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투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라틴어: Quintus Calpurnius Piso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조부)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아버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35년 |
전임 | 루키우스 푸리우스 필루스 섹스투스 아틸리우스 세라누스 |
동기 | 세르비우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
후임 |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가이우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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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칼푸르니우스 씨족은 로마의 전설적인 두번째 왕 누마 폼필리우스의 아들 칼푸스를 시조로 둔 평민 귀족(노빌레스)이다. 이 가문에는 여러 분파가 속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저명한 분파가 기원전 2세기 초부터 집정관을 역임하면서 엄청난 위세를 떨친 피소 가문이었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에 따르면, 조부와 아버지 모두 가이우스라는 프라이노멘을 사용했다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기원전 180년 집정관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와 관련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추정하지만, 이를 입증할 증거는 없다.올림피아에서 발견된 그리스어 비문에 따르면, 그는 법무관이었을 때 스파르타와 메세니아 사이의 국경 분쟁을 중재했다고 한다. 이 비문에는 정확한 날짜가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현대 학자들은 고위 행정관의 재임 간격을 설정한 빌리우스 법에 의거애 기원전 138년 이전에 법무관을 맡았으리라 추정한다.
기원전 135년 세르비우스 풀비우스 플라쿠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그는 제비뽑기를 통해 가까운 히스파니아 속주로 부임했다. 당시엔 누만티아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고대 기록에서는 그가 누만티아와 전쟁을 벌인 사실이 기재되지 않았다. 아피아노스에 따르면, 그는 팔라티아를 침공해 "작은 파괴"를 일으킨 뒤 후임 사령관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를 기다리기 위해 군대를 카르페타니아의 겨울 숙영지로 이동시켰다고 한다.
4세기에서 5세기 초에 활동한 로마 작가 율리우스 옵시퀸스에 따르면,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부임하기 전 히스파니아 속주의 로마군은 전의가 바닥났고 기강이 불량해 제대로 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학자들은 이러한 정보를 종합하여 그가 전투력이 형편없어진 로마군을 상대로 연전연승한 누만티아인들과 전쟁을 벌이길 꺼리고 다른 부족을 상대로 소규모 전투만 벌이고 끝냈으리라 짐작한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