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키무스 라일리우스 발부스 라틴어: Decimus Laelius Balbus | |
생몰년도 | 기원전 48년 ~ 기원전 6년 이후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미상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국 → 로마 제국 |
가족 | 데키무스 라일리우스 발부스(아버지) 라일라(딸) 데키무스 라일리우스 발부스(아들 또는 손자) |
직업 | 로마 제국 집정관 |
로마 제국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6년 |
전임 | 티베리우스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
동기 |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
후임 |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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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집정관.2. 생애
옥타비아누스의 파벌에 소속되어 아프리카 총독 퀸투스 코르니피키우스의 재무관을 맡아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등의 '해방자파'와 맞서 싸운 데키무스 라일리우스 발부스의 아들이다. 기원전 17년 루디 사에쿨라레스[1]에서 시빌라 예언서를 관리하는 '퀸데킴비리 사크리스 파키운디스(quindecimviri sacris faciundis: 15명의 신성한 책 관리자)'로 거론되었다. 파스티 카피톨리니는 그를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아이세르니누스 등과 함께 폰티펙스로 거론했다. 기원전 6년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와 함께 집정관을 맡았으며, 고대 그리스 철학자 스미르나의 아폴로니데스의 풍자시 모음집의 헌정자로 지명되었다. 그 외의 행적은 알려진 바 없다.딸 라일라는 17년 집정관 가이우스 비비우스 마르수스와 결혼했다. 아들 또는 손자로 추정되는 데키무스 라일리우스 발부스는 37년 푸블리우스 비텔리우스의 전처인 아쿠티아가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존엄성을 훼손한 혐의(maiestas, 마이에스타스)로 고발해 유죄 판결을 받아냈지만, 호민관 유니우스 오토가 그가 이 일로 보상을 받는 것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에 분노해 원로원 회의에서 폭언을 퍼붓다가 티베리우스에게 믿보이면서 원로원 의원 지위를 박탈당하고 섬으로 유배되었다. 하지만 나중에 복귀했고, 46년 집정관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