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라틴어: Marcus Caecilius Metellus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증조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조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마케도니쿠스(아버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발레아리쿠스(큰 형)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디아데마투스(작은 형) 가이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카프라리우스(남동생)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15년 |
전임 |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게타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에부르누스 |
동기 |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스카우루스 |
후임 |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발부스 가이우스 포르키우스 카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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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라치오 인근의 팔레스트리나(Palestrina) 시를 건설했다는 전승이 전해지는 불카누스(Volcanus, 불의 신)의 아들 카이쿨루스의 후예로 전해지는 카이킬리우스 가문의 일원이다. 이 가문은 기원전 3세기부터 로마에서 출세가도를 달려 집정관 계급까지 오른 평민 귀족(노빌레스) 집안으로, 증조부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는 기원전 251년과 기원전 247년에 집정관을 맡았으며, 파노르무스 전투에서 카르타고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조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는 기원전 206년 집정관이었으며, 아버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마케도니쿠스는 기원전 143년 집정관, 기원전 131년 감찰관을 역임했으며, 제4차 마케도니아 전쟁과 아카이아 전쟁에서 활약했다. 큰형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발레아리쿠스는 기원전 123년 집정관을 역임했고, 작은 형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디아데마투스는 기원전 117년 집정관을 역임했으며, 남동생 가이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카프라리우스는 기원전 113년 집정관을 역임했다. 이름이 카이킬리아인 두 여자형제가 있었는데, 각각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바티아와 결혼했다.
기원전 129년 메텔루스 마케도니쿠스의 정적이었던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사망했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에 따르면, 마케도니쿠스는 아이밀리아누스의 죽음을 공개적으로 애도하고 그를 비롯한 자식들에게 장례식에 참여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그 후 기원전 127년경 화폐 주조관을 역임하면서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그가 주조한 데나리온 화폐가 현대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었는데, 한 면에는 코끼리 어리 이미지가 새겨진 마케도니아 방패가 그려졌고 다른 한 면에는 여신 로마나와 아폴로가 그려졌다. 또한 그가 주조한 구리 동전도 발굴되었는데, 거기에는 마케도니아 방패와 활 및 유피테르의 두상이 그려졌다.
현대 학자들은 기원전 180년 최고 행정관 간의 취임 간격을 규정한 빌리우스 법에 따라 기원전 118년 이전에 법무관을 역임했으리라 추정한다. 기원전 115년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스카우루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그는 코르시카, 사르데냐를 임지로 배정받고 사르데냐에서 발발한 부족들을 상대로 수년간 전쟁을 치른 끝에 토벌을 완수한 뒤 111년 로마로 돌아와 그 해 7월 15일 개선식을 거행했다. 이때 형제 가이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카프라리우스도 트라키아인들을 격파한 뒤 그와 같은 날에 개선식을 거행했다.
고대의 일부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111년 '메텔루스'라는 인물이 화재로 손상된 로마의 대모신 사원을 복원했다고 한다. 이 인물이 마르쿠스 메텔루스인지, 아니면 가이우스 메텔루스나 루키우스 메텔루스인지는 불분명하다. 이외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