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우스 리키니우스 바루스 라틴어: Gaius Licinius Varus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바루스(조부)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바루스(아버지)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바루스(아들) |
직업 | 로마 공화국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236년 |
전임 |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카우디누스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
동기 |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카우디누스 |
후임 | 티투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가이우스 아틸리우스 불부스 |
[clearfix]
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저명한 노빌레스 가문인 리키니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에 따르면, 조부와 아버지 모두 푸블리우스라는 프라이노멘을 사용했다고 한다. 기원전 236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카우디누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이 무렵, 북부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보이족이 알프스산맥 너머 갈리아 부족들을 끌어들여 로마를 공격하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두 집정관은 아르미눔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갈리아 연합군의 수가 워낙 많아서 한동안 전투를 감행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얼마 후 보이족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 보이족의 왕 2명이 살해당하는 등 격렬한 내전이 벌어지고 알프스 산맥 너머에서 온 부족들은 그들의 땅을 심하게 약탈하면서 연합이 무너지자, 두 사람은 굳이 공격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기로 했다.카우디누스가 리구리아로 가서 지역 부족들을 토벌하는 동안, 그는 최근에 로마에 병합된 코르시카에 레가투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글리키아를 먼저 파견했다. 글리키아는 상관의 허락을 받지 않고 코르시카 부족들과 협상해 평화 협약을 맺었다. 뒤이어 본대를 이끌고 코르시카에 도착한 그는 글리키아가 성립시킨 협약을 인정하지 않고 전쟁을 감행해 부족들을 격파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아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바루스는 기원전 208년 법무관을 역임했다.