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라틴어: Manius Acilius Glabrio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아버지)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54년 |
전임 | 퀸투스 오피미우스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
동기 | 퀸투스 오피미우스 |
후임 | 퀸투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티투스 안니우스 루스쿠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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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평민 가문인 아킬리우스 씨족의 일원으로, 기원전 191년에 가문 최초로 집정관에 오른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의 아들이다. 모종의 시기에 시빌라 예언서를 관리하고 나라에 큰 일이 생겼을 때 이에 해당하는 예언을 찾아내고 해석해서 원로원에 보고하는 임무를 맡은 '데켐브리 사크리스 파시운디스(decemviri sacris faciundis: 10명의 신성한 책 관리자)'의 일원이 되었으며, 기원전 181년 의무와 헌신의 여신 피에타스 신전에 금박을 입힌 아버지의 동상을 세웠다. 기원전 166년 조영관을 맡았으며, 기원전 154년 집정관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가 불길한 징조가 나온 것을 무시하고 지방으로 가던 중 중병에 걸려 사망하자[1] 보결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이외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1] 평민 아내 푸블리키아에게 독살당했다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