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라틴어: Marcus Valerius Messalla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마니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코르비누스 메살라(조부)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메살라(아버지)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아들)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88년 |
전임 |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그나이우스 만리우스 불소 |
동기 | 가이우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 |
후임 |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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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저명한 파트리키 집안인 발레리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조부 마니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코르비누스 메살라는 기원전 263년 집정관을 역임했으며, 제1차 포에니 전쟁 초기에 시칠리아로 진군해 카르타고군을 격파하고 수십 개의 도시들을 복속시킨 공로로 '메살라(Messalla)' 칭호를 받고 아그노멘으로 사용했다. 아버지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메살라는 기원전 226년 집정관을 역임했다.그는 195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와 함께 조영관을 역임했고, 기원전 193년 역시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와 함께 법무관을 맡아 로마 시민과 외국인 사이의 소송을 다뤘다. 기원전 189년 집정관 선거에 뛰어들었으나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와 그나이우스 만리우스 불소에게 밀려 낙선했다. 1년 후 다시 집정관 선거에 출마해 가이우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와 함께 당선되었다.
이후 갈리아 키살피나 속주로 가서 리구리아인들을 상대하는 임무를 맡았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연말에 고위 행정관 선거를 집행하기 위해 로마로 돌아갔다. 기원전 181년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케도니쿠스 휘하 레가투스(Legatus: 군단장)을 맡아 리구리아인과의 전쟁에 참여했다. 기원전 174년 마케도니아 국왕 페르세우스와 카르타고가 동맹을 맺었다는 소문을 접한 원로원이 진위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마케도니아로 파견한 사절단의 일원이었다. 기원전 172년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푸스가 사망한 뒤 공석이 된 '데켐브리 사크리스 파시운디스(decemviri sacris faciundis: 10명의 신성한 책 관리자)'[1]의 일원이 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의 아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는 기원전 161년 집정관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