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베투리우스 필로 라틴어: Lucius Veturius Philo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루키우스 베투리우스 필로(아버지) |
직업 | 로마 공화국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206년 |
전임 |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마르쿠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 |
동기 |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
후임 |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디베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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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 기병장관.2. 생애
고대 로마의 파트리키 가문인 베투리우스 씨족의 일원으로, 아버지 루키우스 베투리우스 필로는 기원전 220년 집정관, 기원전 217년 독재관, 기원전 210년 감찰관을 역임했다. 기원전 212년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휘하 트리부누스 밀리툼으로서 카푸아 공방전에 참전했으며, 기원전 210년 수석 조영관이 되었고, 기원전 209년 법무관에 발탁되어 갈리아 키살피나를 맡아 기원전 208년까지 통치했다.기원전 207년 레가투스로서 집정관 마르쿠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의 로마군에 배속되어 한니발 바르카와 합류하기 위해 진군하던 하스드루발 바르카의 카르타고군을 상대로 메타우루스 전투를 벌였다. 그는 이 전투에서 탁월한 용맹을 선보여 승리에 일조했고, 살리나토르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그를 로마로 보내 승리를 알리게 했다.
기원전 206년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된 뒤 브루티움에 틀어박힌 한니발을 상대했지만, 한니발이 별다른 군사적 행동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대치하기만 했다. 임기가 만료될 무렵 두 사람 중 누가 브루티움에 있을 지를 놓고 제비뽑기를 한 결과, 메텔루스가 브루티움에 계속 남고 필로는 로마로 돌아가서 차기 집정관 선거를 주관하기로 했다.
기원전 205년 말, 당해 집정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아프리카 원정에 착수했고 또다른 집정관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디베스는 한니발과 대치하고 있던 터라서 선거를 주관하기 어려웠다. 이에 크라수스는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를 독재관에 지명해 선거를 대신 주관하게 했고, 그는 기병장관에 지명되었다.
선거를 마무리한 뒤, 그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원정에 레가투스로서 참여했지만 별다른 활약상은 전해지지 않는다. 기원전 202년 자마 전투 이후, 그는 카르타고 사절단을 인솔해 로마로 돌아와서 원로원에 스키피오가 승리했으며 카르타고 측이 평화 협약을 논의하기 위해 사절단을 보냈음을 알렸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