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파시에누스 루푸스 라틴어: Lucius Passienus Rufus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미상 |
지위 | 노부스 호모 |
국가 | 로마 공화국 → 로마 제국 |
가족 | 가이우스 살루스티우스 크리스푸스(아들) 가이우스 살루스티우스 파시에누스 크리스푸스(손자) |
직업 | 로마 제국 집정관 |
로마 제국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4년 |
전임 |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퀸투스 하테리우스 |
동기 | 가이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
후임 | 가이우스 카일리우스 루푸스 갈루스 술피키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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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집정관.2. 생애
노부스 호모로, 당대의 저명한 수사학자이자 원로원 의원이었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4년 가이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와 ㅎ마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레네에서 발견된 아우구스투스의 칙령에 따르면, 그는 루키우스 파시에누스 루푸스와 함께 집정관 재임 기간 동안 로마의 동맹시 및 국가에 속한 주민들이 강탈당한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강화한다는 아우구스투스의 법안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고 한다. 서기 3년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아프리카 총독으로 부임했고, 게툴리아인과 무술라미인을 상대한 원정에서 승리를 거둔 뒤 승리를 기리는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그의 아들은 로마 역사가 가이우스 살루스티우스 크리스푸스의 누이의 손자로, 크리스푸스에게 입양된 뒤 가이우스 살루스티우스 크리스푸스로 이름을 개명했다. 손자 가이우스 살루스티우스 파시에누스 크리스푸스는 서기 27년과 44년에 집정관에 선임되었고, 기원전 16년 집정관이며 아우구스투스의 종조카인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의 딸인 도미티아 레피다와결혼해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와 인척 관계를 맺었다. 41년 클라우디우스 1세로부터 아내와 이혼하고 소 아그리피나와 재혼하라는 요구에 따라 도미티아와 이혼하고 소 아그리피나와 재혼했으며, 네로의 계부가 되었다. 47년에 돌연 사망했는데, 세간에서는 소 아그리피나가 그의 막대한 재산을 탐내 자신을 상속인으로 지명하도록 한 뒤 독살했을 거라는 소문이 떠돌았지만 진위는 불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