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라틴어: Marcus Cornelius Cethegus | |
생몰년도 | 미상 ~ 기원전 160년 이후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가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조부) 가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아버지)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60년 |
전임 |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가이우스 판니우스 스트라보 |
동기 | 루키우스 아니키우스 갈루스 |
후임 |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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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저명한 파트리키 가문인 코르넬리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기원전 5세기부터 아우구스투스 통치 시기까지 이어지는 로마 공화국의 최고 행정관 목록을 담은 파스티 카피톨리니(Fasti Capitolini)에 따르면, 그의 조부와 아버지 모두 가이우스라는 프라이노멘을 사용했다고 한다. 기원전 197년 집정관 가이우스의 조부 역시 마르쿠스였다. 학자들은 두 케테쿠스가 할아버지를 공유했으며 서로 사촌 관계라고 추정한다. 일각에서는 기원전 197년 집정관 가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가 그의 아버지라고 추론하지만, 고대 사료에서는 가이우스의 아들로 기원전 150년 루시타니아 전쟁에서 루시타니아인들에게 토지를 분배하겠다고 속이고 유인한 뒤 몰살시키는 만행을 저지른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를 처벌하는 데 찬성한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만 언급했기 때문에 분명하지 않다.기원전 171년, 갈리아 키살피나 방면을 담당하고 있던 집정관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가 페르세우스와의 전쟁을 단행하기 위해 임지를 떠나 마케도니아로 이동했다. 원로원은 이 소식을 듣고 그와 푸블리우스 마르키우스 렉스, 마르키우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등 3명을 롱기누스에게 보냈다. 이들은 일리리아에서 롱기누스를 따라잡고 "원로원의 결정에 의하지 않고는 어떤 적과도 전쟁을 시작해서는 안 된다는 지령을 전달했다. 결국 롱기누스는 마케도니아 왕국과의 전쟁을 포기하고 갈리아 키살피나로 돌아갔다.
기원전 169년 식민도시에 로마인들을 이주시키는 임무를 맡은 위원회의 일원이 되었다. 위원회는 로마인 1,500명을 최근에 베네티 일대에 건설된 아퀼레이아에 이주시켰다. 기원전 163년 이전에 법무관을 역임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기원전 160년 루키우스 아니키우스 갈루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된 뒤 라티움 일대를 배정받고 라티움 남부에 있는 폰티누스 습지의 물을 빼고 농경지로 적합하게 만들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