처럼 갑자기 죽었을 가능성이 높고 이를 배제할 수 없다고 평한다.

3. 가족

기원전 20년에서 기원전 10년 사이, 기원전 38년 집정관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와 그 아내인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이모 소(小) 아티아의 딸 마르키아와 결혼했다. 그의 장모 아티아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이모였기 때문에, 마르키아는 황제의 사촌이었다. 따라서 이 결혼 이후 파울루스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인척이 됐다.

이 결혼에서 그는 기원전 1년 또는 기원전 2년생으로 알려진 아들 파울루스 파비우스 페르시쿠스를 뒀다. 그가 죽을 당시, 아들 파울루스 파비우스 페르시쿠스가 14세 밖에 되지 않아, 1년 뒤인 15년 6월 페르시쿠스는 정식으로 아버지의 사제 직을 잇게 됐으며, 이후 티베리우스 황제의 추천 아래에서 승승장구했다. 그는 재무관, 조영관, 법무관까지 오르고, 40세 이후 집정관 추천권까지 받아, 칼리굴라클라우디우스 1세 시대에도 권세가 대단했다. 따라서 페르시쿠스는 이런 배경으로 세네카에게 누구보다 특히 사악한 사람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율리우스 아그리콜라 등이 페르시쿠스를 좋은 사람으로 평했다. 아들 페르시쿠스는 클라우디우스 황제 시절 돌연사했다.
[1]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어머니 아티아의 자매 소(小) 아티아가 아우구스투스의 의붓형이자 이모부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와 결혼해 얻은 딸이다. 즉,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이종사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