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라틴어: Gnaeus Octavius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아버지)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아들)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28년 |
전임 | 가이우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 마니우스 아퀼리우스 |
동기 | 티투스 안니우스 루스쿠스 루푸스 |
후임 |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라빌라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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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옥타비우스 씨족은 기원전 230년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루푸스가 재무관에 선출되었을 때부터 로마 정계에 진출한 평민 씨족이다.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루푸스는 두 아들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를 낳았다. 차남 가이우스 옥타비우스의 후예는 훗날 로마 초대 황제가 된 옥타비아누스의 에퀴테스 가문이다. 장남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는 기원전 205년 법무관을 맡았고, 그의 아들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는 기원전 165년 집정관에 선출되었다. 그는 기원전 165년 집정관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의 아들이다.기원전 128년 티투스 안니우스 루스쿠스 루푸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지만 별다른 행적이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에 따르면, 그는 양육권 문제로 열린 재판에서 길고 논리적인 변론을 펼쳤지만, 상대 변호사인 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힙사이우스는 소리를 크게 지를 뿐 장황하고 두서 없는 주장을 늘어놓았다. 이에 힙사이우스에게 변호를 맡겼던 의뢰인은 절망에 빠져 판사를 맡았던 법무관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아게라스투스에게 패소를 받아들일 테니 재판을 끝내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아들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는 기원전 87년 집정관을 역임했다. 그러나 가이우스 마리우스-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연합에 맞서 싸우다 패배해 목숨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