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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2 01:46:07

파비우스

1. 개요2. 기원3. 이름4. 주요 인물

1. 개요

파비우스(Favius/Gens Fabia)는 고대 로마의 가장 오래되고 저명한 파트리키 가문으로 손꼽히는 씨족이다. 주요 씨족들(gentes maiores)에 코르넬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발레리우스, 아이밀리우스 등과 함께 포함되었고, 로마 공화국 기간 집정관을 66번 역임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파비우스를 이름으로 쓰는 로마 귀족은 동로마 제국 초기까지 문헌과 유물 등에서 확인된다.

2. 기원

플루타르코스에 의하면 '파비우스'(Favius)라는 명칭은 가문의 대표자가 야생 동물을 잡기 위해 구덩이를 자주 파는 것을 본 사람들이 이 사람의 가족들을 '땅을 파는 자'라는 뜻의 라틴어 단어 '포데레'(fodere)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파비우스의 시조가 헤라클레스와 이탈리아 님프의 아들이라는 설을 제기했다. 반면에, 대 플리니우스는 파비우스 가문에 속한 한 농부가 처음으로 재배했다고 전해지는 콩인 '비키아 파바(Vicia faba)'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전승에 따르면, 로마 건국 당시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의 추종자들은 각각 퀸크틸리이와 파비이로 불렸다. 두 형제는 팔라티노 언덕 기슭에 있는 루페르칼(Lupercal) 동굴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이것이 루페르칼리아의 기원이 되었다. 루페르칼리아 축제를 담당하는 사제인 루페르키(Luperci: 늑대의 형제)는 루페르키 퀸크티알레스(luperci Quinctiales)와 루페르키 파비아니(luperci Fabiani)로 구분되었는데, 퀸크티알레스는 로물루스를 상징했고, 파비아니는 레무스를 상징했다.

파비우스 가문이 라틴족 출신인지, 사비니족 출신인지는 불분명하다. 독일의 고대 로마 역사가 바르톨트 게오르그 니부어(Barthold Georg Niebuhr, 1776 ~ 1831)는 그들이 사비니 계열이라고 추정했지만, 일부 학자들은 파비우스 가문이 레무스와 연관시키는 전승은 그들이 로마에 처음부터 거주했음을 암시한다며 라틴족 출신이라고 주장했다.

전승에 따르면, 기원전 477년 베이족과의 크레메라 전투에서 퀸투스 파비우스 비불라누스를 제외한 모든 파비우스 일가가 전사했다고 한다. 이후 비불라누스는 기원전 469년 집정관을 역임했고, 그의 자손들이 대대로 번창하며 고위 행정관을 역임했다고 한다. 학자들은 크레메라 전투 이야기는 후대 로마인들이 스파르타군 300명이 페르시아 대군을 상대로 항전한 것으로 유명한 테르모필레 전투에 대응하기 위해 과장했다고 간주한다.

3. 이름

파비우스 가문의 초기 세대는 프라이노멘(개인 이름)으로 카이소(Caeso Ehsms Kaeso), 퀸투스(Quintus), 마르쿠스를 선호했다. 그러다가 기원전 477년 크레메라 전투에서 거의 모든 파비우스 일가가 전사한 뒤, 유일한 생존자인 퀸투스 파비우스 비불라누스가 말레벤툼 출신의 누메리우스 오타킬리우스의 딸과 결혼한 뒤 장인의 이름을 아들에게 물려주면서 '누메리우스'를 프라이노멘에 정기적으로 활용했다고 전해진다. 후기 세대는 다른 프라이노멘을 거의 배제하고 '퀸투스'를 애용했지만, 암부스투스 가문만은 프라이노멘으로 가이우스를 고집했다. 아이밀리우스 씨족이었다가 파비우스 씨족에 입양된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아이밀리아누스의 후예들은 조상인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케도니쿠스를 기리기 위해 '파울루스'를 프라이노멘으로 사용했다.

퍄비우스 씨족의 주요 코그노멘(가문 이름)은 '비불라누스', '암부스투스', '막시무스', '부테오', '픽토르', '라베오'였다. 문헌상에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파비우스 씨족은 비불라누스(Vibulanus)를 가졌는데, 기원전 5세기 말에 '불타다'라는 의미인 암부스투스(Ambustus)로 대체되었으며, '막시무스(Maximus)'는 암부스투스 가문의 방계였다. 전승에 따르면, 한 파비우스가 헤라클레스를 모시는 신전인 아라 막시마가 자기 집 근처에 있는 점을 근거로 막시무스라는 코그노멘을 사용했다고 한다. 막시무스 가문은 정치가와 장군으로서 기원전 4세기 삼니움 전쟁부터 기원전 2세기 킴브리 전쟁까지 활약했다. 파비우스 막시무스 가문은 기원전 2세기 중순에 대가 끊기게 되자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가문의 일원인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아이밀리아누스를 입양해 대를 이어갔다.

부테오(Buteo)는 의 한 종류로, 대 플리니우스에 따르면 한 파비우스가 탄 배에 그 새가 내려온 뒤 좋은 일이 생기자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이 명칭을 코그노멘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부테오는 암부스투스 가문의 또다른 방계였다. 파비우스 씨족의 또다른 코그노멘인 픽토르(Pictor)는 화가라는 뜻으로, 이 가문의 가장 이른 시기에 알려진 인물은 실제로 화가로 활동했고, 기원전 307년에서 302년 사이에 가이우스 유니우스 부불쿠스 브루투스가 세운 살루스 신전의 벽에 프레스코화를 그렸다고 전해진다. '라베오(Labeo)'는 입술이 튀어나온 사람을 의미하며, 기원전 2세기 초에 등장했지만 그 세기가 끝나기 전에 사라졌다.

4. 주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